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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발행된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지에 한국 출신 구본경 박사(35)의 연구 실적 논문이 게재됐다. 구 박사는 네덜란드의 왕립 기초과학 연구소인 후브레흐트(Hubrecht) 연구소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다.

네이처지에 게재된 구 박사의 논문은 후브레흐트 연구소를 이끄는 한스 클레버스(Hans Clevers. 55) 박사팀 명성 위에 또 하나의 업적을 쌓는 것이어서 네덜란드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구본경 박사의 전문 연구 분야는 생쥐 유전학이다. 생쥐 유전학 중에서도 유전자 결손 생쥐를 제작하여 유전자의 생체 내에서의 기능을 분석하는 것이다. 네이처지에 실린 그의 논문은 유전자 결손 생쥐를 통한 연구다.

유전자 명 Rnf43와 Znrf3는 유사 유전자인데, 두 유전자가 내장의 상피세포에서 모두 결손된 생쥐를 만들었을 때, 내장에 종양을 형성하는 것을 관찰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Rnf43는 인간의 대장암, 췌장암, 담관암 등에서도 관찰된다는 사실이 최근 네이처 지네틱스 지 등에 실렸으며, 구본경의 논문에도 소개되고 있다.

네이처 지에 실린 연구와 관련된 구본경 박사의 실험 사진: 돌연변이 생쥐 (Rnf43;Znrf3 Mutant)의 내장에 생성된 종양 조직을 보여주고 있다.
 네이처 지에 실린 연구와 관련된 구본경 박사의 실험 사진: 돌연변이 생쥐 (Rnf43;Znrf3 Mutant)의 내장에 생성된 종양 조직을 보여주고 있다.
ⓒ 구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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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 이론이 암에서 관찰되는 돌연변이의 이유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구 박사의 실험이 의학계에 미칠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Rnf43이 암 생성에 중요한 Wnt 신호 체계에서 수용체의 발현 조절을 한다는 점은 Rnf43 돌연변이가 있는 암의 경우 수용체에 붙는 리간드(Ligand)의 양을 조절하여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함으로 앞으로 제약업계에도 중요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네덜란드로 건너온 한국인 과학자 구본경

1977년 생으로 포항공대에서 학부, 석사, 박사를 끝내고 2009년 네덜란드의 후브레흐트 연구소(http://www.hubrecht.eu/)에서 한국인 1호 박사가 된 구본경 박사는 네덜란드에 오게 된 이유를 "일의 성과를 확실히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과 실험 실적을 갖춘 한스 크레버스 박사와 함께 연구하고 싶어서"라고 짧게 답했다.

후브레흐트 연구소는 네덜란드의 왕립 과학아카데미(KNAW-Koningrijk Nederland Academie van Wetenschappen: 네덜란드에 있는 인문, 자연 과학 관련된 명성있는 아카데미 위원회로 정부의 과학 정책에 대해서 조언, 국회, 정부 부처, 대학, 연구소, 연구 자금 지원처 등에 자문, 정책 조언을 하는 네덜란드의 과학자들을 위한 핵심 조직)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구소다.

성체 줄기 세포의 연구 실적은 세계적으로도 으뜸이며 위트레흐트 대학 메티컬 센터와 임상 실험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실험의 성과를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연구소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 연구소 소장인 한스 크레버스는 올 6월에 KNAW의 대표가 되었으며 네덜란드 최고의 과학자로 꼽히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 구본경 박사. 네덜란드로 와서 연구 실적을 쌓은 지 만 3년 만에 네이처 지에 자신의 실험 논문이 실렸다.
 화제의 주인공 구본경 박사. 네덜란드로 와서 연구 실적을 쌓은 지 만 3년 만에 네이처 지에 자신의 실험 논문이 실렸다.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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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과정을 끝낸 많은 한국인 과학자들 가운데 네덜란드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구 박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한국인과 일을 해보지 않았던 많은 연구원들은 그의 능력을 의심하기도 했다고 한다. 남보다 더 노력하고 보다 성실한 태도로 연구에 임하니 지금은 오히려 구본경의 업무 방식을 따라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3년의 과정을 지내면서 구 박사는 후브레흐트 연구소에서 연구해 온 기본을 충실히 활용했고 마침내 성체 줄기 세포에 관련한 부분에서 꼭 필요했던 실적을 얻을 수 있었다. 이곳에 와 만 3년 만에 그의 연구 실적을 기술한 논문이 세계적인 과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네이처 지에 실렸다.

향후 논문이 끼치게 될 영향

현재 Wnt 리간드의 분비를 억제하는 약물이 임상 전 단계에 있다고 한다. Rnf43에 돌연변이가 있는 암들이 이들 약물에 의해서 치료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개인별 암세포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알맞는 처방을 하는 방식의 치료가 현실화 된다고 한다. 돌연변이에 의해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한 이유다.

한국과 유럽의 과학에 지원되는 연구비 그리고 연구실적은 어떨까?

한국과 다른 나라의 과학에 지원되는 연구비 비교 그래프
 한국과 다른 나라의 과학에 지원되는 연구비 비교 그래프
ⓒ 유네스코 사이언스 리포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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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및 유럽의 과학자들의 연구 환경이 한국보다 훨씬 나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한국은 이미 OECD국가 중에 인구 대비 연구비에 투자하는 금액이 세계적인 수준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비 지원으로 오히려 서구의 많은 선진국으로부터 찬사를 받는 국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연구비가 적은 나라인 유럽에서 더 많은 연구 실적들이 나온다.

네덜란드는 한국의 1/3의 인구이므로 비교하기에는 적합한 대상이 되지 않을 듯하여 한국보다 인구가 많은 영국과 비교하면서 한국의 연구비 지원과 실적에 대해 알아보았다.

영국의 경우 연구비 지출 비용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지만 연구 실적 면에서는 3배 이상의 실적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유럽에서 연구비를 책정받기는 무척 어렵다.

자신의 연구 실적 및 명성, 그리고 그 연구가 얼마나 큰 실험적 성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지에 대한 평가가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연구비를 책정 받기 쉽다.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한 '공평하게 나누기식' 연구비 책정이 그 원인이라 볼 수 있다. 모두에게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적어도 유럽의 과학자들의 세계에서는 용인되기 어려운 관례다. 한국에서 책정되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 투자비 대비 성과는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몇 가지 다른 연구 문화

후브레흐트(Hubrecht) 연구소 내 실험실 모습
 후브레흐트(Hubrecht) 연구소 내 실험실 모습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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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위보다는 실적이 우선이다.

구 박사는 한스 클레버스와 연구에 대한 생각이 달라 몇 번의 부딪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권위는 없다. 단지 올바른 실험을 위한 연구 계획인지에 대해 서로 치열하게 논쟁을 한 후, 제안을 한 연구원을 믿고 기다려준다. 그 결과가 옳았다면 평가를 받게 되고 결과가 옳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함께 분석하게 된다. 이런 문화는 연구자로서의 책임을 보다 강하게 만든다.

2. 한국에서 박사 후 과정의 연구를 하는 과학자들은 제대로 된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가 힘들다.

구 박사가 이곳에 와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한국보다는 경제적 상황이 좋아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연구를 하지만 경제적 자립이 불가한 것이 박사 후 과정이라고 한다면, 네덜란드는 가족과 생활을 하면서도 연구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다. 공부와 연구로 십수 년을 투자하고도 경제적인 뒷받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은 곧 한국에서 과학자의 길을 걷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3. 내 자식 같은 존재가 아니라 나의 경쟁자이며 동료 과학자라 생각한다.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결코 수직적 관계가 아니다. 연구소의 소장인 클레버스의 방은 아주 작다. 클레버스는 그나마 이 연구소 소장이라 혼자 방을 쓸 수 있다. 모든 선임 연구원들은 자신의 방이 없다. 연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방을 쓴다. 시설 확충을 위해 현재 연구소의 건물을 증축 중이긴 하지만 사실 어는 곳에서도 권위를 찾아볼 수가 없다. 특혜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존경의 뜻을 위해 특별한 행사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제 시작이다

자신이 실험에 필요한 쥐를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결과에 매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지겹도록 파고드는 연구를 하며 재미와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줘도 좋다.

단지 자신이 가는 길에 후회가 없고 잘할 수 있는 일,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인생을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스스로 알고 가족들이 인정해주면 된다는 구본경 박사의 말에 기자가 왜 인터뷰 내내 재미있고 유쾌했던가를 알 수 있었다. 행복에너지는 참 쉽게 전이된다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될 수 있으면 세계 속에서 경쟁하며 성장하고 싶다는 구본경 박사. 네이처 지에 연구 논문이 실렸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논문 이야기보다 한국인 과학자로 살고 있는 구본경이라는 사람에 매료됐다. 과학을 하는 사람의 자세, 한국인으로서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유쾌하게 그의 생각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요즈음 어머님은 더 이상 아들에 대한 자랑을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박사가 되어도 제대로 돈을 벌 수 없는 아들이 더이상 자랑꺼리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나봐요. 아마 이제는 다시 친구들에게 자랑하시지 않겠어요?"

자식이 과학자라는 사실이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은 나라에 과학 강국의 미래가 있을까?


태그:#구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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