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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은 격리와 유폐가 아니다. 참된 힐링은 상처 있는 것들끼리의 위로와 공존이다. 1004개의 섬으로 이뤄진 전남 신안군에는 수려한 자연풍광과 노동하는 사람의 땀과 눈물이 잔파도처럼 함께 넘실대는 많은 섬길이 있다. <오마이뉴스>는 '천사의 섬, 신안군'에 보석처럼 나 있는 '힐링 섬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오늘은 그 여덟 번째로 하의도 힐링 섬길이다. [편집자말]
2009년 4월, 14년 만에 고향 하의도를 찾아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각에 잠긴 채 보슬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2009년 4월, 14년 만에 고향 하의도를 찾아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각에 잠긴 채 보슬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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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24일, 그는 하의도로 가는 여객선실에 앉아있었다. 일절의 동요가 없는 무덤덤한 표정. 그가 줄곧 응시하고 있는 서해엔 간간히 보슬비가 내렸다. 14년 만에 가는 고향이었다. 그곳엔 그의 조상들이 묻혀 있다.

바다 위에 핀 연꽃 같은 섬, 하의도(荷衣島). 신라 말기에 한 선사가 섬이 연화만개 지세라며 붙인 이름이다. 바다 건너 외딴 섬, 그 절망과 고립의 땅을 '연꽃(荷) 옷(衣)'을 두른 섬이라 했던 열망의 궁극엔 무엇이 있을까.

불교에서 연꽃은 창조와 생성을 뜻한다. 척박한 땅, 핍박한 인간살이의 고단을 새로운 창조와 생성의 공간으로 능동적으로 해석했던 이들이 살았던 섬, 하의도. 그곳이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고 김대중의 고향이다.

"여객선에서 내리기 직전에 대통령님께 고향에 오시니 흥분되시냐고 여쭸더니 환하게 크게 웃으시더라. 그러시던 분이 선영에 참배하고 나선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것은 마치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순간 대통령님께서 어떤 마음의 정리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박 의원은 세상이 다 아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 그는 DJ보다 더한 회한에 젖어 마지막이 되고만 DJ의 고향 방문을 수행하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죽을 고비, 감옥살이... 하의3도 농민의 정신으로 투쟁"

하의도를 평화의 섬으로 소개하는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하의도를 평화의 섬으로 소개하는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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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 전 대통령이 고향을 다녀온 지 한 달 만인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다. 그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심정"이라며 충격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해 8월 18일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김대중은 서거한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고, 6년 반을 감옥살이를 했으며, 20여 년간 연금과 감시 속에서 살았고, 3년 반의 망명생활도 했지만 하의3도 농민의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끝까지 투쟁했다."

마지막 고향방문에서 고 김 전 대통령은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의 길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이 고향에 있었음을 수차례에 걸쳐 이야기했다. 그리고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고, 방관하는 것도 악의 편"이라며 "다시 민주주의에 위기가 왔다, 방관하지 말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자"고 사자후를 토했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그런 곳이다. 젖 먹던 안간힘이 치솟고, 까닭없이 눈물 흐르면서 평온해지는 곳.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던가. 어쩌면 그 역시 탯줄이 묻힌 자리에서 희미하게 다가오는 생의 끝을 가다듬고 싶었는지 모른다.

만 5년째 고 김대중 전 대통령 하의도 생가를 관리하고 있는 성현숙씨가 "4주기 추모일을 앞두고 하의도 생가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귀띔한다. 생가 주변으론 고 김 전 대통령 관련 자료를 담은 액자 전시를 하고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출마했던 역대 선거 포스터 너머로 생가가 방문객을 맞고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출마했던 역대 선거 포스터 너머로 생가가 방문객을 맞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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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엔 네 개의 선거포스터가 유독 눈길을 잡아끈다. 1967년 목포에서의 국회의원 선거.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에서는 최초로 국무회의를 열면서까지 김대중의 낙선을 도모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최악의 관권·금권선거를 물리치고 당선했다.

그리고 1971년 김대중은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참겠다 갈아치자'며 박정희와 대선에서 맞붙는다. 추악한 부정선거 끝에 간신히 승리한 박정희는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유신의 길로 들어섰다.

1987년, 1992년 그리고 1997년. 김대중은 마침내 네 번째 대권 도전에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야당이 여당이 되고, 국가권력을 담당하는 세력이 부분 교체되는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의도 생가 담벼락을 따라 전시된 선거 포스터엔 정치인 김대중이 꿈꿨던 야망과 한국사회가 이뤄내고자 했던 이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야만적인 전라도 혐오와 빨갱이 낙인찍기를 인동초와 같은 불굴의 인내로 이겨낸 인물, 김대중. 그는 한국 역사 속에 핀 연꽃이었다.

"큰바위 얼굴, 하의도 명물이자 어린 시절 추억 깃든 곳"

하의도 주민들이 '겸손한 해수욕장'이라고 소개한 모래구미해수욕장.
 하의도 주민들이 '겸손한 해수욕장'이라고 소개한 모래구미해수욕장.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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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큰바위 얼굴을 '하의도의 명물'이라고 소개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큰바위 얼굴을 '하의도의 명물'이라고 소개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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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꾸미를 지나 약 1.7km를 걷다보면 모래구미해수욕장이 나온다. 길이 100m가 채 안 되는 모래바탕을 주민들은 해수욕장이라고 소개하며 "해수욕장이 좀 겸손하죠?" 한다. 전라도의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말이다.

모래구미해수욕장에서 약 1.6km를 걸어가면 '큰바위 얼굴'이 나타난다. 고 김 전 대통령이 마지막 고향방문을 했을 때 "하의도의 명물이자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라며 들러 기념촬영을 했던 곳이다.

날카로운 코끝과 묵직한 아래턱 선이 일품이다. 소년 김대중은 저 큰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어떤 인물을 꿈꿨던 것일까. 어느 전라도 섬 소년의 꿈은 이뤄졌을까. 

그는 자서전에서 "지역감정을 선동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고향인 전라도를 찾는 데 많이 망설였고 가지 않았다"며 "차별받는 호남인들을 위해 할 일을 제대로 못해 늘 가슴이 아팠다"고 적었다. 김대중에게 색깔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지역감정'이라고 포장된 호남차별 의식이었는지 모른다.

2013년 8월 19일, 한 여당 국회의원이 국정원 대선 개입 여부를 따지는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나온 한 경찰관에게 조롱하듯 묻는다.

"당신은 '광주 경찰'이요, '대한민국 경찰'이요?"

경찰관의 고향은 전라도 광주였다. 김대중이 천형(天刑)처럼 당하고 살았던 지역차별의 이지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의도 바닷가 마을의 아침.
 하의도 바닷가 마을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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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안군 힐링섬길, #김대중, #하의도, #노무현, #지역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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