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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버트의 세계최초 아리랑악보 -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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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전 10시 경북 문경에 있는 옛길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 고윤환 문경시장·탁대학 문경시의회의장·김동진 헐버트 기념사업회장·킴벌 헐버트(헐버트 박사 증손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최초의 아리랑 기록인 호머 헐버트의 아리랑 악보가 새겨진 아리랑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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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비 제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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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송옥자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장이 하얀 소복을 입고 헐버트가 채록한 아리랑을 불렀으며 특별히 참석한 킴벌 할버트씨와 이곤 한국서예협회 명예회장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김벌 할버트씨는 "헐버트 할아버지가 오래전 한국에서 활동하신 것과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는데 대해 할아버지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감사하다"는 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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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옥자 문경새재아리랑보존회장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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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는 구한말 선교사·교육가이며 고종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자문과 서방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역할 및 밀사로서 활동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 1위로 꼽히기도 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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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 래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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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아리랑은 구전으로만 전승돼왔기 때문에 아리랑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는 어렵고, 사료 또한 부족했던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1896년에 기록된 헐버트의 아리랑 악보가 발견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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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킴벌 헐버트씨와 이곤 한국서예협회 명예회장 감사패수여 기념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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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버트가 채록했던 악보의 가사에는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간다"라는 가사가 명확히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노래가 기록돼 있는 조선유기 잡지 <한국의 소리음악>(Korean Vocal Music_에 의하면 "아리랑은 한국인에게는 쌀과 같은 존재다, 다른 노래들은 말하자면 반찬에 불과하다, 이 노래는 어딜 가도 들을 수 있다"며 "내가 알기로는 이 곡은 3520일 전인 1883년부터 유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노래는 즉흥곡의 명수인 한국인들이 끝없이 바꿔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후렴구는 바꾸지 않고 부른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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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윤환 문경시장 인사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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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아리랑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져 대국민 인지도는 좀 떨어지지만 아리랑의 역사와 속속들이 그 내용을 알고 보면 문경새재아리랑의 중요성이나 그 위상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하고 많이 불려지고 있는 아리랑 중에서 무려 17개의 아리랑 가사에 "문경새재"나 "박달(물박달)나무"란 말이 나온다. 또한 북한의 <명인명창 아리랑전집>의 사설에도 있는 것을 안다면 문경새재아리랑의 가치나 그 위상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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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대학 문경시의회 의장 인사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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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는 조선시대 500년 동안 한양과 영남을 잇는 연결로로 청운의 뜻을 품고 장원급제를 바라며 과거보러가는 선비, 일확천금을 꿈꾸는 보부상 등 많은 사람이 넘었던 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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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진 헐버트기념사업회장 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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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시 동원된 전국의 부역꾼들이 고향에 두고 온 사랑하는 부인과 처자식을 생각하며 피땀 흘렸던 가슴 아픈 고개, 가족이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수없이 불렀던 노래가 문경새재아리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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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킴벌 헐버트씨 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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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아리랑고개'는 어디일까. 우리 한민족의 심성 속에만 있는 고개일까. 아니다. 위에 기술한 이런 역사적인 사실과 힘없는 민초들의 애환이 담긴 자연발생적 노래가 아리랑이라고 봤을 때 아리랑고개가 바로 문경새재(고개)로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근래 조심스럽게 학계에서는 '아리랑 고개는 문경새재'라는 설이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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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옥자 문경새재아리랑 보존회장 기념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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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에서 불렀던 많은 아리랑 중 헐버트가 서양악보로 채록했던 아리랑에 문경새재가 들어가는 것은 경복궁 중건과 맞물려 근대에 가장 많이 불렀던 아리랑이 바로 문경새재아리랑임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설치되는 문경새재아리랑비는 문경아리랑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근대 아리랑의 형성을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자료를 공개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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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최초 아리랑악보 문경새재아리랑비 전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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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비문은 평소 아리랑 관련사업을 역점시책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윤환 문경시장이 지었으며, 글씨는 아리랑가사 만수(萬首)쓰기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서학회 이곤 명예회장이 한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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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최초 아리랑악보 문경새재아리랑비 후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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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아리랑비 건립취지문

1896년 2월 고종의 외무특사였던 호머 베자릴 헐버트 박사에 의해 발행된 영문잡지 <조선유기>에 우리의 아리랑이 서양악보로 처음 기록되었다. 여기에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가네"의 가사가 있어 우리나라 아리랑 기록상 그 첫 시원을 알려주고 있다.

문경새재는 모든 아리랑의 고개 대명사로 알려져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속에 눈물과 애환, 희망과 미래가 녹여져 있는 공간이다. 이에 문경새재 고개에 깃든 아리랑의 역사와 헐버트 박사를 기억하고자 이 기념비를 세운다.

이천십삼년 팔월 십오일
글 문경시장 고윤환   글씨 한국서학회 명예회장 이  곤

덧붙이는 글 | -



태그:#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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