메뉴 건너뛰기

close

'나꼼수 비키니 시위' 논란을 두고 김어준은 "남자로서 생물학적 완성도에 순간적으로 성적대상화가 일어났지만, 동시에 같은 뜻을 가진 동지로 감정이입을 했다"며 "우리 인간은 언제나 타자를 대상화한다, 중요한 건 필요할 때 상대를 이성으로 대하면서도 동시에 정치적 동지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요지의 말을 했었다.

아마도 이 '생물학적 완성도'란 단어에서 나타나는 감수성의 차이가 논쟁을 격하게 만든 요소였을 것이다. 사실 남성으로서 '생물학적 완성도'에 대한 반응은 비판적 인식 이전에 자동적인 본능이 앞서는 문제다.

10여 년을 수도한 청전스님이 달라이 라마 앞에서 "스님, 저는 아직도 가장 힘든 것이 육체적 욕망입니다, 스님도 성적 욕망으로 괴로운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달라이 라마가 "네, 저도 그런 적이 있습니다, 저는 부처님 제자로서 그런 성적 갈등이 올 때마다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라고 답변했다는 인터뷰를 보면서, '아 이 본능은 이토록 뿌리치기 힘든 것이구나' 라는 사실에 남성으로서 위안을 받기도 한다.

오래 전에 들은 한 수필강좌에서 70대의 노강사도 그 나이가 되어도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가슴이 쿵쿵거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었다. 정말로 생물학적 완성도에 대한 반응은 바꾸기 쉽지 않은 태도다.

이런 남성의 시선이 사회의 지배적인 시선이다 보니 여성은 생물학적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압박과 피해의식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거기다 미디어들은 얼짱이니 몸짱이니 하면서 이를 더욱 조장한다.

생물학적 완성도에 대한 반응을 없애는 기술 '칼리' 개발

외모에 목숨 걸어야 하는 '외모지상주의'의 폐해가 심해지고 있지만, '못생긴 것들'이라는 비아냥 속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런데 펨블턴이란 외국의 한 대학에서 이 폐해를 막기 위해 나섰다고 한다.

첨단 뇌 과학의 연구성과로 뇌에서 아름답다든지, 추하다든지 판단하는 신경회로를 차단하는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칼리그노시아'라는 이 기술은 개인의 시각에는 간섭하지 않고, 단지 눈에 보이는 것을 인식하는 일에 간섭한다고 한다. 즉, 오뚝한 코와 뭉툭한 코의 차이는 분명히 인식하지만, 이 차이에 대해 아무런 심미적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일종의 실미증을 유발시켜 외모를 미추에 대한 판단 없이 그저 외모로만 보게 만든다.

펨블턴 대학의 '철저한 평등을 요구하는 학생회의'는 이 칼리그노시아를 의무적으로 착용하는 학칙 개정안을 요구했고, 곧 이에 대한 찬반 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학생회의는 과거 몇 십 년에 걸쳐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에 관해 기꺼이 토론해 왔지만,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논쟁을 벌이는 일은 아직도 꺼려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매력 없는 용모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매우 널리 퍼져 있고, 이건 누가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혼자 알아서 이런 차별을 실행하며, 현대사회는 이런 경향을 더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교육을 통해서 이 문제에 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 않기에 테크놀로지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칼리그노시아는 당신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해준다면서 학생들에게 찬성을 호소하고 있다.

도대체 이런 개념찬 대학이 어디에 있냐고? 물론 이는 소설 속의 이야기다. 내놓는 작품마다 각종 SF 문학상을 휩쓰는 테드 창의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타리>라는 단편소설에 나오는 아주 독특한 이야기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정책은 강제해도 되는가

<당신의 인생이야기> 겉그림
 <당신의 인생이야기> 겉그림
ⓒ 행복한책읽기

관련사진보기

찬반투표를 둘러싼 다양한 의견들로 진행되는 이 소설에선 먼저 올바르다고 강제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접하게 된다.

소설 속 한 화자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는 통제를 잃고 폭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법안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되네, 칼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우리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과 똑같아"라며 반대를 분명히 한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니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도 같은 기쁨을 가져다 주는데도 불구하고, 칼리 운동은 여성이 자신의 용모에 관해 만족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죄악감을 느끼도록 강요하고 있다"며 "아름다움이 지금까지 억압의 도구 중 하나로 쓰여온 것은 사실이지만, 아름다움을 아예 말소해 버리는 것은 조지 오웰의 소설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의견도 그렇다.

올바름을 강제할 수 있는가도 중요한 토론거리이긴 하지만, 이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투표 과정 속에 드러나는 모습이다. 소설 속에서 개정안은 반대가 많아 부결되는데, 그 부결의 과정의 흥미롭다. 투표 전 화장품 회사들이 칼리 채택 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단체의 대변인이 텔레비전에서 연설을 했다. 찬성표를 던지려던 학생들이 이를 보고 마음을 바꾸어 부결되었다. 얼마나 설득력 있는 논리를 폈기에.

비결은 논리가 아니라 영상 편집에 사용된 기술에 있었다. 이 기술은 시청자들의 감정 반응이 극대화되도록 연설자의 목소리 억양과 표정, 그리고 보디 랭귀지를 편집해주었다. 오리지널 연설을 본 시청자들은 단지 좋았다고 평가한 반면, 편집된 버전을 본 시청자들은 매우 우수했고 놀랄 정도로 다이내믹하고 설득력이 있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결국 칼리 의무화안은 시청각 특수효과로 인해 부결되었다. 내용의 진실보단 포장의 아름다움에 좌우되었다. 그리고 그 뒤엔 외모지상주의로 돈을 버는 화장품 회사들이 있었다.

외모지상주의 반대를 둘러싼 복잡한 지형

테드 창의 소설은 이처럼 외모지상주의를 둘러싼 복잡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외모지상주의를 막는 일이 신경기술을 필요로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막는 것이 옳은지, 당신이라면 기꺼이 찬성하고 칼리를 쓸 것인지 라는 껄끄러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이 질문은 결코 진공 속에서 던져지지 않는다. 외모지상주의로 이익을 보는 자본들이 기술적으로 조장하는 현실 속에서 행해진다. 또한, 그 기술들은 현대사회 지배기술의 교묘함을 말해주기 보다는 익히고 활용해야 할 세련된 기술로 여겨진다. 지금 같은 정치의 계절엔 더욱 그러하다. 단지 생물학적으로 젊은 후보를 내세워 낡은 정치 세력이 아님을 포장하려는 정당을 보면 알 수 있다.

칼리 같은 기술이 개발된다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 되겠지만, 그런 기술이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개발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이윤의 주요 원천을 허물, 이런 기술 개발에 자원이 투입되겠는가.

그래서, 김어준의 말처럼 "순간적으로 성적 대상화가 일어나더라도 필요할 때 정치적 동지로서 감정이입하는 능력"의 제고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이 때 필요한 건 소설 속 학생회의의 주장처럼 "아름다움이야 말로 여러분의 눈을 가린다"는 자각이다.

한 인간에게서 외모만을 본다면, 영화배우의 미모만 보고 연기력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생물학적 완성도에 갇혀 정작 비키니 시위의 주장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가치와 아름다움엔 눈이 멀어 있는 것이다. 음악엔 가수의 비주얼보다 가창력이 중요하다는 '나는 가수다'가 일깨워 준 감동을 못 느끼는 것과 같다.

그럴 때 우리는 눈을 가린 아름다움을 벗고, 다양한 아름다움과 진실을 보기 위해  칼리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소설에서처럼 자신 없는 외모로 위축되어 왔다면, 그런 시각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에 집중하게 해줄 도구로 칼리는 더욱 유용할 것이다. 현재로서 칼리는 아름다움이 진실을 가릴 때 그 이면을 보는 능력이라 하겠다.

테드 창의 걸작선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는 위에 소개한 단편말고 다양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로맨스도, 선악의 대결도 없지만 상상력을 느끼고 싶다면 정말 읽어 볼만한 책이다. '아! SF적인 상상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엘리(2016)


태그:#비키니 시위, #김어준, #생물학적 완성도, #테드 창, #외모지상주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