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중>

새해 벽두부터 일감을 찾으러 나온 인부들로 오늘도 약속직업소개소(사무장 지병흠 태안읍 남문리 576-13) 안이 북적인다. 남들은 고이 잠든 새벽 5시 불을 환히 밝히는 소개소 안에는 요즘 부쩍 일감이 줄어 걱정이라는 인부들이 피곤한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고향이 어딘지, 과거가 어땠는지는 지금 중요치 않다. 그들은 오늘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 지만이 중요할 뿐이다. 막노동. 딱 세 글자로 압축돼 사회하위계층으로 분류되는 그들이지만 어디 처음부터 이 바닥에 도통했던 이 있을까.

"여기 오는 사람 대부분이 예전엔 자기사업 하다가 파산한 사람들이에요."

유년시절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누리고 싶은 것도 많았던 그들이 고향도 아닌 타지에서 매일 같이 새벽 찬 공기와 소통하고 있다.

"여기 오는 인부들 절반이 외지사람들이라고 보면 되요."

지병흠(60) 사무장. 3년 전 이곳에 소개소를 세운 뒤론 매일같이 태안의 새벽을 열고 있다.지난 1일 신정에는 일을 하지 않아 엄연히 따지면 오늘(2일)이 새해 첫 출발인 셈이다. 태안읍내만 4곳이 성업 중이라는 인력사무소. 일 년이면 뜨내기 인부들을 포함해 300여 명의 사람들이 이곳 약속소개소를 거쳐 간다고.

"그 사람을 증명할 만한 게 없으니까 신분증을 복사해 놓는다고. 뭐 그래봤자 하루나 길어야 오일 일할 사람은 잠깐 돈이 필요해 오는 거지만, 이중 절반은 오랫동안 이곳을 통해 일을 하고 있어요."

20대부터 70대까지 이곳을 찾는 인부들의 연령대는 폭넓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전부 남성인데, 하루 평균 20에서 30명의 인부들이 새벽시장이라 부르는 이곳을 통해 하루 일을 찾는다.

"태안에는 발전소외엔 일자리가 전혀 없다고 보면 되요. 그나마 9월에서 11월사이가 성수기고, 지금처럼 한겨울엔 일감도 없어요."

오전 7시 전후로 현장에 파견돼 저녁 7시나 돼야 일을 끝내는 인부들과 같이 이곳은 깜깜한 저녁이 돼야 셔터를 내린다.

"별보고 나왔다가 별보고 들어가는 게 우리 삶이에요(허허)."

씁쓸한 웃음이 입술 언저리를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이강래(60)씨. 이원면이 고향이지만 요즘은 새벽인력시장을 이유로 태안읍내 여관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루 12시간의 노동 끝 수중에 쥐여지는 돈은 9만 원. 약속소개소처럼 소개소에서 10%의 수수료를 제한 금액이다.

계사년이 밝았지만 이들은 언젠가 뜨거운 열기로 인생의 최정점을 맛본 사람인양 그렇게 아침을 맞고 있다. 새벽 6시. 동이 트기 전 새벽은 가장 어둡기만 하다. 장갑에 마스크에, 귀를 덮는 모자까지. 도톰하게 차려입은 인부들이 오늘 일감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시계가 아침을 향해 달리자 모두들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산다"는 김종원(55)씨의 말에 괜히 맥이 빠지는 기분이다. 전라도 남원이 고향이라는 김씨가 일거리를 찾아 태안 땅을 밟은 건 6개월 째에 접어들었다.

30년간 미장일을 했지만, 요즘은 전문직보다는 그때그때 현장에 나가 일을 해야 하는 게 우선인지라 일단 맡은 일이면 다 해내고 본다는 그. 

"하루 벌어서 3일 이상 일을 못 나가면 굶는다고 보시면 되요. 그나마 우리같이 객지 생활하는 사람들은 달방에서 생활해야 하는데, 월세내기도 빠듯하죠. 거기다 돈이라도 받으면 다행이게? 그러니까 크레인 올라가 농성하고 그러는 거예요."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 식비에, 생활비를 내고 나면 주머니에 남는 돈은 거의 전무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살다가 지난해 여름 건설경기를 쫓아 이곳 태안까지 내려오게 됐다고. "길면 일 년이죠. 딱 일 년만 더 있다가 안양으로 올라가야죠"라고 말한다. 서울 쪽에 일이 더 많지 않냐는 취재진의 말에 그는 "그쪽은 인건비도 워낙 싸고, 건설경기도 예전 같지 않아요. 물가가 비싸서 그렇지 태안이 일감은 많은 편이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에 예전에 일했던 사무실이 있는데 그쪽하고 여기(태안) 현장하고 계약해서 실제 일은 제가 하고, 나머지 계약 수수료만 주고 운영하는 경우도 있어요" 김씨 말에 의하면 실제 계약은 회사와 회사끼리하고 일은 김씨가 맡아 한단다. 일을 따준 대가로 김씨는 일 수주를 의뢰한 회사에 일정양의 수수료를 주기도 한다고. 일거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오게 된 사람 여기 또 있다.

고향 거제도를 떠나 인천에 살다가 10년 전 태안요양병원 건설현장에 투입되면서 10년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이영일(54)씨.  나이를 묻는 질문에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색바랜 주민등록증을 내보인다. 얼굴을 전부다 가리다시피한 그는 말없이 텔레비전 뉴스와 신문만 들춰볼 뿐이다. 캄캄했던 거리가 푸른색 조명이라도 켠 듯 푸른빛으로 변했다. 흰 눈을 바라보는 인부들의 낯빛이 어둡게 변한다. 오전 7시. "에이, 오늘도 틀렸는 가벼"라는 말은 이렇게 해도 선뜻 일어서는 이가 없다.

오늘은 목수 3명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목수로 일할 사람을 대체할 만한 인력이 여의치 않다.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저기 전화해 보는 지 사무장이 안팎을 드나들며 인력을 소집하는데 열을 올린다.

"어? 어어. 거기도 목수가 없다고? 알았어요".

겨울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일을 나가는 날이 보름도 채 되지 않는다는 인력시장. 새해와 함께 꽁꽁 언 건설경기 한파가 풀리길 바란다는 사람들.

"새해 소망이야, 일감 많이 생겨서 돈 많이 버는 거죠. 일 년에 못해도 20% 가량은 임금체불이라 이게 근절됐으면 하고요."


태그:#태안읍, #새벽, #인력시장, #새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