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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겉표지.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겉표지.
ⓒ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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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 때 심상정 의원이 겪은 일이다. 당시 심 의원은 복지를 위한 증세를 주장했다. 상위 1퍼센트의 대기업들에게는 법인세를, 5퍼센트의 부유층에게는 세금을 더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한구 의원에게는 "대한민국에서 증세를 말하는 정당은 가망이 없고, 정치인은 출세를 포기한 사람만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러다 한 TV토론에서 감세를 주장하는 당시 한나라당과 맞붙었다. 한나라당은 수입이 더 많은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깎아주자는 감세안을 들고 나왔다. 실제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을 위한 감세인데, 돈을 적게 버는 사람에게도 생색을 내려는 정책이었다. 심의원은 이를 '부자 감세'라고 비판했다.

다음 날, 심 의원의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살기도 힘든데 세금을 깎아주지는 못할망정 왜 올리려하냐는 항의 전화였다. 보좌관은 이야기를 듣다가 대답했다.

"강북에 25평짜리 아파트 사신다고요? 그러면 선생님은 부자 증세 대상이 아니세요."

왜 그는 자신의 생활기반을 바탕으로 한 정치조직을 구분하기도 힘든 지경에 이르렀나. 왜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인 서민과 노동자가, 자신들을 위한다는 진보 정당보다 보수 정당을 더 지지하는가. 이 지독한 혼란으로 발생하는 깊은 골을 무엇으로, 어떻게 메울 것인가. 갈수록 깊어가는 민심의 웅덩이를 진보 정당의 실패로만 받아들일 것인가.

"다만 버릴 것과 지킬 것 사이에서, 우리는 계속 배우고 있는 겁니다. 한때 강점이었던 것도 과감히 버리고, 한때 받아들일 수 없던 것도 지켜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되는 실패를 통한 진보의 공부이고, 진보의 진화입니다."(<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프롤로그 중에서)

심 의원은 지난 대선을 바라보며 소통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진보 정치에 보내주었던 많은 헌신과 열정에 감사하며, 그 애정에 대한 하나의 책임 있는 응답으로 책을 썼다고도 했다. 그렇게 뭔가 주장을 하기보다는, 하루하루 삶을 가꾸고 있는 이들에게 하소연하는 심정으로, 조언을 구하는 심정으로, 편안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에 담았다.

심상정이 복기하는 2012년 대선

책은 냉철한 자기반성으로 시작한다. 진보 정당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고, 이 혼란은 결국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지 유보 혹은 철회로 이어진 것이라 했다. 지난 이명박 정부의 실패는 야당의 지지로 이어지지 못했다. 민주당은 여당을 뛰어넘지 못했고, 진보 정당은 민주당의 대안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일련의 정치과정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전략과 실천의 부재는, 결국 진로를 모호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 과정을 복기한 후, 저자는 자괴감이 크다고 했다. 결국 문제는 진보 정치 세력 자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 또한 이 상황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 중 한명으로 지칭했다. 

진보 세력이 관념의 세계에서 현실로 내려왔을 때, 역설적이게도 민주화를 가져왔던 현실의 인자였을지는 모르나 정작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별로 크지 않았다. 정책은 특별할 게 없어졌다. 복지가 보편화되면서 진보 정당의 정책 역시 보편화돼버렸다. 초기에 열망을 모으고 정치 세력화 하는 데 성공했다 자평할 수는 있어도, 이를 기반으로 계속적인 동력을 창출 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진보 정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무엇이냐?" 저의 답은 이것입니다. '인간이 처한 삶의 조건에 대해 측은지심을 갖고 있느냐. 그리고 그것에 대해 공동의 책임감을 함께 느끼느냐.' 이것이 차이라고 말입니다. 저는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해 유대감과 이해 없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60쪽)

관념적으로 다른 점이 있을지언정, 유권자는 현실에서의 무력함을 느꼈다는 말이다. 이는 자신들의 적극적 지지층을 끌어안는 데 실패했다. 노동자는 물론이고 청년층마저 소위 '박근혜 키드'를 앞세운 보수 정당에게 빼앗겼다. 지지층의 의사반영이 미진했고, 미래를 설계하기보다 과거에 안주했다.

"그동안 진보 정당은 자신들이 마치 더 우위에 있어서 누군가를 대변해주고, 또 미래에 대한 전망도 뛰어나서 뭔가 대단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자만했던 거 아닌가."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대단히 나이브했다고 봅니다.(<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67쪽)

최근의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라는 의제가 선거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중요한 쟁점이었다. 사실 가장 앞서 지속적으로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주창해온 곳은 진보 정당이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지금 한국 정치판에서 진보 정당의 존재감은 갈수록 왜소해지는 상태다. 심지어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이 결국 박근혜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만큼 먹고사는 문제에서 사람들이 야권을 불신하고 있다는 말이다.

노동의 복원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권력을 위해

전태일 열사는 자신에게 대학생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금의 노동자에게 필요한 이는 누구일까. 바로 노동자 정치인이다. 진보 정당이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노동자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에게는 '노동 분야 공약'이 없었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을 보더라도 노동 분야를 다루는 고용 복지분과에 경제 전공자 한 명, 복지 전공자 한 명만 있고 노동문제를 다룰 사람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민생'에 '노동'은 포함되지 않습니다.(<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280쪽)

왜 노동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까. 아니, 인식했지만 굳이 신경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가. 둘 중 어떤 것이 답이든 이유는 뻔하다. 노동자들이 세력화된 정치적인 힘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을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중심적 집단이라 말하는 이유는, 정당이야말로 정치의 틀 안에서 사회의 주요 갈등과 균열을 대변하고 조직하는 가장 중요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들에게 정당은 정치적 대표의 통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정당은 폭넓은 대중의 이념을 실현하는 수단인 반면, 한국의 정당은 노동과 저소득층을 포괄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이제 종속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기득권의 자각이나 선처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노동자가 권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권력도 잡을 수 있음을 보여야 한다. 일반 시민이나 근로자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그 이름 아래에서 정치적 행위를 하게 되면, 정작 자신의 생활적 기반은 지켜질 수 없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진보 정당은 정치의 힘으로 노동의 권리를 확대하고, 또 자긍심을 키워줘야 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진보 정당은 노동자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복지국가의 중요한 틀 중 하나는 노동권이다. 특히 임금노동이 주가 되는 사회가 담보되어야 한다.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이 투기성 수입이 아니라, 정당하게 땀 흘리고 일하면 그만큼의 대가가 공정하게 뒤따르도록 해야 한다. 땀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벼랑 끝에 몰린 '일하는 사람들'의 허탈감을 위로해주는 진보 정당이 돼야 한다. 노동자들이 더 이상 철탑에 오르지 않아도 되게끔 해야 한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보면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결국 협상이 잘 안 되기 때문에, 다들 철탑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그나마 대기업은 파업 결의를 하면 언론에 알려지기라도 하는데,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신문에 기사 한 줄 제대로 나지 않아요.(<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125쪽)

자신만의 스토리를 담아 부대끼며 커온 진보 정당은 분명 유권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정책의 일부를 거대 정당이 따라할 수는 있어도 거기에 녹아있는 정신마저 복사할 수는 없다. 그러니 또 '뺏기면 어쩌나' 걱정하지 마시라. 내가 보기에는 정당에 체화시키는 것이 첫 번째고, 이를 통해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은 다음이다.

'출발선이 동등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이 모든 논의는 결국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열망이 투과된 결과다. 저자가 꿈꾸는 이상향은 바로 출발선이 동등한 사회다. 출발부터 저만치 앞서 있는 이와 달리기를 하는 경기는 불공평하다. 태어나면서부터 결과가 나와 있어서는 안 된다. 죽어라 뛰면 그래도 따라잡히기는 해야 할 것 아닌가.

보편 복지가 이루어지려면 무엇보다 출발선이 동등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잘 만나고 할아버지 재산이 많은 것에 따라서 자기 인생이 결정되어서는 안 되지요. 부모님의 재산과 지위가 개인의 능력과 노력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디딤돌을 똑같이 놓아야 돼요. 그 디딤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교육, 주거, 의료와 같은 것들이에요. 인간적인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동등하게 만드는 거죠. 누구나 그 디딤돌을 보장 받은 권리가 있고, 사회적으로 그 디딤돌을 만들 책임이 주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보편 복지'가 말하는 '권리'의 핵심입니다.(<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288~289쪽)

정당들 간의 경쟁이 보통사람들의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회적 지지기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이 책이 진보 정당의 새로운 희망을 일구는 소통의 일환이라면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했다고 본다. 진보 정당이 지금 겪고 있는 혼란을 책의 제목처럼 단순한 실패가 아닌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배우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추스르고 일어나 그 첫 발을 뗀 심 의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자신도 우려했듯 혼자만의 대화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뿐.

덧붙이는 글 |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심상정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13.08, 1만4천원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심상정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13)


태그:#심상정, #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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