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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달, 5년 만에 한국을 다녀오면서 몇 군데 언론기관에 정기적으로 글을 쓸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 중 새로 나온 제 책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를 인터뷰 기사로 다뤄 준 한 일간지에서 칼럼 청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기고 주제, 분량, 마감일 등 구체적인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원고료는 주지 않는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인쇄매체와 달리 온라인 상의 기고는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제 글이 온라인에 실린다는 것을 몰랐던 점은 금방 조율이 되었지만, 온라인 글은 원고료가 없다는 근거는 어디서 찾아야 할지 당혹스러웠습니다. 애초 종이 신문 일간지로서 온.오프 라인의 기사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설령 온라인 전용 글이라 해도 글 내용에 따라 오프라인 신문에 싣지 말라는 법도 없을 텐데 온라인 필자에게는 고료를 주지 않는다니요.

대부분의 종이 신문이 존폐 위기에 놓일 정도로 온라인 접속이 대세인 상황에서 자기들은 언론의 기본 사명도 외면한 채 극도로 저질스럽고 지저분한 광고로 도배하다시피 하며 돈을 벌고 있으면서 필자에게는 버젓이 '공짜글'을 달라는 '심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황량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인쇄비가 들어도 더 드는 종이신문에 글을 쓰면 고료가 지급되고, 종이값도 안 드는 온라인상 기고에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말을 '당신은 유명 필자가 아니라서 원고료를 안 준다'는 의미로도 머리를 굴려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기사 유명 필자든 아니든 신문 원고료라고 해봤자 쥐꼬리 반 토막도 안 되는 민망한 수준이긴 하지만요.

그래도 그렇지, 설혹 내가 백원짜리 호떡을 만들어 판다 해도 공짜로 달라고는 못했을 텐데, 그렇다면 내 글이 호떡에 들어가는 한 줌 밀가루, 흑설탕 한 숟가락 값어치도 못 된단 소리니 비참한 한편 부아가 났습니다.

도대체 정신노동의 가치를 얼마나 업수이 여기고 깔보면 정당한 대가 지불은 고사하고 글을 거져 달라는 말이 나올까, 허탈과 비탄에 젖어 청탁을 해왔던 그 신문의 국장에게 아래와 같은 메일을 보냈습니다.

"제가 대가 없이 글을 쓸 때는 비영리 단체 등 공익성이 있는 곳이거나, 아니면 살림이 매우 어려워 도저히 원고료를 지급할 수 없는 곳에 한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습니다. 전자는 살면서 사회에 진 빚을 갚고 좋은 일에 동참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후자는 내가 가진 것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과 나눠야 한다는 의미에서입니다.

20년 넘게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제 스스로 정한 원칙을 지켜오며 글 쓰는 보람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귀사의 경우는 두 가지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기에 제게 하신 원고료 없는 청탁을 거절합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고료 지급은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지켜줘야 할 자존심에 대한 성의 표시라고 생각합니다. 글쟁이로서 돈을 먼저 생각하고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정신 노동이나 문화 예술의 가치에 대해 몰염치한 한국 사회가 매우 걱정스럽고 더러는 분노하게 합니다.

귀사는 타 매체에 비해 재정적으로 넉넉하고, 문화 예술의 존재 의미를 사회 저변으로 확대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온라인 상의 외부 기고에 대해서는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니 매우 당황스럽고 실망이 됩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대표 신문으로서 언론계를 선도하고 잘못된 사회 관행을 바로잡고 계도할 위치에 있음에도 타매체가 하는 대로 유야무야 그저 작은 이익을 좇아 나쁜 행태에 휩쓸리는 태도는 지도적 매체답지 않습니다.

제 말이 매우 불쾌하겠지만 국장님 개인을 향한 질타는 아니므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경영진에 제 메일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메일을 보낸 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지금껏 아무런 답신을 받지 못했습니다. 답신은커녕 '흥, 제까짓 게 뭐라고. 우리 신문에 글이 나가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것이지' 하면서 콧방귀를 뀌었을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해야 할 말을 한 것 같습니다.

바위를 뚫는 작은 물방울과 불이 난 숲속에 한 방울씩의 물을 담아 나르는 벌새처럼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고, 실상 그것 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현대는 온갖 것들이 상품화되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조차 버젓이 거래되고 있지만, 정신 노동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상품으로서의 일말의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거래되어서는 안 될 것과 정당한 값어치가 주어져야 할 것들이 뒤섞여 우리 삶을 근원적으로 피폐시키고 있습니다.

공짜글 달라는 매체들, 설마 "글이란 돈으로 살 수 없는 공익적, 정신적 가치를 가지니까 "라는 헛소리를 변명삼아 늘어놓지는 않겠지요?

덧붙이는 글 |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온라인 , #공짜, #기고 , #글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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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지냈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를 꾸리며 자유칼럼그룹 www.freecolumn.co.kr, 부산일보 등에 글을 쓰고 있다. 이민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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