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0월말 정봉주 전 의원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인터뷰 기사 <"박근혜는 수치심도 없나? 위기 곧 온다... 정치인으로선 박근혜보다 민주당에 더 분노">에 대한 반응이 꽤 좋았다"며 " 다시 한 번 봉봉협동조합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난감했다. 내가 무슨 봉봉협동조합의 홍보기자도 아니고. 아무리 할 말 많은 정봉주라고 하지만 내가 두 번째 인터뷰에서 봉봉협동조합에 대한 홍보 그 이상의 것을 끌어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다 다를까. 편집부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0월이 가기 전에 정봉주 전 의원과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전 기사 <연봉 절반 포기, 나는 왜 사표를 던졌나> 에서도 밝혔듯이 내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하는 이상 협동조합에 대한 그의 비전이 궁금했고, 혹여 그의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경험을 공유하는 일도 내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의 협동조합은 기존의 생협들과 다를 수 있을까?

"정치가 아닌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봉봉협동조합 홈페이지
ⓒ 봉봉협동조합

관련사진보기


정봉주 전 의원을 만나자마자 이전 인터뷰 기사에 대한 반응을 물었다.

"정치권에 있는 친구들 반응이 좋았어요. 다들 자기 진영논리에 갇혀 중간지대에서 말을 섞을 사람들의 공감대를 별로 못 얻고 있는데, 지난 기사에서는 내가 진영논리를 벗어나면서 치고 있던 울타리를 깨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우리 것을 손상시키지 않고 우리와 다른, 밖의 사람들이 들어도 공감대가 있을 만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든거죠."

그는 요즘 봉봉협동조합과 농산물을 광고하기 위해 종편에도 나가지만, 이를 통해서도 자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며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새누리당 좋아하고 민주당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많이 와요.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당이나 진영의 논리는 정말 싫은데, 이제는 안 싫다는 거죠.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한다고 하더군요.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많이 받아요. 내가 자기들 생각이나 흐름에 대해서 독하게 칼을 겨누고 있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 거죠. 이게 내용이 싫은게 아니라 감정이 거슬리는 거거든요.

사실 서로 간에 진영논리가 깊은 것도 아닌데 감정이 틀어져 있는 거죠. 사실 저쪽은 틀어져 있는 감정을 더 격하게 만들죠. 그 사이를 완전히 갈라놓으면 자신들이 늘 이기니까. 우리는 늘 그들 프레임에 갇혀 있어요. 지역감정으로, 이념으로 싸우려고 하면 우리가 지거든요. 거기서 빠져나와야 해요. 그러려면 보수가, 중도가 좋아하는 용어를 써야 해요. 그 용어를 쓴다고 진보진영의 생각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진영이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서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런 겁니다. 저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툴이 정치만 있는 줄 알았는데, 정치 아닌 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된 거예요."

농민들과 함께
 농민들과 함께
ⓒ 정봉주

관련사진보기


그는 유럽에서 사회가 이대로 굴러가면 결국 공멸한다는 인식을 진보와 보수가 모두 공유했기 때문에 협동조합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것이야말로 정치논리를 이야기 하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를, 극단의 적자생존의 구조로 가고 있는 이 사회의 비극을 논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를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이야기했다.

"서로 정치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웃으면서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 하는 프랑스의 살롱 문화가 있잖아요. 보수, 진보가 다른 입장에서 술 마시면서 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하면서 재미있게 이야기하잖아요. 주먹다짐 했다가 친해지기도 하고. 이런 성숙된 모임 등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게 없을까 하는 고민을 했죠.

협동조합 제1의 법칙이 자발적이고 개방적인 조합원이죠.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거. 이념으로 뭉쳐진 게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죠. 다만 공동체 마인드이기 때문에 중도 좌나 진보진영과 성향상 가까운 거지만 우파라고 하는 사람들도 자기들의 고유 어젠다나 테제를 갖고 협동조합 충분히 할 수 있죠. 강자들도 약자들을 몰아내면 결국 이 사회가 공멸한다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에 약자들끼리 서로 네트워킹해서 살아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에 반대 안 하는 거죠."

더불어 그에게 협동조합은 진보진영의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했다. 협동조합이 아름답고, 정의롭고, 좀 더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킹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협동조합을 통해 뜻 맞는 사람들이 네트워킹 하는 거예요. 우리가 국정원 때문에 오늘도 촛불 들고 나가잖아요. 나가는데 촛불 들고 나가는 사람들이 거기서 심정적, 감정적 네트워킹은 하게 되지만 그 자리에서 빠져 나오면 끝이죠. 이걸 DB화 하고 조직화해야 되요. 사회적 변화를 널리 내다보고, 지금 우리의 힘을 조직하고 이걸 협동조합으로 모아내는 거죠."

"협동조합 간의 협동이 부족하다"

고구마 사 가이소
 고구마 사 가이소
ⓒ 정봉주

관련사진보기


그렇다면 기존의 협동조합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한살림을 비롯해 많은 조직들이 이미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그들과 정봉주의 봉봉협동조합은 어떻게 다를까?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정봉주 전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기존의 생협들이 협동조합 일곱가지 원칙 중 여섯 번째 원칙, 즉 협동조합 간의 협동이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 한살림의 연매출 성장률은 20%에 가깝다. 봉봉협동조합의 경우 기존 생협들이 경쟁자이자 협력자일 텐데 그 차별성은 무엇인가?
"기존에 있던 협동조합과의 가장 큰 차이는 생산자 케어 문제죠. 한살림, 아이쿱 등은 소비자를 케어하는 역할을 더 많이 했어요. 생협 자체가 소비자 협동조합니까. 그런데 생산자는 벙어리 냉가슴앓이를 해야하죠. 소비자의 필요를 맞추다 보니까 자꾸 생산원가에 압박이 가해지고. 시골에 오니까 기존 생협 납품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꽤 높아요. 생산자들을 조금 더 케어했으면 좋겠는데 생산자보다는 소비자 쪽으로 부등호가 기우는 거죠. 정부한테 당하고 농협에게 당해서 숨어 들어갔는데 숨어 들어간 곳에서도 옥죄고 압박하는 느낌을 받는 거라고니 할까. 슬프죠.

그들은 제가 봉봉협동조합 광고하고 다니면서 협동조합으로서 덕 보는 측면이 있지만, (저희 쪽은) 그분들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못 받았어요. 정봉주 네가 날뛰어봤자 정치권에 있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온 거지 이렇게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새누리당보다도 나를 더 쓰레기로 보고 있는 동지들이 있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냐고요. 새누리당이 그렇게 보는 건 이해하죠. 그런데 같이 협동조합 하는 사람들이 '네가 협동조합을 뭘 알아?' 이런 거예요.

기존의 협동조합도 협동조합운동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미 기득권화 되어 있는 거 아니냐. 새로 성장하려고 하는 협동조합이 있으면 협동조합 제6의 법칙 협동조합 간의 연대, 협동을 해야죠. 자기들이 우산을 씌워주지 못한 나머지 부분에서도 협동조합이 태동해야 되잖아요. 그럼 도와줘야지요. 그런데 그런 부분을 안 해요. 내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해요."

사회적경제에 몸을 담고 있는 이로서 정봉주 전 의원의 지적은 실로 뼈아픈 부분이었다.비록 그가 과장된 언어로 표현했지만, 실제로 기존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다른 신생 조직들에게 관심을 가질 만큼 여유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호혜성을 중요시 하지만 아직까지 자기 한 몸 돌보기 바쁜 조직들. 그것이 바로 지금 사회적경제에 몸담고 있는 조직들의 현주소다.

과연 봉봉협동조합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이에 대해 정봉주 전 의원은 자신의 마케팅 파워만 강조할 뿐, 말을 아꼈다. 방안은 있지만 정확한 건 영업기밀로서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역시 '깔때기' 정봉주답다.

"제 마케팅 파워 이외에 기존 조합들 말고 신생 협동조합들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종합 툴을 만들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결국 연합대응인데 조금만 더 다듬으면 됩니다. 기존 조직들이 빛을 비추지 못했던 부분에 빛을 비출 수 있는 방안입니다."

"왜 농민들을 방치했는지 모르겠다"

봉봉협동조합의 주력상품 배추.
 봉봉협동조합의 주력상품 배추.
ⓒ 정봉주

관련사진보기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인터뷰를 읽는 시민들에게 당부할 것이 없냐는 질문에 정봉주 전 의원은 이번 기사가 그들에게 약간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독자들이 이 글을 한 번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 물건을 사고, 관심을 갖는 것이 촛불 드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 말이다.

"소량이지만 정말 농산물들이 좋아요.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왜 자꾸만 밖으로 내모느냐는 말이죠. 조금만 케어해주면 될 텐데. 생산한 사람들과 술 먹다가 그들의 거친 손을 잡다 보면 뜨거운 눈물이 흘러요. 왜 이 사람들을 방치했느냐. 도대체 니들이 사는 사회가 뭐가 잘나서. 쌍용차 노동자들이 그랬잖아요. '이 사회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 같다'고.  그때 너무 슬퍼서 통곡을 했어요. 그 말이 저는 운동하면서, 정치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이야기로 남아 있어요. 그런데 농촌도 똑같더라고요. 왜 저렇게 좋은 농산물들을 생산하는 농민들을 밖으로 밀어내는지.

자본주의 생산품들은 어차피 한계점에 다달았기 때문에, 농촌이 효율성을 굳이 생각하지 않고 흙을 관리하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해요. 왜 농민들을 저렇게 냉대하고 홀대하면서 나가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걸 보면 피눈물이 나죠. 농민들 보호를 위해 EU에도 가입하지 않는 세계 최고 공산품국가 스위스 정치가들로부터 배워야 해요. 대한민국 정치인들 반성해야 해요. 60년 동안 농촌을 버리고 농촌포기정책을 한 사람들 반성해야죠. 내몰았던 농민들을 다시 데리고 올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생명은 다시 살아날 거예요."

정봉주 전 의원의 봉봉협동조합이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는 예단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깔때기대로 그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의 최전선에 있다가 처음으로 협동조합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 사람이며, 지금 이 순간 가장 큰 마케팅 파워를 가지고 협동조합을 선전하고 있는 당사자라는 점이다.  부디 그의 꿈이 이루어지길 빈다. 정치가 아닌 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만큼 멋있는 꿈이 어디 있겠는가.


태그:#사회적경제, #정봉주
댓글1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