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라는 태국의 '카오산로드'. 정말 많은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여행자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태국을 즐기는 것 같았다.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라는 태국의 '카오산로드'. 정말 많은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여행자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태국을 즐기는 것 같았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카오산로드의 기인.
 카오산로드의 기인.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태국에 대한 첫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닙니다. 20여 년 전 태국을 다녀온 엄마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입니다. 첫 해외여행을 태국으로 다녀온 엄마는 한동안 태국 얘기로 낮밤을 지새웠습니다. 누구라도 보면 태국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행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예의상 보는 척했지만 나중에는 지겨웠습니다. 엄마가 들려주는 얘기나 보여주는 태국의 풍광에는 조금도 흥미로운 요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엄마가 보여주는 사진에는 주로 방콕 왕궁 근처께 몰려있는 새벽사원, 에메랄드 사원과 왓포 사원 등과 짜오프라야강 보트투어와 수상 시장 등의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들 관광지는 우리나라 단체여행의 필수코스입니다. 그러나 눈길을 끄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같은 새벽 사원이라도 태양이 작열하는 대낮에 바라본 사원과 여명이 시작되는 시간 은근하게 깨어나는 새벽사원의 느낌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 난 단지 햇빛에 노출이 너무 많이 된 사진에서 보여주는 조잡한 풍경만으로 태국을 폄하했던 것입니다.

거기다 엄마는 태국 음식이 맛없다는 말을 주문처럼 대뇌었습니다. 여행 내내 밥을 먹을 수 없었다는 게 엄마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고, 그래서 음식에 대한 얘기는 더욱 침을 튀기며 했던 것입니다.

밥에서 냄새가 나고, 쌀들은 풀풀 날리는 쌀이라고 했습니다. 거기다 음식마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모든 음식에서 났다고 한 냄새는 '고수'였습니다. 우리나라 음식의 기본이 마늘인 것처럼 태국 음식의 베이스는 고수였던 것입니다. 이 고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찰에서 주로 쓰는 나물로, 정말 충격적인 맛을 가진 나물이어서 나도 이 나물을 처음 먹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물에 젖은 행주 냄새가 난다고 하지만 난 화장품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맛을 맛있다고 먹는 게 신기했습니다.

고수는 좋아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먹기 어려운 맛이기도 합니다. 나도 그렇지만 엄마도 고수를 못 먹는 편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엄마가 태국음식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엄마의 편견은 내게 여과 없이 전달돼서 태국음식엔 이상한 냄새가 나고, 태국 가면 쫄쫄 굶어야 한다는 게 사실처럼 돼버렸습니다. 이렇게 엄마는 내게 태국여행 홍보대사가 아니라 태국 '안티'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태국에 정나미를 떨어지게 한 것은, '게이쇼'입니다. 이 쇼는 우리나라 단체여행의 필수코스여서 엄마도 얼굴이 화끈화끈해하면서 봤다고 했지만 그때는 이 얘기는 쏙 빼고 했었습니다. '게이쇼' 얘기는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습니다. 엄마가 태국음식과 황금 불상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서 말한 것처럼 이 사람은 '성인쇼'에 대해서 정말 리얼하고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뒤늦게 태국에 갔던 동생 역시 구경했다고 했습니다. '성인쇼'는 태국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었습니다. 이런 변태쇼를 상품화하는 나라, 정말 수준 낮은 나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나 보여줄 게 없으면 그런 걸 상품화하고, 또 그런 문화가 버젓이 자리 잡을 수 있을 정도라면 그 사회는 도대체가 희망이 없이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는 다 가도 태국은 절대로 안 갈 것이라는 결심까지 했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겐 '게이'에 대한 강한 편견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때인가 미용실에 머리 자르러 갔다가 본 잡지에서는 남자가 여자처럼 꾸미고 다니면서 매춘을 하는 내용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아직 순수했던 어린 마음에 그 기사는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세상의 더러운 부분을 엿본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직접 매춘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런 세계를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얼굴을 붉히며 미용실을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기사는 게이매춘을 선정적이게 묘사했던 것입니다.

이런 기억을 가진 내게 '게이쇼'의 나라 태국이 좋게 보일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태국에 대한 온갖 나쁜 편견에 사로잡힌 내가 태국을 간다는 것은 참 인생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 모순되지만  난 편견과 선입관으로 똘똘 뭉친 채 태국을 방문했습니다. 좋아서 간 게 아니라 상황에 떠밀려서 썰물에 휩쓸리듯 그렇게 태국으로 갔습니다.

태국음식의 기본 양념이라고 할 수 있는'고수'. 이 나물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태국음식을 두려워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적응이 됐으며, 어떤 사람들은 고수를 즐기기까지 했다.
 태국음식의 기본 양념이라고 할 수 있는'고수'. 이 나물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태국음식을 두려워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적응이 됐으며, 어떤 사람들은 고수를 즐기기까지 했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카오산로드 한 음식점에서 음료를 마시는 아이들. 작은 애는 여전히 핸드폰에 깊이 빠져있고, 큰 애는 뭔가 불만에 가득한 표정.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 결코 쉽지 않았다.
 카오산로드 한 음식점에서 음료를 마시는 아이들. 작은 애는 여전히 핸드폰에 깊이 빠져있고, 큰 애는 뭔가 불만에 가득한 표정.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 결코 쉽지 않았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길가 가게 앞에 있던 불상. 불상 앞에는 어김없이 누군가 올린 공양이 있었다.
 길가 가게 앞에 있던 불상. 불상 앞에는 어김없이 누군가 올린 공양이 있었다.
ⓒ 김은주

관련사진보기


결론을 애기하자면, 태국은 정말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앞에서 늘어놓았던 편견과 선입견은 그냥 생각일 뿐이었고, 실재의 태국은 훨씬 좋은 나라였습니다. 엄마가 그렇게 맛없다고 했던 태국음식은 의외로 맛있어서 지금도 생각날 정도입니다.

물론 고수향이 대부분 음식에 남아있지만 고수무침을 먹어봤던 기억이 있는 내게 고명 정도로 넣은 고수 향은 음식 맛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태국 음식은 우리 입맛에 잘 맞았습니다. 특히 일본음식인 샤브샤브를 모방해서 만든 '수끼'나 북부 이산지방의 향토음식인 '파파야샐러드' 등은 우리 입맛에 정말 잘 맞았으며, 거리에서 사먹은 '팟타이'라는 볶음국수도 맛있었습니다. 태국은 엄마 말과는 달리 정말 먹을 게 많은 나라였습니다.

먹을 게 없다는 것은, 엄마의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난 엄마의 경우를 내 경우로 치환했었고, 그래서 태국음식에 대해 나쁜 편견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편견은 사실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편견 때문에 난 중요한 걸 잃을 뻔했습니다.

또한 태국을 '게이쇼'의 나라로 여기면서 타락한 사회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또한 엄청난 오해였습니다. 태국을 여행하면서 태국은 정말로 건강한 나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태국에는 거리마다 국왕의 사진이 걸려 있고, 사람들은 그 사진 앞에서 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태국 국왕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아서 태국민이 진심으로 존경하는 왕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국왕과 백성 간에 이렇게 훈훈한 관계가 형성된 나라가 몇 나라나 될까요? 사회적으로 존경의 문화가 만연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무척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묵었던 호텔 2층에는 대연회실이 있는데 그 앞에는 국왕을 모셔놓은 사진이 있고, 사진 앞엔 음식을 차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불교문화가 지배적인 태국에서는 국왕에 대해서도 부처님에게처럼 공양을 올리는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았습니다. 식당을 찾다가 그 연회실 앞을 지나가는데 호텔 종업원인 것 같은 여자가 국왕 사진 앞에서 공손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대상이 누구인가를 떠나서 공손하게 기도하는 모습은 아주 경건한 느낌을 주고 그녀가 속한 그 공간 전체를 맑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태국인들은 독실한 불교신자들로 불상이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마주치는 게 불상이고, 호텔 안에도 복도 한쪽에 불단이 있고, 심지어 마켓에도 불상을 모셔놓았습니다. 또한 택시 기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님 사진을 유리에 붙여놓고 기도했으며, 차들은 모두 노란 꽃목걸이를 차에 걸어놓고 운전했습니다. 부처님께 꽃을 공양하면서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존경할 만한 대상을 존경하는 문화가 태국에 만연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대체로 온순하고 양심적인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태국을 게이들이 우글거리고 변태향략문화가 만연하다는 생각은 많이 잘못된 것이지요. 태국의 한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한 우를 범한 격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여행사연 쓰고 공정여행 가자!' 공모 응모 글입니다.



태그:#태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