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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야시장으로 가는 길. 한낮에도 사람이 그리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지만 밤이 되면 더욱 인적이 드물다. 그렇지만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호텔에서 야시장으로 가는 길. 한낮에도 사람이 그리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지만 밤이 되면 더욱 인적이 드물다. 그렇지만 마음 놓고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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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은 호텔은 조금 오래된 곳입니다. 호텔 비교 사이트에서 가장 저렴한 호텔을 찾다가 이곳으로 결정했는데, 만족했습니다. 후아힌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마켓빌리지와도 가까웠습니다. 체인점 식당을 이용하기도 편하고, 또 후아힌의 중요한 볼거리인 야시장하고도 가까워서 걸어 다니면서 후아힌을 즐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이밖에 아침으로 뷔페를 주고, 수영장도 딸려 있었습니다. 어쨌든 저렴한 비용으로 호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기에 숙소에 매우 만족했습니다.

호텔에서 잠시 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호텔에 딸린 분수대 옆에는 무대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여가수 한 사람이 흘러간 팝송을 부르고 있었는데 그녀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두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또한 노래를 듣기보다는 맥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는 데 집중하고 있기에 실상 그녀는 누구도 듣지 않는 노래를 혼자 애써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이 조금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녀의 노래를 뒤로 하고 야시장 쪽으로 걸었습니다. 우리가 호텔에 도착한 시간도 늦었지만 저녁으로 라면을 먹는다, 씻는다 하면서 시간을 많이 지체하고 나왔기 때문에 도로는 한산했습니다. 조용한 휴양도시는 밤이 깊어지자 차도 오토바이도 멈추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별로 두렵지 않았던 것은 주도로를 따라 쭉 앞으로만 걸어가면 나오는 야시장때문입니다. 길 가에는 술집들이 좀 있었고, 그런 집에서는 으레 음악이 흘러나오고 불빛이 반짝이고, 야외 테이블에는 몇 사람이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술을 위해 술집에 앉았다기보다는 얘기를 나누는 분위기였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마주 앉아있기도 하고 남자들끼리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태국의 젊은 여자와 늙은 백인 남자 커플도 보였는데, 대체로 느긋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모습들 때문인지 낯선 지방이고 한밤중이었고 한적한 거리였지만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야시장은 이미 파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래도 몇몇 가게는 아직 장사를 하고 있었고, 그 가게 중에는 생선가게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생선가게 앞에서 머뭇거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시장에 갈 때도 남편의 발길이 멈추는 곳은 딱 두 곳입니다. 생선가게와 화원입니다. 남편은 생선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는데 시장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이들 가게로 자석처럼 끌려갔습니다.

태국에 와서도 생선가게 앞에서 행복해했습니다. 난전에 전시된 생선들은 숯불에 구워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빨간 색깔의 꽤 큰 생선도 있고, 타이거프론이라는 큰 새우도 있고, 이런 것들을 주문하면 즉석에서 구워주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시간이 많다면 그 중 하나를 사서 구워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린 너무 늦게 야시장에 도착했고, 시장은 이미 파장 분위기고 그런 조급한 상황에서 생선을 구워먹고 싶지는 않아 나중에 먹자고 말하고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우리가 묵은 호텔 창밖 풍경.
 우리가 묵은 호텔 창밖 풍경.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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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장 수박쥬스가게.
 야시장 수박쥬스가게.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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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가게도 아직 장사를 하고 있어서 그리로 달려갔습니다. 태국을 여행가면 꼭 먹어야 한다는 수박주스를 마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수박을 얼음과 함께 즉석에 갈아서 향신료를 조금 첨가해서 플라스틱 컵에 담아서 주는 음료였습니다. 아이들은 맛있다고 하는데 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남편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 쪼리를 사기 위해 막 문을 닫으려는 가게에 들어갔는데 너무 비쌌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2배는 비싼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음날 호텔 근처에 있는 마켓에서 사주겠다고 하고는 얼른 그 가게를 나왔습니다. 다음날 대형 마트에서 신발을 샀는데 시장 것하고 좀 다르기는 하지만 훨씬 싼 가격에 팔고 있었습니다.

시장을 나오다가 군것질거리를 파는 가게를 보았습니다. 주방장들이 쓰는 하얀 모자를 쓴 아줌마의 모습이 낯익었습니다. 블로그에서 사진으로 봤던 아줌마였습니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이 아줌마네 음식이 맛있으니 야시장을 가면 꼭 먹으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아쉽게 그 아줌마는 문을 닫고 있었고, 그녀가 정리하는 커다란 프라이팬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습니다. 역시 다음 날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우린 야시장에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야시장이니까 밤을 새워 열 줄로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후아힌은 휴양지이긴 하지만 백인 노인들이 장기간 쉬기 위해 방문하거나 태국의 중산층들이 가족 단위로 와서 휴가를 보내는 곳이니 만큼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였기에 밤이 늦으면 도시도 잠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야시장 나들이는 금방 끝났습니다.

야시장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물을 한 병 샀습니다. 편의점에서 나오는데 술 취한 태국 아저씨가 말을 시켰습니다. 못 들은 척하면서 빨리 걸었습니다. 그는 뒤에서 뭐라고 몇 마디 더 하더니 비틀거리면서 시장으로 사라졌습니다. 취한 사람 때문에 조금 긴장되기도 했지만 그의 모습은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조용한 밤거리를 걸었다면 분명 떨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뉴스에서 흉악한 사건사고를 많이 접하면서 공포감을 갖게 돼서 요즘은 대낮에도 너무 조용한 주차장이나 인적 드문 골목에서는 무서움을 느끼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니 늦은 밤 조용한 골목길을 걷는 것은 아예 엄두를 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곳 후아힌의 밤거리는 의외로 편안했습니다.


태그:#후아힌, #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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