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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있는 헌재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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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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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헌법재판소법(헌재법) 제4조(재판관의 독립)에 명시된 조항이다. 헌재법 중 가장 눈에 띄는 이 조항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이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며, 국가권력의 남용을 통제하는 특별법원이라는 점에서 국회, 행정부, 법원과 따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런데 새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이런 막중한 사법부 수장자리를 현직 대통령이 서둘러 내정하면서 상식과 보편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임기 한 달여를 남겨 놓은 이명박 대통령이 신임 헌법재판소장에 대구·경북(TK) 출신이자 전형적인 보수성향 인물인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해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언론계·시민사회단체가 들썩이고 있다. 백번 양보해 대통령 당선인과 가장 가까운 연고와 성향의 인물을 고르다 보니 그렇게 했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온갖 부도덕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 앞에 입이 절로 벌어지게 된다.

이 후보자는 현 대통령이 지명권을 행사했지만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첫 공직 인선이라는 점에서 시선이 집중돼 왔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비판을 넘어 '최악의 인선'이라는 혹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도덕적으로 흠결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자고나면 불거지는 의혹들이 차마 듣기 민망할 정도다.

쏟아지는 의혹들... 왜 이동흡을 선택했나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해석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이다. 그런데 그 수장자리에 소수자보다는 다수의 편에 서서 편향된 법 해석 태도를 보인데다, 도덕적으로도 숱한 구설수에 오른 인물을 고집한 배경이 의아하기만 하다. '독재자의 딸', '유신의 딸'이란 과거의 오명을 떨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할 대통령 당선인이 혹여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나 않은지 의구심을 들게 할 정도다.

"BBK 특검법은 아홉 분의 재판관 중에 여덟 분이 찬성한 겁니다. 그중에 한 분, 유일하게 여기서 위헌이라고 하신 분이고요. 미네르바 사건,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 일곱 분이 위헌이라고 했는데, 두 분 중 한 분에 들어가십니다. 합헌이라고 강변을 하신 분이고요. 친일파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법률에 대해서도 친일파 재산인지, 또는 본래 갖고 있던 고유 재산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해서 한정위헌, 이런 등등의 문제들이 많고요."

박범계 민주당 의원(국회 법사위)은 이 후보자가 부적합한 7가지 이유를 지난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밝혀 주목을 끌었다. 전직 판사인 그는 헌재소장 후보자 지명을 받은 이 전 재판관을 가리켜 '기본권 보호 정신에 철저하지 않은 사람', '국민의 상식적인 법 감정에도 반하는 사람'이라고 지적하면서 그 이유를 조목조목 들었다.

무엇보다 대통령 당선인이 동향 출신을 대법원장과 헌재 소장에서 배제해온 오랜 관행을 깨고 같은 지역 출신 내정에 동의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평소 국민대통합과 탕평인사를 강조해온 박 당선인의 약속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 후보자에 대한 의혹들은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다. 거론하기조차 부끄러운 수준들이다. 법조인의 자격을 따지기 이전에 최소한의 공인의식도 갖추지 못한 처사에 따가운 비판이 잇따르고 있지만 대통령 당선인이나 인수위, 당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후보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던 시절, 개인 승용차의 기름값을 헌법재판소 사무처에 요구했다고 한다. 자신이 타고 다니던 관용차가 정부가 시행하던 승용차 홀짝제 대상에 걸리자, 개인 차량에 대한 기름값을 지원해 달라고 한데 대해 사무처 직원이 "전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하자, 끝번호가 다른 관용차 한 대를 더 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후보자는 끝 번호가 홀수, 짝수인 관용차 두 대를 이용했다고 하니 이러고도 헌법재판소장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된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
 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된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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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는 수원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하던 2005년에는 검찰에 골프장 예약을 부탁하기도 하고 대기업에 '송년회 협찬'을 요구하는가 하면 아파트 분양권을 위해 위장전입을 한 의혹까지 사고 있다. <한겨레> 15일자 기사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외부 강연 등 개인적인 일에 헌재 연구관을 동원하는 등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해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증언이 꼬리를 물고 있다"고 전할 정도다.

재산 형성 과정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특위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으로 재직한 6년간 본인과 배우자의 예금액이 같은 기간 전체 소득액과 비슷한 6억원으로 나타났다. 수입을 하나도 쓰지 않고 저축한 셈이 된다. 16일자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2~2003년쯤 차관급 대우를 받는 서울고법 부장 판사 시절 동료 판사들과 룸살롱에 출입해 후배 판사들에게 "검사들은 일상이니 '2차'(성매매)를 나가라"는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이밖에 이 후보자가 수원지법원장 재직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두 차례나 기소돼 수원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당시 한나라당 소속 수원시장에 대해 판사들의 반발을 묵살하고 법원 조정위원 자리를 계속 유지하게 했던 의혹도 제기됐다.

유신헌법 헌법소원 사건, 고의 지연 의혹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헌재 재판관 시절 유신헌법 관련 헌법소원 사건의 평의와 선고를 미뤘다는 의혹이 무겁게 다가온다. <한겨레>가 15일 1면 '이동흡 '긴급조치 헌법소원' 주심때 헌재소장 재촉에도 평의·선고 미뤄'란 제목에서 복수의 헌법재판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그는 헌재 재판관 시절 유신헌법 제53조와 긴급조치 1·2·9호의 헌법소원 사건의 주심을 맡았을 당시, 고의적으로 평의와 선고를 미뤘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는 2011년 10월 13일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공개변론이 열린 뒤 지난해 9월 14일 퇴임할 때까지 사건을 헌재 재판관들의 회의인 평의에조차 넘기지 않았다. '더 검토할 것이 있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는 것이다. 공개변론 뒤 1년 안에 평의를 거쳐 선고까지 내리는 게 보통인데, 아예 평의에 넘기지 않아 다른 재판관들이 의견을 낼 수조차 없도록 했다는 것은 압권이다.

이처럼 개인의 자질과 도덕성에 문제가 심각한 사람을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헌재재판소장 자리에 앉히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박근혜 정권 출범을 앞두고 국민들 사이에는 아직도 박 당선인의 과거사 인식에 대해 의심하는 눈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유신독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보편적인 국민 법 감정과 상식적 수준에 반한다는 점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기 힘든 상황이다.

과거사의 올바른 정리와 인식, 이에 대한 정당한 계승 없이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 기실, 박 당선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켰던 5.16 쿠데타와 유신헌법에 대한 올바른 법적 판단은 과거사 정리는 물론 현대사 규명에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이 때문에 아직도 당선인이 과거사를 청산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박 당선인은 후보시절부터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유신독재시절의 암울한 과거사에 대해서만은 유독 모호한 태도를 취해 논란이 가중됐다.

우리 사회에는 40여년전 유신헌법의 초법적 조항에 따른 피해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여전히 권리구제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8일 열린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유신헌법 53조 긴급조치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고 이 사건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어 헌재가 조속히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나치시대 내려진 판결에 대해 일괄적으로 무효를 선언한 독일의 입법례처럼 위헌적인 유신헌법에 기초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긴급조치에 근거해 내려진 판결의 효력을 일괄적으로 무효화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때문에 과거사 청산을 위해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무효화하는 국회 차원의 법이 제정돼야 하고,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선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선 초반부터 제기돼 왔다.

야당 의원들은 지난해 국감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제기한 유신헌법 53조와 긴급조치 1·2호 등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사건이 헌재에 2년여 넘게 계류 중인 걸로 안다"며 "헌재가 아직도 이 사건을 결정하지 않는 데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유신헌법의 위헌 논란이 끝나기 전에 유신헌법과 관련된 헌법소원 사건의 주심을 맡았지만 고의적으로 평의와 선고를 미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인물을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올린 박근혜 당선인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퇴임을 앞둔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이 "당파성이나 이념성이 치우친 사람은 헌법재판소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이동흡 반대' 입장을 밝힌 이유를 박근혜 당선인이 곱씹어 보길 부탁한다.


태그:#이동흡, #헌법재판소장, #유신,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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