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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10만인클럽 환경운동연합은 '흐르는 강물, 생명을 품다'라는 제목의 공동기획을 통해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구간을 샅샅이 훑으면서 7일부터 6박7일 동안 심층 취재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전문가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어민-농민-골재채취업자들을 만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이 기획은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와 4대강조사위원회가 후원했습니다. [편집자말]


4대강 사업으로 수많은 농지가 사라졌다. 대신 몇 대째 농토를 지켜왔던 농민들의 손에 돈다발이 쥐어졌다. 하지만 달콤한 유혹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지역 공동체가 무너지기도 했다. 녹조라떼와 물고기 떼죽음에 이은 4대강 사업의 또다른 폐해다.

국토교통부(국토부)에 따르면 4대강으로 인해 약 3200만평의 경작지(여의도의 40배 크기)가 사라졌고, 영농보상금으로 약 5800억원이 풀렸다. 강변의 경작지에서 살아가던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 보상금을 손에 쥐고 대토(토지를 수용당한 사람이 수용토지 반경 20킬로미터 등 인근 허가구역 안에서 같은 종류의 토지를 구입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취득, 등록세를 면제해 준다.)를 찾아 정착한 주민들도 있지만, 보상금을 날리고 농사를 포기한 채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이들도 있다.

충남 부여군 백마강 둔치도 약 400만 평(여의도 5배 크기)의 농지가 4대강 사업으로 사라졌다. 4대강사업으로 부여군에 지급된 보상금은 1164억원으로 알려졌다.

금강 변에서 농사를 짓다가 4대강 사업으로 하루아침에 쫓겨난 농민들은 큰 보상금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돈 쓰는 법도 몰랐던 그들 중 일부는 일명 '꽃뱀'에 홀리거나 노름에 빠졌고, 가정도 풍비박산 났다. 평생을 정직하게 살아왔던 농민들의 삶은 피폐화되고, 지역 공동체는 무너졌다.

충남 부여군 하천부지는 비옥한 옥토였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3모작을 하고, 평균 1년에 2모작이 가능해 하우스 수박과 단무지용 무를 주로 심었다. 일부는 방울토마토를 경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 이후 보상금을 손에 쥐고 강변에서 밀려난 농민들이 토지를 구하지 못하고 직업마저 잃은 채 길거리를 떠돈다는 얘기를 듣고, 그들을 찾아 나섰다.

"부여 다방에 여자들이 넘쳐났다"

보상금을 받고 떠난 하천에는 경작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 문구만 가득하다.
 보상금을 받고 떠난 하천에는 경작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 문구만 가득하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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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사정에 밝은 박상만(가명, 43)씨는 "장사꾼들이 음성, 함안에서 수박으로 돈을 까먹고 부여에 와서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4년 전 4대강 사업으로 보상 받은 사람들이 갑자기 큰 돈을 손에 쥐면서 자식들에겐 조금씩만 떼어주고 꽃뱀한테 빠지고 노름에 빠지면서 거지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농민들에게 보상금이 오가던 시기에 부여다방이나 길거리에 여자들이 넘쳐났다"며 "전국의 노름꾼들도 어떻게 알았는지 이곳으로 다 몰려와 곳곳에서 노름판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농가들은 보상으로 받은 1억, 3억, 5억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농가들 가운데는 1년에 1억 정도씩 벌 수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라면서 "보통 하우스 한 동에 300만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했는데, 50동이면 1억 원의 수익이 오르고 다시 단무지용 무를 심기 때문에 자재비와 인건비를 반 정도 털어내도 억 단위로 버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박씨의 소개로 꽃뱀에 빠져 모든 돈을 날린 농사꾼을 만날 수 있었다. 부여군의 작은 다방에서 만난 남순진(가명)씨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백마강 언저리에서 하우스 40동을 하면서 수박 농사를 짓고 살았다"며 "4대강 사업 전에는 두 아이의 아빠로 살면서 마누라와 사이도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남씨는 "3억이 넘는 보상금을 받아서 대체농지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다가 한 다방에서 젊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며 "손톱에 때가 끼고 지저분한 나에게 잘해줘서 그 사람에게 옷도 사주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친하게 지내다가 빚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5천만 원을 줬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뭐에 홀렸는지 모르지만 작은 가게라도 하나 차려주고 같이 살아볼 욕심에 그 여자에게 2억 원을 줬는데 그 이후로는 연락도 안 되고 전화번호마저 바뀌었는지 통화도 할 수 없었다, 찾아다니느라 나머지 돈까지 다 써버렸다"며 "집사람과 아이들까지 알게 되면서 이혼까지 당하고 지금은 막노동판에서 잡부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씨로부터 여성의 대전 주소지를 넘겨받아 찾아가 보았지만 그곳에는 노부부만 거주하고 있었다.

남순진씨는 "다 내가 눈이 멀어서 벌어진 일인데 지금 와서 누구를 탓할 수 있겠나"라며 눈물을 흘렸다. 기자는 남씨의 부인인 최사랑(가명)씨도 만나봤다. 처음에는 기자의 방문을 탐탁지 않아 하던 최씨는 "한때는 신랑이 동네에서도 일 잘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칭송이 자자했는데 그놈의 4대강 사업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고 원망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최씨는 "아이들도 나도 배신감을 느껴 남편이 보기도 싫지만 (남편이) 공사장을 떠돈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이 많다"며 "시간이 지나고 용서가 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남편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며 자리를 떴다. 동내 주민들도 "그렇게 착한 사람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다 그놈의 4대강 사업 때문이다"고 안타까워했다.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부여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보상을 받은 농민들과 그렇지 않은 농민들 사이에 괴리감도 상당했다. 

부여군 하천부지 인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최아무개(남, 78)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 농사를 짓고 자식 3명 키우면서 풀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고생만 하다가 10여 년 전에 어렵게 대출까지 받아서 겨우 땅 2천 평 정도를 마련했다"면서 "하천부지에서 불법으로 농사를 짓던 놈들은 보상금을 받아서 자가용 타고 다니는데 정직하게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람만 바보 취급을 받고 있다"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185가구가 사는데 티켓다방이 11개다"

드넓게 펼쳐진 국내 최대의 방울토마토 생산지인 충남 부여군 세도면은 비닐하우스로 가득하다.
 드넓게 펼쳐진 국내 최대의 방울토마토 생산지인 충남 부여군 세도면은 비닐하우스로 가득하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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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 현장리포트 오마이리버 자전거팀이 낙단보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4대강 사업으로 좀 마을이 좋아졌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4대강) 공사를 한다고 들어온 사람들이 이 동네 인심을 다 버려 버렸다. 예전에는 주민들이 서로 싸우고도 다음날이면 괜찮았는데, 지금은 무조건 고발부터 한다. 예전에는 옆집에 된장 좀 얻으러 가도 '어 저기 가서 퍼가라' 했는데 지금은 '얼마치?'라고 말하고 배추 하나 뽑아 갈게요? 해도 '먹을 만큼 뽑아가' 했는데 '한 포기 얼마다'라고 한다. 4대강사업으로 외지인들이 와서 살다보니 지역주민들이 '돈, 돈' 하는게 몸에 배어버렸다. 4대강사업으로 강물도 썩고 인심은 인심대로 나빠지고, 땅값은 올라가 버렸다. 이 동네에 185가구가 사는데 다방만 11개다. 전부다 티켓다방이다."

조현기 참여와연대를 위한 함안시민모임 함안보 피해대책위원회 대표는 "낙동강에 몸담고 살아가던 농민들의 상당수가 적은 보상금에 대토를 구하지 못하고 도시로 들어가 삶이 피폐해졌다"면서 "그렇게 떠나간 이웃들이 도시로 나가 일용직 근로자로 전전하거나, 박스 줍는 빈민으로 전락했다는 소문을 듣곤 한다"고 4대강사업이 남긴 상처를 설명했다.

4대강사업 반대운동을 조직적으로 펼친 팔당 주변 상황은 좀 달랐다.  방춘배 팔당 공대위 전 사무국장은 "다른 지역의 농민들이 4대강 보상금을 놓고 싸울 때 우리는 사업 반대를 위해 투쟁했었다"며 "그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정부와 경기도와 싸워 결과적으로 남양주 인근에 10년간 사용할 수 있는 대체농지를 마련해 농사를 짓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90% 정도의 농민들이 예전처럼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지속가능 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면서 "전에는 일하면서 막걸리도 한잔 하고, 가족처럼 지냈던 주민들이 4대강 사업을 놓고 싸우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불편하고 서먹서먹하다"고 어려움을 전하기도 했다.

한 지역에서 살았던 농민들의 공동체는 4대강사업으로 인해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엄청난 면적의 농지를 사라지게 했고, 수천억원이 넘게 풀린 보상금은 평온하던 가정을 해체시키기도 했다. 평생 농사만 지어온 이들에게 이는 어찌보면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태그:#4대강 사업, #공동체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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