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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메랄드빛의 꽝시폭포 ..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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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화나 소설 속에 흔히 나오는 사건의 불안한 전조처럼 그날 루앙프라방의 아침 공기는 참으로 투명했다. 하늘은 파랬고, 바람도 가끔씩 시원하게 불어줬다. 말하자면 교외로 자전거 하이킹을 떠나기에 지나치게 좋은 날이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불안한 전조로 그날 아침 우리부부의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아내는 질긴 감기에다 달거리 통증으로 숙소에 드러누웠고, 나까지도 전날부터 몸이 으슬으슬 춥더니 감기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여차하면 자전거 하이킹을 취소할 수도 있을 터였지만, 말했듯이 날씨가 지나치게 좋은 날이었다.

고민 끝에 상훈이를 대장으로 해 아이들을 먼저 출발시켰다. 달거리 중이어서 자전거를 탈 수 없는 유진과 나운이와 함께 나는 '뚝뚝'을 타고 따라가기로 했다. 꽝시 폭포까지는 32킬로미터. 이 길은 폭포에 이르는 동안 라오스의 시골마을들을 자연스레 들여다볼 수도 있어 서양여행자들에겐 꽤 많이 알려진 하이킹 코스였다.

11명의 자전거 본대가 떠나고, 나는 두 명의 여자아이와 함께 도심 외곽에 있는 버스터미널까지 걷기로 했다. 다음날 방비엥으로 떠날 버스표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관광구역을 벗어나자 철물점이나 이발소나 모바일 판매점과 같은 이곳 사람들의 일상의 풍경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길가에서 큰 바구니에 빵을 가득 쌓아두고 팔고 있는 한 여자아이와 화로에 바나나를 구워서 파는 아주머니를 지나쳤다.

유진과 나운이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지 못한 아쉬움도 잠시, 이국 도시의 길을 걷는 즐거움에 쉽게 빠져들었다. 처음 보는 과일의 이름을 내게 물어보기도 하고, 전날 돌아본 루앙프라방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우리 셋은 터미널에서 표를 끊고 다시 도심으로 돌아와 '뚝뚝'을 잡아탔다. 먼저 떠난 아이들과는 두 시간 정도 차이가 났을 것 같았다. 전체 코스의 3분의 2 정도의 지점에서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적당한 차이일 듯했다. 뚝뚝이 큰 도로에서 작은 길로 접어들자 곧 마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 한 마을에서는 결혼식 축제가 열렸는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욕심 같아서는 내려서 구경하고 싶어도 먼저 간 아이들 생각에 그럴 수가 없다. 어느새 길은 오르막으로 바뀌고 있었다. 숨이 차올라 헉헉거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을 아이들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32km 자전거 하이킹에 나선 아이들

흥정의 달인..
▲ 뚝뚝을 흥정하는 학용삼촌 흥정의 달인..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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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사투리를 억수로 써대며 더 이상 못 간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그 특유의 함박웃음을 터트렸을 막내 서희와, 목적지까지의 32킬로미터 거리를 본능적으로 자전거 페달의 회전수로 계산했을 지도 모를 미래의 공학도 성호, 오지랖이 넓어 자기도 힘들면서 뒤처지는 사람이 없나 틈만 나면 뒤돌아보곤 했을 또 다른 막내 수경이.

그리고 무뚝뚝하고 과묵한 척해도 사실은 마음이 여리고 착해서 영준이나 동생들을 꼬박꼬박 챙기며 달렸을 테지만 나를 보게 되면 또 틀림없이 "삼촌 죽을 뻔 했어요"라며 칭얼거릴 자전거 스페셜리스트 정호, 이 길이 다 자기들 것 인양 날아갈 듯 달려댔을 희경이와 윤미, 그리고 자전거만 타면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는 승현이, 또 은근한 '차도녀' 스타일의 언어구사력으로 친구들을 즐겁게 했을 도솔이. 그리고 하이킹의 대장으로서 자전거가 무거웠을 상훈이와 하영이 커플까지.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모습들을 떠올리고 있는 사이에도 길은 꾸준히 오르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고도 얼마나 달렸을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이들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유진이였다.

"삼촌, 저기 애들 있어요."

정호와 영준이, 도솔이다. 힘내라고 소리치며 지나쳐갔다. 다음에는 모퉁이를 도는데 윤미와 희경이와 하영이와 서희가 자전거를 눕혀놓고 서 있다. 순식간에 휙 지나쳐갔다. 한참을 더 달려가자 수경이와 승현이가 나타났다.

우거진 산골, 보이지 않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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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으며 꽝시폭포를 향해 가는, 수경 ...
ⓒ 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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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들이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 뚝뚝을 세우고 보니 아이들이 크고 작게 많이 다쳤다고 했다. 서희는 두 번이나 넘어져 아래턱을 다쳤다고 한다. 자신은 불사조라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는 수경이 말로는 넘어지지 않은 아이보다 넘어진 아이가 더 많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윤미였다. 어쩌다가 그랬는지 자전거를 타고 붕 날아서 논두렁에 처박혔단다. 지나가던 라오스 아저씨의 도움으로 일어나긴 했는데 입술이 터졌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 더위를 뚫고 어느 다른 여행자들도 시도하지 않는 자전거 하이킹을 하기로 한 것이 무리였을까. 여행을 떠나 처음으로 찾아든 사고가 그날의 불안한 전조였던 투명한 대기와 함께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했다.

타고 온 뚝뚝 기사에게 부탁해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많이 다쳤다는 윤미와 서희를 태우고 곧바로 병원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길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트럭 얻어 타고 삼촌 만나려고 폭포에 갔어요. "

상훈이의 말을 듣고 다시 폭포로 달렸다. 폭포 입구에는 다친 서희를 데리고 히치하이킹을 해서 올라온 하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서희는 많이 울었는지 두 눈이 잔뜩 젖어 있었다. 땅바닥에 갈아붙인 아래턱은 벌써 퉁퉁 부어올랐다.

하지만 윤미와 희경이가 없었다. 하영이와 서희보다 10분이나 먼저 출발했다는 열여덟 살 두 여자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하영이 말로는 그들이 타고 간 흰색 트럭에는 두 명의 남자가 타고 있었단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열대우림이 우거진 산골, 두 여자아이, 흰색 트럭과 두 명의 남자... 난 급박하게 경찰을 찾았다. 하지만 이 유명한 관광지에 경찰은 물론 경찰 출장소 비슷한 것도 없었다. 왜 이런 공공구역에 경찰이 없냐고 따져 묻는 나에게 라오스 사람들은 자신이 뭘 잘못이나 한 것처럼 미안해하면서도 반대로 왜 관광지에 경찰이 있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들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여기가 라오스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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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쌩쌩한 922번, 서윤미 선수 ..
ⓒ 김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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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포 관리사무소 겸 매표소로 달려갔다. 두 여자아이가 사라졌으니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신고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매표소에는 전화도 없을 뿐더러 경찰서 전화번호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얼굴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 루앙프라방에서부터 타고 온 뚝뚝 운전기사가 자기 친구가 경찰이라면서 모바일로 전화를 걸어줬다. 다행히 그의 친구는 영어를 꽤 잘했다. 사고의 전후과정을 설명하고 신속히 주변을 수색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 대목에서 그 경찰은 난감해했다. 친구의 부탁도 있고 하니 일단 자신이 와보긴 하겠지만,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진정하라는 것이다.

난 화가 났다. 벌써 도착해야 할 두 여자아이가 한 시간이 가깝게 오지 않고 있는데 이곳 라오 사람들은 하나 같이 별 일 없을 테니 나에게 진정하라고만 했다. 단 1%의 가능성만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것이 경찰이 아니냐고, 만일 당신들이 주저하는 사이에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전화에다 대고 따지는 나의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나기 시작할 때였다.

저 멀리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두 녀석이 보였다. 틀림없이 윤미와 희경이었다. 유진이가 친 언니인 윤미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논두렁에 떨어졌다는 윤미 얼굴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트럭의 두 아저씨가 오는 길에 윤미가 다친 것을 보고 작은 마을 진료소 같은 곳에다 데려다준 모양이었다. 간단한 치료를 받고 뭘 좀 먹고 가라고 음식까지 내놓으신 모양인데 친구들이 걱정한다고 말씀드리고 파파야만 먹고 그냥 왔다고 했다.

이쪽에서는 경찰에 전화를 걸고 생난리를 치고 있었는데, 두 녀석은 그렇게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진정하라고 반복하며 위로했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너무 놀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라오스라는 사실을 말이다.

마취 없이 꿰맨 입술... 수술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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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석회암 층층의 꽝시폭포 ...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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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나는 윤미와 서희를 데리고 루앙프라방 국립병원에 갔다. 응급실에 들어선 순간, 나는 또 한 번 경악하고 말았다. 갓난아기를 수술하고 있는데, 흔히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장면이 아니었다. 수술 공간에 아무런 통제도 없이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음은 물론이고, 간호사 예닐곱 명이 수술대를 빙 둘러섰는데 수술복은 물론이고 마스크도 쓰지 않은 평상복 차림이었다.

무슨 해부학 실습시간에 간호학과 학생들이 교수의 시범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풍경이었다. 한 의사가 윤미의 상태를 보더니 수술대에 누우라고 했다. 의사는 영어가 서툴었는데, 마취도 없이 곧바로 찢어진 입술을 꿰맬 태세였다. 윤미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나 역시 깜짝 놀라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고 나서 'Big Tree Cafe'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냥 어떻게 해야 할 지 물어만 볼 생각이었는데, 고맙게도 그녀는 루앙프라방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신 한국인 목사님 한 분과 함께 바로 달려왔다. 라오스 말에 능통하신 목사님이 의사를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목사님은 자신도 처음에는 시설이나 병원질서가 제대로 안 갖춰진 이곳 모습에 많이 놀랐지만, 이곳 의사들의 수준이 높고, 루앙프라방 최고의 병원이니까 안심하라고 해줬다.

그날 윤미는 마취도 하지 않고 세 바늘을 꿰맸다. 수술할 동안에는 잘도 참던 윤미가 응급실에서 나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가만히 안아 다독여주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낯선 이국의 땅에서 부모도 없이 어수선한 응급실에 누워 말도 통하지 않는 의사로부터 수술을 받으며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웠을까. 그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데도, 엉뚱하게도 녀석이 눈물을 그치자마자 내 입에서는 웅크리고 있던 전혀 다른 말들이 튀어나왔다.

"왜 트럭에 남자애를 안 태우고 희경이를 태웠어? 응?"
"저도 희경이가 타려고 해서 '어'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아파서 정신도 없고 해서... 그냥..."

뻔히 그 상황을 알면서도 내 입에서 나오는 나의 말을 나 또한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이상 할 말을 못 하고 서 있는데, 윤미가 쭈뼛거리며 말한다.

"삼촌, 죄송해요. 삼촌이 무슨 말씀 하시려는지 잘 알아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송해야 하는 윤미에게도 미안하고, 라오스의 남성들을 모두 잠정적 범죄자로 취급해버린 것도 안타깝다. 아내와 둘이 여행하는 것과 청소년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것은 그렇게 달랐다.

그날 아이들은 참 많이 울었다. 다쳐서 울고, 다치고 보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고, 사라져버린 언니가 걱정돼서 울고, 서로 싸우느라 울고, 무사해 기뻐서 울고, 옆의 친구가 우니까 따라서 울고... 많은 눈물을 흘린 만큼 아마 그날이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조금씩 더 다가가게 된 날일 것이다.

그날 저녁 아이들은 그렇게 힘든 날이었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놀았다. '완주'한 녀석들은 '꽝시폭포 1km'라는 이정표를 봤을 때의 그 희열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이란 존재는 놀랍고도 신기하다. 무섭도록 천둥치고 비가 퍼붓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더 파랗고 더 맑게 개곤 하는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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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꽝시폭포 입구의 가슴반달곰들.. ..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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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 신수경(14)
오늘 일기 쓰기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들다. 힘들다. 너무! 그리고 다리도 너무 아프다. 오늘은 '꽝씨 폭포'(?)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날이다. 나는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해서 처음에는 빨리 자전거를 탔으면 했다.

하지만! 세상일은 쉬운 일이 없다. 처음에 11명이 줄을 맞춰서 자전거를 타자니 몇 명은 빠르고 몇 명은 느려서 맞추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자전거와 자전거가 부딪쳐서 넘어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처음에는 길이 험하지 않았지만 가면 갈수록 길이 꼬불꼬불 해지더니 오르막길에서는 체력소모가 돼서 자전거를 끌고 다니기까지 했다.

땀도 흐르고 힘들었는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이런 표지판에 있는 다리를 건너다가 그만 엎어지고 말았다. 다리가 까지고 피가 났다. 때마침 희경언니하고 성호오빠가 와서 내 다리를 치료해주었다. 하지만 내 다리가 다친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서희와 윤미언니는 자전거를 타다가 너무 삼하게 다쳤기 때문이다. 둘은 먼저 트럭을 타고 병원으로 갔다. 나는 자전거를 다시 타고 폭포까지 계속 달렸지만 너무 불안했다. 계속 서희와 윤미언니가 생각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지? 심하게 다쳤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자전거를 타는 내내 마음이 불안하였다.

그 생각을 잠시 접고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폭포를 향해 갔다. 진짜 가는 길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이다. 훗! 하지만 그 험한 길을 뚫고 나는 폭포까지 자전거를 타고 도착을 했단 말이다!! 모두들 나를 받들기를. 


안젤리나 졸리가 된 언니 - 서유진(17)
외국인 4명이 탄 뚝뚝을 타고 폭포에 가기 시작했다. 길도 예쁘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있어 자전거 탔음 재밌겠다 싶었다.

그런데 정작 폭포에 도착하니 언니와 희경 언니가 없는 것이었다. (중략) 한 10분 후 얼굴이 죽사발이 된 언니가 소독약 냄새를 풍기며 오는데 눈물이 왈칵 흐르면서 언니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원체 슬픈 영화나 소설을 봐도 잘 안 울고 내 일이 아니면 거의 울지 않는 내가 저렇게 다친 언니의 모습과 그래도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울었나 보다. (중략) 결국 아랫입술을 세 바늘 꼬맨 언니는 안젤리나 졸리 입술이 됐다.

덧붙이는 글 | 본 연재 기사는 <제민일보>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기사내용은 김향미 & 양학용 여행작가 부부가 지난 겨울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명의 청소년과 2명의 대학생과 함께 라오스로 한 달 동안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저서로는 967일 동안의 세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묶은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예담)와 라오스 여행이야기를 담은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좋은생각) 등이 있습니다.



태그:#라오스, #청소년여행학교, #시속4킬로미터의행복, #루앙푸라방, #꽝시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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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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