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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청개구리 엄마의 심정을 아주 처절하게 느껴야 했던 여행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청개구리 엄마의 심정을 아주 처절하게 느껴야 했던 여행이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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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썽태우. 무더운 지방에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게 해서 좋았다.
 태국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썽태우. 무더운 지방에서 시원한 바람을 느끼게 해서 좋았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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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갈 곳은 '플런완' 이라고, 태국의 70년대를 재현한 세트장과 왕의 여름별장입니다. 이곳으로 가는 썽태우를 타기 위해 정류장을 향해 걸었습니다. 햇볕이 좀 뜨거웠습니다. 정류장이 있는 시장에서는 생선이 부패하면서 일으키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신발가게 아저씨에게 플런완 가는 썽태우 정류장을 물었는데 아저씨는 열의를 갖고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태국어였습니다. 아저씨는 우리가 못 알아듣자 자신이 직접 데려다 주려고 했습니다. 태국 사람들도 이란 사람들처럼 친절했습니다.

아저씨의 친절을 사양하고 걸어가는데 썽태우가 보였습니다. 운전사에게 플런완 가느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습니다. 트럭을 개조해서 만든 썽태우에 올라타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앉아있었습니다. 난 그가 차비를 받는 사람인 줄 알고 돈을 계산해서 건넸는데 웃으면서 아니라고 했습니다. 더위 때문에 좀 지쳐있었는데 썽태우가 출발하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바람 한 점 없던 도로에 썽태우가 움직이면서 바람을 만든 것인지 시원해졌습니다. 자연바람의 신선한 느낌은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에 비할 데가 아닙니다. 영혼까지 행복하게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태국에 와서 처음으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어제 저녁엔 귀찮은 문제가 자꾸 생각나 마음이 무거웠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호텔 식당에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 로비에서 아주 뚱뚱하지만 결코 불행해보이지 않는 어떤 아줌마의 유쾌함을 느끼고, 지금 썽태우를 타고 가면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은 인생이 살만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었습니다.

썽태우를 타고가면서 뒤를 따라오는 오토바이를 구경했습니다. 오토바이에 탄 청년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 우리와 마주보면서 달려올 때의 느낌은 조금 유머러스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동심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바람 같은 건 관심 없어보였습니다. 여전히 핸드폰세상 속에 빠져있었습니다. 큰 애는 가끔 고개를 들고 주위도 돌아보고 사진도 찍고 잘난 척 하는 표정도 지었지만 작은 아이는 핸드폰에 영혼을 저당 잡힌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썽태우에서 내리자 다시 후덥지근한 더위와 강렬한 태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왕의 여름별장을 물어볼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오토바이에 앉아있는 남자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여름별장에 대해서 물었더니 너무 멀기 때문에 오타바이를 타고 가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근처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장삿속으로 한 말이라고 단정 짓고 무작정 길을 건넜습니다.

긴 담장과 담장너머로 보이는 울창한 나무를 미루어 왕의 별장일 거라는 짐작이 갔습니다. 그런데 여긴 왕의 여름별장이 맞긴 하지만 일반인에게 개방된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더위 때문에 아이들의 인내심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남편도 짜증이 난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플런완까지 다시 걸어야 한다니까 다들 죽을상을 지었습니다. 걸을 만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더 짜증을 냈습니다. 아이들은 힘든 걸 정말 싫어했습니다. 큰 애는 특히 덥다거나 땀을 흘리는 걸 너무 싫어하는 편이었고, 남편 또한 5분 거리도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었기에 걷는 자체에서 어떤 즐거움도 못 찾는 편이었습니다. 가만히 서있어도 땀이 송송 맺히고 햇빛은 유난히 따가운데 한참 걸어야 한다니 다들 기분이 최악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큰 애와 남편은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은근히 나를 원망했습니다.

"내가 알고 그런 거야, 나도 처음 왔으니 그럴 수도 있지, 뭘 그걸 갖고 짜증을 내고 그래?"

나도 참지 못하고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싫어하는 거야."

큰 애가 지지 않고 대꾸했습니다. 서로 자기가 얼마큼 화났는지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었습니다. 핸드폰에 중독된 작은 애만 조용했습니다. 화를 내다보니 어느덧 플런완에 도착했습니다.

이모 옷 입고 선글라스까지 낀 작은 애. 어른 흉내를 내고 있지만 뽑기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걸 보면 아직은 애다.
 이모 옷 입고 선글라스까지 낀 작은 애. 어른 흉내를 내고 있지만 뽑기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걸 보면 아직은 애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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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70년대를 재현한 '플런완'이라는 곳이다. 사진찍기 좋은 아기자기한 건물로 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태국의 70년대를 재현한 '플런완'이라는 곳이다. 사진찍기 좋은 아기자기한 건물로 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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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런완은 태국의 70년대를 재현해놓은 세트장입니다. 모든 것은 목조건물로 이루어졌으며, 카페, 레스토랑, 극장, 전당포, 이발소 등을 옛 모습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과거를 향수할 수 있기에 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입구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오전 10시가 돼야 문을 여는데 30분 일찍 도착했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오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후아힌에 와서 태국인은 별로 못 보고 항상 백인만 봤었는데 이곳은 태국인이 많았습니다. 태국인들이 정말 좋아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오픈 시간이 됐습니다. 기다리던 사람들과 함께 입장했습니다. 플런완은 한 평 남짓한 가게들이 목조주택 2층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선글라스 가게에서 시간을 꽤 지체했습니다. 작은 애와 큰 애는 선글라스를 써보면서 즐거워했습니다. 하트모양의 선글라스도 있고, 동그란 것도 있고, 마침내 작은 애는 하나 골랐습니다. 그걸 쓰고 이모가 입던 원피스를 입은 작은 애는 어른 흉내 내는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큰 애는 시력이 안 좋아서 선글라스 고르는 데 장애가 있었습니다. 큰 애는 기념으로라도 갖고 싶어 했지만 난 쓰지도 못할 걸 사는 건 낭비라고 말했고, 큰 애도 그 생각에 동조는 했지만 그래도 동생도 갖고 있는데 자기는 갖지 못하는 게 화가 나는지 내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오뉴월 날씨처럼 변덕을 부리는 큰 애의 감정은 다시 급 다운돼서 우리에게 공연히 심통을 부렸습니다.

"또 왜 저러지?"
"그러게 말이야."

나와 남편은 애들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리로 가자고 하면 저리로 가고 싶다고 하고, 무슨 말을 해도 입을 쭉 내 밀고 심통을 부리고, 사진을 찍자고 해도 싫다고 하거나 정말 마지못해 찍고, 또 함께 갈 생각을 안 하고 자기들끼리 마음대로 앞질러 가버리고, 반항하기 위해 애쓰는 애들 같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애들에 대해 한참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때 태국 아가씨 둘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우린 벤치에 앉아서 그들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그때 한 아가씨가 다가오더니 사진 좀 찍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남편은 사진을 찍어주고 우리도 찍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 애들의 심통과 반항에 지쳐있던 우리 부부는 그 아가씨들에게 완전히 반했습니다. 너무 친절한 아가씨들이었습니다. 거기다 표정도 밝고 얼굴도 예뻤습니다. 교육을 잘 받은 애들 같았습니다. 우린 애들도 과연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슬픈 기분도 들었습니다.

먹구름 아래서는 구름이 걷힐 걸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서는 그 아가씨들의 상냥함을 결코 상상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린 우리 아이들 뒷담화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아가씨들을 칭찬하면서 아이들에게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렸습니다.


태그:#후아힌, #플런완, #사춘기, #썽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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