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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3월 30일) 비가 주루룩 주루룩 내렸습니다. 비가 내릴 때마다 장모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햇볕이 쨍쨍날 때 장모님이 생각나지 않고 비 오는 날만 장모님 얼굴을 떠올리는 이유가 있습니다. 장모님 '고추전'입니다. 진주 '중앙시장'에서 약 20년 동안 고추전과 장어국에 동동주를 파셨는데 일품이었습니다. 목사가 대놓고 동동주를 마시지는 못하지만 한 번씩 한 모금을 마셨는데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목사 대놓고 동동주 마시지 못하고 '한 모금' 마셨는데 그 맛 잊을 수 없네

7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더 이상 장사를 하지 못하지만 설날과 추석 때 동동주를 담그면 "(목사가 술 마시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김 서방 한 번 마셔보게나" 하십니다. 그럴 때 모른 척하면서 마십니다. 물론 한 모금 정도만 마시니 술꾼 목사라고 하시면 안 됩니다.

동동주는 마시지 못하지만 장어국과 고추전은 아내에게 자주 해달라고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장어국을 정말 좋아합니다. 커다른 찜통에 장어국을 끓이면 이틀을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부쳐주셨던 고추전 역시 좋아합니다. 명절 때마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장모님은 외손자들을 위해 한 아름 싸주십니다.

소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
 소풀('부추'의 경상도 사투리).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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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식이 다 그렇지만 특히 홍합은 싱싱해야 합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조심해서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음식이 다 그렇지만 특히 홍합은 싱싱해야 합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조심해서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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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은 고추전

고추전은 맑은 날보다는 비 오는 날이 더 당깁니다. 당연히 우리 집은 장모님이 중독시킨 고추전을 먹는 날입니다. 지난 금요일 비가 주루룩주룩 내리자 "여보 오늘 고추전 먹는 날이잖아요."라는 운을 떼자 아내는 "또 고추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알고 있기에 소풀('부추' 경상도 사투리), 홍합, 고추, 밀가루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오는 날 당연히 고추전 아니예요."
"우리 엄마가 당신과 아이들 입맛을 버려놓았어요. 비만 오면 고추전 타령이니."

"비올 때마다 장모님 고추전이 생각나니 어쩔 수 없어요."
"다른 때 엄마 생각 좀 하세요."
"나같은 사위도 없지."
"당신같는 사위도 없다구요. 웃음이 저절로 나오네요."

소풀+홍합+밀가루+고추 만 들어갑니다
 소풀+홍합+밀가루+고추 만 들어갑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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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고추전 솜씨 점점 좋아지네

다른 것은 잘 하는데 아직까지 아내는 장모님 손맛은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도 장모님에게 독립한지 언 15년. 핏줄은 속일 수 없습니다. 손맛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고추전은 두껍게 부치는 것보다 얇게 부쳐야 맛입니다. 그래야 노릇노릇하고, 약간 바삭한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두꺼우면 바삭한 맛이 없이 때문입니다.

"당신 고추전 부치는 솜씨 점점 좋아져요."
"내가 모를까봐요. 비가 오면 또 부쳐 달라고 할 것이니까. 미리 선수를 치는 거잖아요."

"그 때는 그 때 일이고. 정말 장모님 맛 80% 정도는 따라 붙었어요."
"빈말이라도 고맙네요."

노릇노릇 구운 고추전.
 노릇노릇 구운 고추전.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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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전에는 동동주가 최고지

고추전 부치는 솜씨가 좋아졌다는 말에 아내는 싫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역시 아내는 아주 작은 칭찬이 모든 것을 다 얻는 것 같습니다. 자리에 앉아 고추전을 무려 4개나 먹었습니다.

"고추전에는 장모님 동동주가 최고인데."
"또 엄마 타령이네. 엄마 이제 몸이 힘들어 동동주 담지 못해요. 그리고 당신 목사 맞아요. 동동주 찾게."

"아니 한 모금씩 마셨던 것이 생각나서 그렇지. 한 모금도 못 마시나."

정말 그렇습니다. 생각납니다. 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장모님 손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생각납니다. 고추전 4개를 먹으니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학교를 마친 막둥이가 집에 왔습니다.

"엄마 고추전 부쳤어요."
"응. 아빠가 비만 오면 고추전 부쳐달라고 하잖아."
"나도 먹고 싶어요."

"당연히 먹어야지."
"엄마 고추 안 매워요?"
"안 매워. 매워도 조금 참아. 너는 매운 것은 너무 먹지 못해. 조금씩 먹어도 괜찮아."

고추전을 입에 넣기 바쁜 막둥이
 고추전을 입에 넣기 바쁜 막둥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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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입으로 밀어넣습니다
 아예 입으로 밀어넣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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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둥이 먹는 모습이 대단합니다. 입 안으로 밀어넣습니다. 앉아 내리 두 개를 먹었습니다. 대단한 먹성입니다. 아무거나 잘 먹고, 잘 좋아하는 막둥이. 볼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아내의 작은 수고로 우리 집은 비만 내리면 고추전 잔치를 합니다. 온 가족이 먹기 싫을 때까지 먹어도 5000~6000원이면 됩니다. 비 오는 날 고추전 어떠세요. 온 가족의 기쁨입니다.


태그:#고추전, #동동주, #비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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