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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항공 승무원들.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항공 승무원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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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는 들뜬 마음에 너무 서둘렀는지 일찍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 내 은행에서 환전을 하고, 2층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도 한참을 기다렸다가 출국수속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 가족이 선 출국 줄이 조금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긴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들뜬 한국인은 보이지 않고, 이삿짐마냥 거창한 짐을 들고 나온 베트남인들 일색이었습니다.

바로 앞에 선 베트남 남자는 테이프로 동여매고 또 동여맨 종이 박스를 옆에 두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전자상가에 간 적 있는데 고객의 상당수가 외국인 노동자들이라는 말을 주인한테서 들었습니다. 아마도 종이 박스 안에는 소형 전자제품이 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산 압력밥솥이라든가 카세트라든가, 하는 물건들이 소중하게 보관돼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돌아가는 모든 상황이 조금 특별했습니다. 내가 기대했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난 당연히 연휴를 맞아 외국으로 떠나는 들뜬 한국인들 속에서 여행의 설렘에 허우적거릴 줄 알았습니다. 물론 베트남 사람들에게 들뜬 표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또한 무척 흥분돼 있을 것입니다. 고향으로 간다는 설렘은 아마도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일 것입니다.

내가 서 있는 줄이 이런 이유는, 태국으로 여행을 가면서 베트남항공 티켓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결과 베트남항공이 가격이 가장 쌌기 때문에 항공권을 계약했는데 베트남항공은 베트남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선이었던 모양입니다. 베트남 항공은 하노이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태국 스완나품공항까지 가는 노선입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아이쇼핑 중인 큰 애.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아이쇼핑 중인 큰 애.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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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오르자 아오자이를 입은 승무원들이 친절한 미소로 반겼습니다. 그런데 자리에 앉으면서 약간의 갈등이 생겼습니다. 남편과 큰애와 내가 한 줄에 앉고 작은애만 떨어져 앉아야 하는데 작은애가 혼자 앉기 싫다고 했습니다. 내가 바꿔주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안 가면 남편이 바꿔줘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남편이 외톨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애들이 커가면서 가정에서 남편은 다소 왕따 아닌 왕따가 돼가는 게 보였습니다. 특별히 남편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다소 보수적인 남편은 아이들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을 볼 때 주로 화장실 불을 끄라고 일러주고, 친구는 의리로 사귀어야 한다든가, 늘 뭔가 가르쳐주고 싶어했고, 아이들은 남편의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남편은 아이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런데 외톨이 남편은 외톨이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자신이 굳이 그 자리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새 자리에서 잘 적응했습니다. 남편의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는 50대 아저씨인데 그 아저씨와 아주 사이좋게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신보다 연장자와 더 쉽게 정서적 교감을 이루는 남편에게 안성맞춤인 자리 배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심했습니다.

베트남항공의 식사. 저가항공만큼 싼 가격이지만 태국까지 가면서 밥도 두 번이나 주고 음료도 자주 주어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베트남항공의 식사. 저가항공만큼 싼 가격이지만 태국까지 가면서 밥도 두 번이나 주고 음료도 자주 주어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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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자리엔 소위 말하는 '베트남 며느리'가 앉았습니다. 한국 남자랑 결혼한 베트남 여자로 명절을 맞아 가족과 함께 고향을 방문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아이는 두 명이었습니다. 큰애는 서너 살로 보이고 작은아이는 아직 돌도 안 된 것 같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아이들은 비행 내내 울었습니다. 베트남 아줌마는 천성이 에너지가 넘치고 명랑해 보였지만 가는 시간 4시간 동안 번갈아가면서 울어대는 아이들 때문에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남편 되는 한국 남자는 창가 쪽에 앉았는데 우는 아이들을 안아서 어른다거나 적극적으로 달래려는 의지가 안 보였습니다. 이웃집 아이를 보듯이 '왜 울어, 왜 울어?' 하면서 한 마디 보탤 뿐이었습니다. 엄마 혼자 애가 탔습니다. 예전에 이란항공을 탔을 때 어린 아이를 안고 통로를 오가며 어르던 이란 남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이란 아버지들은 아이들의 양육에 늘 적극적인 모습이었는데 이날 비행기에서 본 한국 아버지는 너무 방관자적이었습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는 것이라던가, 아이를 돌보는 일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악을 쓰며 울어대니 그도 아버지로서 속이 타 들어갔겠지만 겉으로는 정말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저 옆자리에 앉은 이웃과 다름없는 태도로 아이들에게 "왜 울어, 왜 울어?" 할 뿐이었습니다.

"시끄러워 죽겠네."

갑자기 내 오른쪽 옆자리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 큰애가 큰 소리를 쳤습니다. 안 그래도 죽을 지경일 것 같은 베트남 아줌마를 우리 큰애가 더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삐딱한 사춘기에 접어든 큰애는 공공연하게 아이들을 싫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음악 듣는 게 방해되니까 참다가 한마디 한 것이었습니다. 큰애는 베트남 아줌마의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어려움을 모르는 것이고, 그저 자신이 방해받는 게 짜증날 뿐인 것이었습니다.

우리 앞자리에 앉았던 중년의 한국 여행자도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구경하다가 베트남 아줌마한테 한마디 했습니다.

"애 좀 달래봐요."

결국 조용히 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악을 쓰면서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베트남 엄마는 진땀을 뺐지만, 어느 곳에도 그녀를 도와줄 구원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난 구원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굉장히 적극적이고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나도 아이 키울 때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큰애가 어릴 때 고속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그때 아이는 좁은 버스 속에서 자지러질 듯 울었고, 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정말 난감했었는데 한 아주머니가 능숙한 솜씨로 아이를 달래주었습니다.

그때 빚진 걸 갚을 기회라고 생각하고 베트남 아줌마에게 아이를 봐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미안해하는 미소만 지을 뿐 아기를 건네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는 자기가 본다는 원칙이 있는 것도 같고, 결국 아기를 봐주려던 마음을 접어야 했습니다.

아기는 울고, 남편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면박을 주고, 베트남아줌마가 경험하는 지옥을 보면서 외국인 며느리들이 우리나라 와서 겪을 고충이 느껴졌습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그들의 삶이 참 힘들 것 같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에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사춘기 아이들과의 여행은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매사 삐딱선을 타는 아이들은 사진을 찍자고 하면, 사진은 왜 찍어야 하느냐며 투덜거리고, 이걸 하자고 하면 저걸 하고 싶다고 떼쓰고, 밥 먹으러 가자고 하면 텔레비전 보겠다고 버티고, 아주 작정한 것처럼 매사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낯선 이국땅에 버리고 오고 싶을 정도로 미울 때도 많았습니다. 아마도 이번 태국 여행기에는 아이들에 대한 험담이 많을 것 같습니다.



태그:#베트남항공, #아오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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