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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주차 홈런이 모습. 벌써 어른 손바닥만 하게 자랐다.
 16주차 홈런이 모습. 벌써 어른 손바닥만 하게 자랐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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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남편과 산부인과 병원에 함께 가기로 한 날이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점점 굵어져, 아침에 병원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을 땐 장맛비처럼 세차게 내렸다. 남편과 우산을 쓰고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며칠 전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기억해봤다.

남편이 출근한 후 조금만 눈을 붙이기로 하고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남편이 낯선 아저씨와 함께 집에 들어왔다. 남편은 남편 방에 들어가서 무엇을 챙기는데 그 아저씨는 집에 있는 물건을 집적거리더니 안방에 들어와 통장 지갑을 들어올렸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건 만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더니 그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가위를 꺼내 들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잠깐 눈 감아봐. 선물 줄 테니까."

아저씨가 들고 있는 가위가 조금 무서웠지만 이상하게 무서움보다는 기대가 더 컸다. 아무튼 선물을 주신다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눈을 떴더니 침대 위에 고운 색의 한복 치마 네 벌이 널려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고운 색에 홀려 있다가 잠에서 깼다.

깨고 나서 한동안 멍했다. 이게 태몽인지 개꿈인지. 태몽이라고 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지 않았나 싶고, 또 개꿈이라고 하기에는 상징적인 것이 꽤 선명하게 기억났다. 우리 신화에서 저승삼신이 처음으로 임박사 임보루주 마누라의 아기를 받게 되었는데 아기를 받을 줄 몰라 가위로 애먼 겨드랑이만 찢는다. 그러다 결국 명긴국 이승삼신이 그 부인의 순산을 돕는다는 신화다.

내 꿈에서는 비록 삼신할망이 아닌 낯선 아저씨였지만 삼신이 들었던 가위를 들었고, 또 선물이 또 예쁜 빛깔의 한복치마였으니 딸이 태어날 것을 이야기해주는 태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도착해 원장님께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바로 초음파 촬영을 하러 들어갔다. 밖에 혼자 우물쭈물 머물러 있던 남편도 불려 들어왔다. 이리저리 초음파 촬영을 하는 동안 홈런이(우리 아기의 태명)는 계속 움직였다. 원장님은 "아잇, 방금 것 잘 나왔었는데" 하며 아쉬워하셨고, 심장박동을 듣는 순간에도 홈런이는 계속 움직여서 원장님이 "아이, 이거 계속 움직여서 소리가 잘 안 들리네" 하고 곤란한 듯 말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전체적인 상태만 확인하고 초음파 촬영을 마쳤다.

간호사 선생님이 배에 있는 젤을 닦아주고 원장님은 일어나셨는데, 갑자기 원장님이 뒤돌아서며 "혹시 성별 궁금해요?" 하고 말하셨다. 나는 속으로는 "당연하죠" 했지만 겉으로는 "안 보여서 안 알려주시는 줄 알았어요" 했고, 남편은 "저는 궁금하지 않지만 이 사람(나)이 궁금해할 겁니다" 했다. 원장님은 "보려면 볼 수 있지요" 하시며 귀찮은 내색 없이 다시 초음파 촬영을 하셨다. 이리저리 보시면서 "아, 이거 계속 움직여서. 또 탯줄이 있어 잘 안 보이네요" 하셨는데, 끝에는 결국 "딸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셨다.

한복 치마 꿈도 꿨던 터라 딸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내겐 잠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계속 그러지 말자고 애썼지만, 아들을 바라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 있었나 보다. 나는 괜찮다, 괜찮다 되뇌었다. 밖으로 나온 뒤에 남편이 "울 거지?" 하고 놀리듯 말해도 "아니! 괜찮은데!" 했다. 나중에야, 괜찮다고 자꾸 생각한 자체가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것이라 인정하게 되었지만.

"아버지 말씀 중에서 제일 엄하셨어"

남편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대. 바뀔지도 모른대" 하고 위로인지 무엇인지 모를 말을 해줬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예쁜 옷 입고 곱게 머리 묶은 '이 세상의 딸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딸 머리카락 땋아주기나 딸의 애교 봐주기, 딸이 예쁜 척하는 것 봐주기가 딸을 둔 엄마로서 인생의 난관이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이 소식을 친정엄마한테 전해주었다. 1초, 아님 1.5초의 어색한 침묵이 지나고 나서 엄마는 "나는 좋네. 딸이 얼마나 좋으냐. 첫딸은 살림밑천이라잖아" 하고 말씀하셨다. 우리 엄마는 처음부터 딸아들 상관없다고 하셨으니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살림밑천 좋다. 그리고 지금 엄마와 내가 그런 것처럼 때로는 서로 투닥투닥하고 무심한 듯해도 늘 서로를 챙기는 관계라면 딸, 그래 뭐 좋다.

그 다음 주가 추석이라 시댁이 있는 대구에 내려갔다. 지난 8월 제사 때는 휴가 중 여행과 겹쳐 몸이 무겁고 허리도 불편했는데 이번에는 몸이 가뿐했다. 그래서인지 추석 연휴 동안 기분 좋게 지내다 왔다. 연휴 첫째 날에는 전도 부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다가, 저녁에 막걸리 상을 차려 아버님, 어머님과 우리가 한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병원에서 딸일 가능성이 높다 하더라는 말씀을 드렸다.

이번엔 5초, 내가 느끼기에는 10초쯤 정적이 흘렀다. 1초, 2초, 3초, 4초, 5초. 어머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버님의 말씀은 기억이 난다. 내가 어떤 맥락에선가 "저는 아들이 아니라 조금 슬퍼요" 하고 나도 모르게 이야기했더니, 아버님께서 단호한 어조로 '딸인지 아들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낳은 자식을 부모가 어떻게 키우는가가 중요한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만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남편이 "아버지가 자기(나)한테 한 말씀 중에서 제일 엄하게 하신 말씀이었어" 하는 것을 듣고서야 내가 실수한 것을 깨달았다. 아차. 아버님 말씀처럼, 홈런이도 내가 섭섭해하는 것을 알텐데, 성별도 알게 된 마당에 "조금 슬퍼요"는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의 간극이 이렇게도 멀구나 깨달았다.

나는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자라고 또 어떤 삶을 살더라도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힘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것. 설령 요즘 세상에 대세가 아닌 삶을 살더라도, 어떻게 먹고 살려고 그러는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그 삶 자체가 값지다는 것을 확신하고 살 수 있게 옆에 '잘' 있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잊지 말아야 할 지표였다. 아버님의 말씀은 밤바다의 등대처럼 길을 다시 찾게 해주었다.

참, 추석 연휴 전날 병원에서 문자가 왔다. 기형아검사 결과 정상으로 나왔다고. 난 당연히 홈런이가 건강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음 날 새벽 대구로 출발하기 전에야 남편에게 그 문자를 보여줬다. 그때는 내색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남편은 그 어떤 소식보다도, 남편이 바라던 딸 소식보다도 기쁜 소식이었다고 얘기했다. 친구 부부 누구는 우리보다 2주 빠른데 기형아검사 결과 평균보다 조금 높은 가능성이 나와서 불안해했다면서, 홈런이가 건강해서 기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남편에게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다.

성별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지만, 앞으로 또 이런저런 난관과 고민이 많겠지? 그래도 난 홈런이 엄마니까 지혜롭고 현명하게 난관을 넘기고 열심히 고민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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