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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에 잠긴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 마을 농경지
 물에 잠긴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 마을 농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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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13일 전북 군산 지역에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가 시간당 평균 100mm 이상 쏟아졌다. 시내 저지대 도로와 농경지, 주택 곳곳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가 일어나는 등 큰 피해가 뒤따랐다.

군산 지역에는 13일 호우 경보가 내려졌는데(13일 오전 8시 30분 해제), 국지성 집중 호우가 12~13일 사이 439mm의 비를 뿌렸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양으로 집계됐다. 2010년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7~8월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군산은 3년째 계속 몸살을 앓고 있다.

불볕더위가 한풀 꺾이자 물 폭탄을 방불케 하는 폭우로 야산 절개지에서 쏟아져 내린 토사가 장독대를 덮치고, 배수로가 막혀 빗물이 논으로 유입돼 벼가 물에 잠기는 등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피해가 심각한 군산시 나포면 주곡리, 성산면 대명리, 둔덕리, 도암리 등을 돌아봤다.

"올해 농사는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논두렁에 심은 옥수수, 콩, 참깨 등이 물에 잠긴 모습.
 논두렁에 심은 옥수수, 콩, 참깨 등이 물에 잠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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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에 도착한 시각은 지난 13일 오전 11시. 물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흥건히 고여 있는 논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복구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고, 지대가 낮은 지역은 논두렁에 심은 옥수수·콩·참깨·고추·호박 등 농작물이 모두 황토물에 잠겼다.

이곳 농민들은 하늘이 구멍 난 듯 쏟아지는 폭우를 바라보며 1년 농사 걱정하느라 밤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뜬눈으로 밤새고 새벽부터 들녘에 나와 물에 잠긴 논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하면서도, 벼를 짓누르고 있는 쓰레기를 치우느라 아침 식사도 거른 상태였다.

황장묵씨 아내가 일을 하다말고 군산시의회 김영일 의원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황장묵씨 아내가 일을 하다말고 군산시의회 김영일 의원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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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잠긴 논을 가리키며 황톳물이 무섭게 보인다는 황형묵 어른
 물에 잠긴 논을 가리키며 황톳물이 무섭게 보인다는 황형묵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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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의 전화를 받고 나왔다는 군산시의회 김영일 의원을 만났다. 김 의원은 "오전 5시부터 피해 현장을 확인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쓰레기를 치우던 황장묵(66)씨의 아내는 "다리와 길(농로)을 높여달라"고 하소연했다.

"지금은 조금 괜찮네. 아까만 해도 이 부근이 거의 물바다였어유. 이 쓰레기들도 물이 빠지기 기다렸다가 논에서 건져낸 거예요. 이놈의 난리를 해마다 한두 번씩은 치러야 허니 우리가 어떻게 살겠어유. 비가 쏟아질 때마다 배수를 방해하는 저 다리랑 길을 하루빨리 높여줘야지 그대로 두고는 농사짓기 어려워유."

옆에서 지켜보던 황형묵(72)씨는 아직도 물에 잠긴 자신의 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 나이 먹도록 누런 황토물이 무섭게 보이기는 처음이오"라고 말했다. 황토물에 휩쓸려온 쓰레기가 논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걸 보니 겁이 나더라는 이야기다.

이어 황씨는 "지금도 겁나서 논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새벽부터 지금까지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아무래도 올 농사는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시골에 살마이 없어 쓰레기를 치울 인력도 없다"고 덧붙였다.

벼가 물에 잠기면 수확량 20%, 하루 지나면 40% 감소한다

정상모 씨가 손으로 목이 나오기 시작한 벼를 가리키고 있다.
 정상모 씨가 손으로 목이 나오기 시작한 벼를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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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가 쏟아져 작은 모래섬이 만들어진 논
 토사가 쏟아져 작은 모래섬이 만들어진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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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면 대명리도 농경지 침수는 물론 승용차가 운행을 하지 못할 정도로 도로가 파손되고 둑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작지 않았다. 정상모(53)씨는 "뒷산에서 쓸려 내려온 모래와 자갈이 수로를 막아 물이 넘치고 논을 덮쳤다"며 "뒷마을 천수답은 피해가 더욱 크다"고 탄식했다.

"모내기가 이른 논은 목이 길게 내밀기 시작했고, 조금 늦은 논은 벼가 알이 들어차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밤새도록 물에 잠겨서 걱정이네요. 이때 벼가 물에 한번 잠기면 수확량이 20% 감소하고, 하루 지나면 40% 감소하고, 사흘 넘게 지나면 1년 농사를 포기해야 하거든요."

이어 정씨는 김 의원을 향해 "지난해 여름에도 배수가 안 돼 큰 피해를 봤다"며 "우선 급한 것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도록 파손된 도로 복구와 수로에 쌓인 토사부터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비가 조금만 더 내리면 물이 빠지지 않아 어디를 덮칠지 모른다는 것.

국지성 폭우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전 배수개선 사업

수마가 삼킨 군산시 성산면 둔덕리, 고봉리 들녘(13일 오후 1시 현재)
 수마가 삼킨 군산시 성산면 둔덕리, 고봉리 들녘(13일 오후 1시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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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水魔)가 삼킨 성산면 둔덕리·고봉리의 논들은 마치 강처럼 보였다. 지난해 여름에 이어 두 번째 보는 가슴 아픈 광경. 복구를 포기했는지 인기척이 없다.

물에 잠긴 전봇대 사이로 승용차들이 병정 개미처럼 오가고 있었다. 둔덕리와 고봉리는 서해안고속도로 군산 나들목(IC) 부근으로 군산을 출입하는 도로변에 있는 마을이다. 갑자기 창피 감이 느껴지면서 외지인들은 군산의 처참한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들녘을 바라보던 김 의원은 "사전 배수개선 사업을 잘했더라면 농경지 침수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작은 농수로 공사도 시간당 100mm 이상의 국지성 폭우에 대비해야 해마다 되풀이되는 피해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산시, #폭우피해, #성산면, #나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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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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