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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월 30일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정무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월 30일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정무분과 국정과제토론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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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후보자를 불러다가 너무 혼을 내고 망신을 주는 식의 청문회가 이뤄지니까 나라의 인재를 불러다 쓰기가 참 힘이 든다."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1월말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전격 사퇴에 대해 박근혜 당선인이 연일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자, 새누리당은 인사청문회법 개선을 위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여 인사청문회 자체를 논란거리로 만들고 있다.

게다가 지난 1일 김용준 전 후보자는 자진사퇴 이후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해명자료를 발표하면서 "가정은 물론 자녀들의 가정까지 파탄되기 일보직전으로 몰렸다. 가족이 이런저런 충격에 졸도하는 사태가 일어나기까지 했다"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가 매우 비인간적이고 정략적일 수밖에 없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비록 자신은 낙마했지만, 앞으로의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기존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은 셈이다.

MB정부 인사가 주는 교훈

물론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자질, 능력, 비전 대신 신상문제, 특히 도덕성 문제를 주로 들여다봄으로써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박근혜 당선인의 지적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만 기용하는 당선인 스타일 상 차기 정권의 인재풀은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현행 인사청문회를 통해서는 마땅한 인재를 그 인재풀에서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쨌든 박근혜 당선인 주변에는 위장전입, 불법증여, 투기 등을 관행으로 인식해왔던 기득권층이 대부분 아닌가. 그러니 인사청문회를 통해 도덕성을 문제 삼는다면 답답해질 수밖에.

그러나 당선인의 더 큰 고민은 그렇다고 현재 거론되듯이 마냥 도덕성을 무시한 채 능력만으로 사람을 뽑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MB정권을 겪으면서 도덕성과 상관없는 능력이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을 초래하는지 충분히 학습했다. BBK고 뭐고 상관없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준다는 이유만으로 MB를 대통령으로 뽑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첫번째 조각부터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말이 많았던 MB 정권. MB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드러나는 온갖 비리 등에도 불구하고 도덕성과 능력은 절대적으로 상관없다며 끝까지 자신의 인사권을 밀어붙었고, 이는 비극으로 점철되었다. MB부터 시작해서 많은 공직자들이 국가를 사적 이익창출 수단으로 이용한 사실을 지난 5년간 목격했다. 4대강 사업을 통해 건설자본의 배를 불리고, 공적 지위를 이용해 내곡동 대통령 사저 부지를 매입해 편법 증여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심지어는 국가기간산업마저 민영화를 밀어붙였던 고위층들. 능력이 좋으면 뭐 하는가. 그 능력을 이용하여 서민의 삶을 챙기기보다는 자신의 배만 불리는데.

결국 MB정권의 5년간 행태는 도덕성이 담보되지 않은 능력이 얼마나 더 무서운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혹자는 예전 관행으로 현재를 판단할 수 없다고 하지만, 모두 알고 있듯이 사람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떤 이가 40년 전 자신의 부를 위해 공적 지위를 이용했다면, 40년 후에도 그는 그럴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현재 새누리당이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청문회 제도는 2000년 그들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2006년에도 역시 그들의 주장대로 그 대상을 확장했다. 2006년 2월 5일 참여정부 장관 5명에 대한 청문회를 앞두고 박근혜 당선인이 대표로 있었을 당시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이 발표한 논평을 살펴보자.

"우리는 이번에 국회 인사청문회의 존재 이유를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다. 보은인사의 문제점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고발하고, 잘못된 인사는 국민 여론에 의해 철회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겠다. 현 정부 인사검증 시스템은 완전히 녹슬었다. 여당 사람들조차 현 인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개각하면 안 된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겠다."

잘못된 인사는 국민 여론에 의해 철회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인사청문회의 존재 이유라고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에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명분이야 위와 같지만 실제로 인사청문회는 항상 야당이 정략적으로 정부여당을 압박하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마치 죄없는 사람인냥 후보자들에게 돌팔매질 하는 야당 의원들. 야당이고 여당이고 간에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모두 오십보백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입장으로서 보면 인사청문회는 잘 짜놓은 쇼에 불과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한 인사청문회인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자료사진)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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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박근혜 당선인이나 새누리당의 주장처럼 현행 인사청문회를 개선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정부의 입장에선 인재를 뽑기 힘들고,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청문회를 통해 사회 지도층들에 대해 위화감과 박탈감을 느끼지만, 어쨌든 그 제도를 통해 국민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까지의 관행을 넘어서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국정철학과 공직자의 도덕성을 점검할 수 있다.

최근까지 인사청문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도덕성을 보자. 정부는 마치 도덕성과 능력이 별개인냥 주장하지만 해방 이후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도덕성은 그들이 말하는 능력과 오히려 반비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굴곡진 궤적만큼 기회주의가 판치던 것이 우리의 역사였던 바,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정도의 길을 갔던 이들은 사회 지도층이 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친일파가 그대로 득세하고, 독립군의 후예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고, 군사독재정부 하에서 온갖 편법을 동원해 자신의 배를 불린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 그 속에서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줄을 잘 서야 한다고, 윗사람 잘 만나 기회를 잘 잡는 것도 능력이라고 가르쳐오지 않았던가.

따라서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이 거론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재 검증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정철학으로서 도덕성을 세우는 일이다. 우리는 후보자를 통해 우리 사회가 걸어왔던 궤적을 반추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현재 우리가 지향 혹은 지양해야 할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후보자의 비리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인사청문회를 통해 그와 같은 문제를 공적으로 제기하여 다시는 이 사회에 그와 같은 기회주의가 가능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인사청문회는 단순히 인재 검증의 장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의 국정철학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장이며, 이를 인재를 통해 설득하는 과정이다.

정부의 국정철학을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인사청문회. 이와 관련하여 박근혜 당선인은 결코 불리한 입장이 아니다. 물론 자신과 그 지지 세력들이 모두 기존 관행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건 사실이나, 한편으로 그는 아주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내세워왔고, 많은 국민들 역시 그런 그가 주장했던 신뢰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 신뢰가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말이다.)

사실 현재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신뢰이다. 보수 인사들은 경제가 발전하고 일인당 국민 소득이 올라가면 국가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선전하지만, 신뢰가 전제되어 있지 않는 한 선진국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쓸데없는 신뢰비용 때문에 사회는 그만큼 합리화 되기 힘들고, 그들이 그토록 신뢰하는 시장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 당선인은 인사청문회를 망신주기라고 성토할 것이 아니라 이번 인사청문회를 통해 그가 신봉하는 신뢰를 보여줄 수 있기 바란다. 어울리지 않게 도덕성과 능력을 이원화 한다면 MB정부와의 차별성을 두기 어려울뿐더러 기존에 자신이 그토록 주장했던 신뢰라는 가치와도 멀어진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공직자. 그가 신뢰를 바탕으로 야당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인재를 찾을 수 있다면 그만큼 차기 정부의 지지도는 오를 것이며 국정운영은 수월해질 것이다.

이번 청문회는 그동안 '깜깜이 인사'라는 오명을 벗고 박근혜식 국정철학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또다른 기회다. 부디 박근혜 당선인이 인사청문회를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인식하지 말고 국정의 출발점으로 삼길 바란다.


태그:#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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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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