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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일도 많고 굳이 나까지 쓸 필요가 있나 싶어서 '나는 세입자다' 공모를 안하려 했으나 방금 집주인의 문자를 받고 너무 화가 나서 글을 안 쓸 수가 없다. 어쩜 이 사람은 이럴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독립을 한 건 올해 4월이다. 오랫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남들은 20대 초반, 혹은 10대에도 독립한다는데 내 나이 서른 후반. 결혼할 생각도 없으니 결혼해서 독립해야지라는 말은 무색하고 마흔이 가까워져 오는데 언제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독립을 결심했다.

집을 나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가 다행히 1년의 백수생활을 마치고 집에서 1시간 반이 넘는 직장에 취업했다. 엄마는 반대했지만, 언제까지 같이 살 수는 없다고, 어차피 평생 혼자 살 거라면 지금부터 혼자 살아보겠다고 씩씩하게 외치며 집을 알아봤다.

하지만 평일엔 일하느라 지치고 주말은 주말대로 기력이 쇠진해서 집을 오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피곤한 마음에 그저 햇빛 잘 들어오고 여자니까 1층은 위험하다고 해서 3층 정도면 되겠지 싶어 집을 계약했다. 물론 20년 된 빌라라는 게 맘에 걸렸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사 온 지 한 달 만에 시꺼멓게 물든 벽

이사온 지 일주일도 안되서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샜다. 똑똑 떨어지는 물에 등이 젖어 씻기가 불편했다. 왜 그러지 싶으면서도 참았다. 밖은 봄 가뭄이 한창이었다. 그 가문 날씨에도 화장실 벽에 시꺼먼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윗층에서 고쳐줘야 한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감감무소식. 애가 달아 윗층 세입자에게 윗층 주인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해준다고 하더니 태도를 바꾸어 못해준다고 했다. 주인에게 죄지은 사람모양 굽실대서 간신히 한 달 만에 윗층에서 고쳐줬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6월에 장마가 시작되자 작은 방에서 비가 샜다. 티비에서나 보던
양동이를 받쳐야 했다. 집주인에게 전화했다. 또 윗층에서 고쳐줘야 한다는 소리가 나왔다. 알아본다더니 1주, 2주, 3주. 아무리 얘길해도 계속 핑계만 댔다. 그러는 사이에 두 달이 흘렀다. 비가 많이 오자 천장뿐만 아니라 벽에서도 물이 새어들어왔다.

중간 중간 집주인은 불쑥 '집앞인데 수리업자랑 같이 왔으니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내가 집에 없는 시간만 골라서. 아무리 사생활 침해 운운하며 하루 전에라도 알려달라고 했으나 집앞에 와서 불쑥 연락해서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못 알려주겠다 하면 '아가씨가 협조를 안 해줘서 못고치는 거니까 나중에 내 탓말라'라는 협박성 멘트만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수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나는 집에만 가면 가슴이 뛰면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울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잠을 못자니까 정신과에서 수면제를 처방을 받아 그거라도 먹고 잠들어야 했다.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결국 부모님이 나섰다. 왜 한국 땅에서 젊은 여자의 이야기는 먹히지가 않는가에 절망하면서 부모님에게 맡겼다. 아버지의 성화로 천장은 고쳤지만 벽은 고칠 기미가 없었다. 나는 절반쯤 포기하고 곰팡이로 피어오른 벽을 도배해줄 수 있나를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은 비오는 날 확인하고 도배를 하라고 했다. 견적이 7만원 나왔다. 방금 주인에게 문자를 보내자 '나는 도배를 하라고 한 것이지, 해준다는 말은 아니었다'라는 답신이 돌아왔다.

도배는 그 집에 들어올 때 내 돈을 내고 한 것이다. 누수때문에 곰팡이가 폈는데 설마 허락맡으려고 도배 얘기를 물었겠는가? 도배를 하라는 말은 당연히 집주인이 도배를 해준다는 말이지 글자 그대로 하라는 허락이었다니.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저려서 야근하다 말고 이 글을 쓴다.

세입자 보호한다는 임대자보호법은 어디에?

왜 사람들은 이렇게 돈을 벌고 사는 걸까? 나는 이 집에서 얼마나 더 고통을 받아야 할까? 아직 집을 다 고치지 않았는데 내년 여름에 또 비가 새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로 다시 수면제에 의존해야 하는 밤이다. 집을 나가고 싶어도 2년 계약에 묶여있다. 임대차보호법은 누굴 보호하는 건지 의아하다. 많은 얘기가 생략됐는데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은 이 집이 누수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에게 속이고 소개했고 또 나 몰래 집 주인에게 집을 팔라고 부추기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착한 척 하지 말고 그 집을 빨리 내놓으란다. 하지만 곰팡이 핀 벽을 교묘히 가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기 싫어서 나는 못 가겠다. 이 집을 다 고치고 나가고 싶다. 그 전 세입자가 나를 속이듯이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눈물 흘리게 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집을 내놓은다고 해도 이 집이 나가겠는가? 임대차 보호법은 집주인을 보호하고 있고 나는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공모글입니다.



태그:#세입자, #나는 세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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