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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려 앉아 콩 타작을 하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검사가 잘못을 저지르면 누가 처벌 하지?' '검사들도 처벌 받은 적이 있었나?' 이 궁금함은 지금 내가 두드리는 도리깨질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래도 살다보면 괜히, 그냥 궁금해질 때가 있다. 촌에 사는 나같은 사람이 감히 궁금해할 대상이 아니랄 수도 있지만 .

그 궁금함은 아마도 최근 보았던 뉴스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현 대통령이 퇴임 후에 살게 될 집 '내곡동' 땅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 땅 매입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를 하는둥 마는둥 한 적이 있었다. 그 수사가 엉터리라는 비난이 일자 국회가 나섰고 특검법을 만들어서 다시 재수사를 하게 되었다. 그 뉴스를 본 후 내내 찝찝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보통의 상식이라면 수사를 했던 검찰은 부끄러워 해야 한다. 이 정부 들어서만 벌써 부실수사,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으로 여러차레 특검 논란이 있었으니 말이다. 멀쩡한 검찰을 두고 다시 특검을 하는 건 국가적 에너지 낭비에다 세금낭비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검찰이 반성하거나 부끄러워 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내 귀를 의심케 하는 뉴스가 뒤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최교일 서울지검장이란 사람이 한 발언은 가관이다.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 경호실 직원을 배임죄로 기소하면 배임으로 인한 이익이 대통령 일가로 귀속이 되는게 부담스러워 기소하지 않았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새삼 드라마 <추적자>에 나왔던 대사가 생각나는 순간이다. 거기엔 장병호란 전직 대법관이 이런말을 한다.

"검사는 나쁜 사람을 잡는 게 아니야. 잡을 수 있는 사람만 잡는 거지."

그렇게 잡을 수 있는 사람만 잡아서였을까? 검찰은 노무현 정부 시절 KBS 사장을 지낸 정연주씨에 대해선 기소할 사항도 아닌 일로 기소해 법원에서 망신을 당했다. 그렇게 멀쩡한 방송사 사장을 퇴임케 하고 피의자로 몇 년간 고생시킨 것에 대해 검찰이 사죄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무리한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한 담당 검사들은 높은 자리로 승진했다는 말은 들었다.

견제받지 않는 검찰

처음의 궁금함으로 돌아가보자. ' 검사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누가 처벌할까?' 검사들도 많은 잘못을 한다. 불법, 탈법은 물론 비리도 저지른다. 힘 있는 기관들의 잘못은 그 잘못이 개인의 잘못으로 끝나지 않는다. 직접적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경찰의 비리에 대해선 상부기관인 행정자치부에서 관리 감독한다. 행정부 공무원들의 탈법행위는 감사원이 개입한다. 정치인들의 위법도 수사받고 처벌받는다. 기업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고 교수, 종교인, 언론인도 예외없이 처벌받는다. 드물긴 하지만 법관들도 혹독한 수사를 받거나 기소되기도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군이 2만 가지 있다고 하는데 그 모두는 검찰의 수사, 기소대상이 될 수 있다. 단 한가지 직업군만 빼고.

그 한 가지 직업군이 검찰이다. 정말 검찰에 대해선 아무도 처벌할 수 없을까? 경찰, 감사원, 국회, 법원... 불행히도 이들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기관도 검찰을 조사하거나 기소할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왜 그런가? 그건 검찰만이 수사권,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독점 영장청구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독점 기소권, 기소재량권, 형 집행권까지 모조리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지 한 번 보자. 우선 검찰의 지휘를 받아야만 하는 경찰이 검찰을 수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살펴보자. 속되게 말해서 경찰이 검찰에게 '계급장 떼고 한 번 붙어보자' 하고 덤비면 어찌될까.

그 결과는 올해 일명 '밀양경찰모욕사건'이라는 경찰의 굴욕 사건으로 결론났다. 대구지검의 검사가 밀양경찰서의 한 경찰에게 수사축소를 지시하며 막말을 하고 모욕감을 줬다고 주장하는 사건이다. 경찰에서는 이를 심각한 권한남용과 모욕이라고 보고 해당검사를 조사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경찰은 그렇다 치고 법원은 검찰에 대해 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활수 있을까? 이도 매우 회의적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2009년 1월에 발생한 '용산참사'를 기억할 것이다. 서울 용산의 철거민들이 농성중에 진압사태로 여러명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최근 개봉된 '두개의 문'이란 영화도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뒤 많은 국민적 관심속에 재판이 진행되었다.

이 사건 재판과 관련해서 특이한 일이 있었다. 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수사기록을 공개해서 검사, 변호인, 판사가 실체적 진실에 대해 확인을 해 나가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사건의 수사기록 중 2천여 쪽에 대해 검찰이 재판에서의 공개를 거부한 일이 발생했다.

그 미공개 수사기록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작전 증명여부를 다투는 주요한 증거자료였다. 그러나 검찰은 피해자들과 변호인의 강력한 공개요구를 거부했다. 사생활 보호등의 이유를 댔다. ( 노무현, 한명숙 사건에서는 확인되지도 않은 피의사실들도 언론에 공표하던 검찰이 이 사건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이야기 했다)

검찰이 정당한 이유 없이 주요 증거자료를 내어놓지 않자 1심 재판부가 검찰에 대해 자료공개를 명령했다. 그러나 검찰은 거부했다. 법원의 판결도 수용하지 않은 거였다.

법원의 명령을 거부하는 사태에 직면한 법원은 고심 끝에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2010년 1월 마침내 이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가 재정신청 사건의 재판부를 통해 입수한 문제의 미공개 기록을 피고인 측에 공개했다. 검찰은 반발했고 재판부 기피신청을 내어버렸다.

형사소송법의 기초조차 허무는 이런 행태에 대해 헌법재판소까지 나서 검찰을 질타했다( 헌법재판소 결정 2010.6.24. 2009 헌마 257). 그러나 그 뒤에도 검찰은 이 일에 대한 어떤 반성의 표현도 없었다.

그 뿐 아니다. 이야기를 검찰 내부의 비리로 옮겨보자. 정기적으로 떡값(?)과 성상납을 받아오다 들킨 '스폰서 검사'(2010년 PD수첩 방영) 사건을 알 것이다. 그중 압권은 일명 '그랜저 검사' 사건이다. 2008년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정모 부장검사는 건설사 사장으로부터 사건청탁과 함께 그랜저 승용차를 상납 받았다. 그리고 조폭처럼 사건 뒤처리를 해줬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되고 억울한 민원인이 고발을 하자 검찰은 수사에 나섰다. 수사를 나선 주체는 그랜저 검사가 소속된 서울중앙지검이 다시 맡았다. 동료검사에 대한 비리를 같은곳의 또다른 동료검사가 맡은거다. 그 결과는 예상하는 대로다.

더 큰 문제는 정치검사들이 벌이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개입행위들이다. 이런 사례는 앞서 언급한 정연주 KBS 사장 배임기소 , 인터넷의 미네르바 사건, 한명숙 등 야당에 대한 먼지털이 수사, PD수첩등 언론인에 대한 압박수사등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정도로 많다.

계속 반복되는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검사가 1,800여명이라 하는데 이들중 범법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선 누가 조사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나?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이와 관련해 최근에 의미 있는 책을 한권 읽었다. 책 제목은 <검찰공화국>이다. 저자는 오창익 등이고 출판사는 '삼인'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 검찰의 가장 큰 두가지 문제, 즉 '권한이 너무 많다는 점'과 '견제 받지 않는 다는 점'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하고 설명하고 있다. 외국의 검찰 사례도 몇 가지 소개하면서 어느정도의 대안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다. 공감 가는 대목 몇 개가 있어 소개할까 한다.

(본문중에서)… 우리나라 검찰은 우선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 기소권은 소송을 제기할수 있는 권한이다. 기소재량권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을 재판에 세울지 말지를 검찰이 결정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죄가 없는 사람도 기소할수 있는 반면에 죄가 있어도 기소하지 않을수 있는 권한을 가진단 얘기다. ( 나중에 법정에서 기각되거나 무죄 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수사권 자체도 막강한 권한인데 기소까지 한 기관이 독점하고 있는 경우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다른 나라의 경우 제도적으로 이에 대한 많은 보완 장치가 있다.

영미법계 국가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아예 분리시켜 수사권은 경찰에. 기소권은 검찰에 준다. 프랑스는 무거운 범죄에 한해 수사판사에 의해 기소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독일은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한 한국과 달리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무조건 기소하는 기소 법정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 기소편의주의를 택하고 있다.

일본은 '검찰심사회'제도가 법제화되어있다. 일본검찰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한 경우 시민들도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기소를 의결할 수 있다.
최근 일본집권당의 실세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의 불법정치자금의혹을 기소하지 않자 검찰심사회가 강제 기소를 결의한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미국에는 대배심제도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피해자가 직접 형사소송을 수행하는 사인 소추제도가 있다. 독일의 경우 범죄피해자가 검사와 함께 원고자격으로 형사절차에 참여하는 부대공소제도를 통해 검찰권력을 통제하고 있다. …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외국의 사례도 하나의 참고가 될 것이다. 이런 시스템의 마련과 함께 정치권력의 민주성도 중요한 문제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시스템을 허물고 들어오기 시작하면 힘들어진다. 지난 5년간 질리도록 경험한 일이다.

정혜신의 책( 삼색공감- 개마고원)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검사들끼리는 "우리 집 강아지가 오줌을 못 가려서 큰 일" 이라고 하면 "한 번 잡아넣지 그래" 라고 받는 게 검사다운 재담으로 받아들여진단다.

그들의 격의 없는 우스갯소리가 내게는 왜 이리 섬찟하게 들릴까? 그 농담 속의 '강아지' 대신 '사람' 이란 글자를 집어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나만 그런가.

곧 대선이다. 대선후보를 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게다. 나는 그 여러 가지 관점 중에 한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검찰을 제대로 개혁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비대해진 검찰권력의 자기자리를 찾아주는 대통령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정치검사들에 대해서는 그 댓가를 반드시 묻는 인물이었으면 한다.

다음정부에서는 정상적인 검찰을 보고 싶다. 부끄러움을 아는 상식적인 검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특검, #검찰, #검찰공화국, #추적자, #두개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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