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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오늘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1989년 5월 28일. 한양대 후문 쪽. 난 창립식이 예정된 한양대 안으로 진입하는데 실패하여, 몇 선생님과 함께 후문 쪽 담 밑에서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우리를 발견한 전경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 왔다. 막내 동생뻘이나 될까한 그 아이들이 말이다. 숨이 턱에 닿도록 뛰어서 그 자리를 피했다. 왜 네놈과 내가 서로 쫓고 쫓기는 상황이 돼야 하지?

그날 느낀 자괴감은 상당한 시간이 흐르도록 내게 붙어 있었던 것 같다. 그날 한양대에서 열리지 못한 창립식은 연세대에서 약식으로 진행됐고, 그렇게 '법외노조'이자 '임의단체'인 전교조가 출범하였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도 분회 건설을 강행했고, 분회 결성선언문도 읽지 못할 정도로 방해를 받았지만 어엿한 전교조 분회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단지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교사가 됐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1999년 7월, 나는 1989년 읽지 못한 분회창립 선언문을 읽을 수 있었다. 5년 간의 해직 생활을 마감하고 복직했다가 한 차례 전근을 했고 그 사이에 전교조가 합법화되어 분회를 재창립했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5월 28일이 전교조 창립일이다. 이십몇 년 동안 교육상황은 개선된 것도 있고, 여전히 제자리이거나 퇴행인 것도 있지만, 변화된 상황이 꼭 운동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물리력으로 탄압하던 시절에는 정권의 폭력성이 선명하게 부각되어 싸울 때도 어느 쪽에 대항할 것인지가 명확했다. 국민들의 공감대도 컸다.

그런데 그 사이 정권도 몇 차례 바뀌고, 초유의 IMF 사태도 맞고, 신자유주의 물결, 정보화 사회로의 이행, 비정규직 양산, 교육 시장화 등의 변화가 숨가쁘게 우리 곁을 질주했다. 싸움의 전선을 모호하게 만들고, 자본주의적 욕망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간 군상들의 21세기적 삶의 방식을 저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일까?

민주화가 진전되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다수를 점한 권력은 자기들의 입맛에 따라 법, 제도를 착실하게 정비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업고 교묘한 탄압을 진행하고 있다. 전교조 관련 해고자에 대한 '조합원 신분 유지 불가'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여기저기서 새로운 상상력을 말하며 운동의 변화를 모색하지만 참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망설임 없이 택한 '해직교사'의 삶... 세월은 많이도 흘렀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확보되었지만, 학교는 다시 강도 높은 단순노동을 요구하는 일터로 변모해가고 있다. '모든 상황에서 줄세우기'는 교사와 학생을 통제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으로 학교를 관통하고 있으며 '줄세우는 과정에서 공정함마저 상실한' 편법들은 학교를 넘어 온 사회에서 관행화돼 가고 있다.

혹자는 전교조 창립기부터 활동했던 노쇠한 활동가들이 명망에 기대어 사회의 변화를 호흡하지 못하고 1980년대식 단선적 운동으로 오히려 젊은 세대들을 운동 속으로 편입시키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또 '선배 활동가'들은 '요즘 젊은이'들의 '무운동성'을 지적한다. 모든 학생을 대표하는 건실한 자주적 조직이 대학에서 사라진지는 이미 꽤 오래됐다. 물론 중고등학교의 학생회나 학급회의 역시 형식만 남아 있다. 민주화가 진전되어 '민주 : 반민주'의 구도가 더 이상은 효용가치가 없다고 하는 세상에 말이다. 민주화가 아니라 '의사 민주화'를 보고 착시를 강요당했던 것은 아닐까?

학교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 외에 글을 읽고 쓰며, 교사 커뮤니티를 이끌고 대학에 출강하는 것으로 활동의 중심이 바뀐 지금 나는 꽤 자주 깊은 고민에 빠진다. 정책 활동가로 활동했던 젊은 시절의 나는 이른바 '강경파' 쪽으로 분류되었으며, '원칙적이며 과학적인' 것을 활동의 기준으로 삼았었다. 물론 지금은 생활의 많은 부분이 '선명하고 명쾌한 운동'에서 멀어져 있다.

내 젊은 날,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했던 '전교조 해직교사',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젠 운동의 관성마저 희미해진 오늘 맞이한 5월 28일, 아직도 최일선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는 옛 동료들을 보며 이내 스며드는 자책, 그리고 아직도 뚜렷하지 않은 전망 앞에서 우울하다.

어쩌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몰입하고 그것을 활동의 한 방편이자 변화된 한 방법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들, 그조차도 큰 진전 없이 시간만 야속하게 흘러가는 이 상황에서 느끼는 조급함인지도 모르겠다. 푸르디 푸른 20대에 운동에 뛰어들어 이제 50대가 된 내가 5월 28일을 맞아 느끼는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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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교육을 고민하며 서울특별시교육연수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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