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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동동 띄운 보리차 서비스를 실컷 받고도 팁을 주지 않고 나와 내내 찜찜했다. 다시는 그 식당을 못 갈 것 같았다.
 얼음을 동동 띄운 보리차 서비스를 실컷 받고도 팁을 주지 않고 나와 내내 찜찜했다. 다시는 그 식당을 못 갈 것 같았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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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영화는 은행을 털기 위해 모인 갱들이 커피숍에서 쓸데없는 수다로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종업원에게 줄 팁을 거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 갱이 팁을 내기 싫다고 합니다. 팁을 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다른 갱들은 이 녀석의 인색함을 성토합니다. 가난한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나쁜 자본주의자로 몰아갔습니다.

<저수지의 개들>에서 미스터 핑크처럼 나 또한 태국을 여행하는 동안 팁 때문에 꽤 고민해야 했습니다. 물론 나의 생각은 미스터 핑크와 유사했습니다.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사는 것이고, 그들은 월급을 받고 자신이 할 일을 하는데 왜 팁을 줘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받는 서비스가 임금을 제외한 서비스로서 가격이 많이 싸다면 당연히 그 임금에 해당하는 팁을 줘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난 제 값을 주고 택시를 타고, 제 값을 주고 음식을 사 먹으면서 왜 또 다른 부담을 안아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 대문에 팁을 굉장히 아까워했습니다.

그렇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태국은 팁 문화가 정착한 곳인데 막무가내로 내 논리를 고집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팁을 줄 필요 없다는 나의 가치관과 태국의 팁 문화가 사사건건 부딪쳤습니다. 줘도 마음이 편치 않고, 안 주고 나오면 더 불편하고, 많이 주고 나면 아까운 마음에 속이 쓰리고, 인색하게 줄 때는 손이 부끄럽고, 이래저래 불만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팁 문제를 느낀 것은 택시에서입니다. 우리는 태국 도착하는 첫날 스완나품 국제공항에서 휴양지인 후아힌으로 바로 가기 위해 한국여행사를 통해 택시를 대절했습니다. 공항에서 후아힌까지는 4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가는 내내 팁을 어느 정도 줘야 하나, 하고 고민했습니다.

한국에서 인터넷에 실린 여행 기사를 읽으면서 태국이 팁 문화가 발달한 곳이기에 서비스를 받고나면 서비스 비용의 10프로를 팁으로 줘야 한다는 글을 읽었기에 우리의 택시비용을 계산해서 그 비용의 10프로를 팁으로 계산했더니 가격이 만만찮았습니다. 택시비도 비싼데 거기다 팁까지 줘야 한다니 좀 억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팁을 줄 필요가 없다, 택시비로 이미 난 충분한 돈을 썼다, 팁은 공연한 낭비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곳의 문화이지 않은가, 택시기사는 분명 팁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내내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이 싸움은 택시가 후아힌에 있는 호텔에 도착하고서야 끝났습니다.

길거리에서 맛사지를 받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맛사지를 받는 사람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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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사먹은 수박쥬스. 그런데 이상하게 길거리 음식에는 팁을 주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사먹은 수박쥬스. 그런데 이상하게 길거리 음식에는 팁을 주지 않는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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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에게 우리 돈 5000원 정도를 주었습니다. 택시비 10프로에는 못 미치지만 결코 작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불한 돈이 택시 기사가 기대했던 돈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내가 내민 돈을 공손하게 받았지만 표정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내게는 컸던 돈이 그에게는 작은 돈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난 그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어정쩡한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좀 찜찜했습니다.

팁의 문제에서 한 쪽이 만족하면 다른 한 쪽은 실망하는 구조였습니다. 내가 돈이 많은 사람이어서 돈 쓰는데 거침이 없다거나, 아니라면 다른 사람한테 무언가 주면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이라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난 돈도 없는 사람이고, 주는 것에서 크게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아니기에 이런 실랑이는 여행 내내 계속됐습니다.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게는 팁도 아끼고 싶은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나의 인색함은 한 음식점에서는 팁을 안 주고 나와 버리는 뻔뻔함을 저질렀습니다. 내가 전적으로 이익을 본 경우였습니다. 그런데 결코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음식 값을 안 내고 나온 것처럼 찜찜했습니다. 그 집 음식은 우리 입에 아주 잘 맞았고, 친절하게도 계속 얼음을 동동 띄운 보리차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만족감 높은 식당이었습니다. 

만족감이 굉장히 높았으면서 왜 팁을 안 놓고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종업원이 우리에게서 돈과 계산서를 받아가서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와서 잔돈을 돌려주었는데 그 잔돈을 팁으로 탁자 위에 두고 왔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무슨 심보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쌩' 하니 나와 버렸습니다. 내 배가 부르니까 남 신경 쓸 마음이 안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오고 나니까 종업원의 실망감이 떠올랐습니다. 그 집 종업원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얼굴을 피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돈 떼먹고 도망간 빚쟁이 기분이었습니다.

식당에서의 미안함, 어쩌면 죄의식 때문인지 마사지사에게는 후한 팁을 줬던 것 같습니다. 마사지를 받은 후 마사지사는 내게 은근히 지갑을 보여주었습니다. 돈을 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사지가 끝나자마자 자기 호주머니에서 돈주머니를 꺼냈다는 것은 팁을 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고, 난 이전에 팁을 안 내고 도망간 죄의식도 있어서 그녀의 행동을 전혀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들이 받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더 많은 팁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팁을 건네자 그녀의 얼굴은 처음으로 웃는 낯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태국의 팁 문화는 참 불편한 문화였습니다. 물론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면 탑 주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상황에 알맞은 팁을 줄줄도 알게 될 것이지만 생소한 문화를 처음 접하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태그:#태국, #팁, #맛사지, #수박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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