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기존 지역투어를 발전시킨 '201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전국투어'가 4월부터 시작됐습니다. 올해 전국투어에서는 '재야의 고수'와 함께 지역 기획기사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시민-상근기자의 공동 작품은 물론이고, 각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의 문제를 고민한 시민단체 활동가와 전문가들의 기사도 선보입니다. 11월 <오마이뉴스> 전국투어가 찾아간 지역은 수도권입니다. [편집자말]
 영화 <또 하나의 가족> 한 장면

영화 <또 하나의 가족> 한 장면 ⓒ 또 하나의 가족 제작위원회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잘 만들어질 수 있을까?' 걱정하던 시선은 막상 영화가 완성되고 나자 이번에는 '제대로 관객과 만날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정치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도 아니고 그저 한 기업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임에도, 거대자본이 권력으로 군림하는 시대가 되다보니 그 우려는 가시지 않는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노동자의 비참한 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4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노동자들의 삶은 위태위태하다. 대기업은 안전할 거라 생각하지만 도리어 정반대다. 꽃다운 나이의 청춘들은 대기업 반도체 공장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불치병에 걸려 세상을 등졌고, 책임의식을 느껴야 할 대기업은 뻔뻔한 태도를 보인다.

산업재해 인정을 회피하고 거대 자본이 갖고 있는 얼마의 돈으로 이를 해결하려 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려 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도 자본 앞에서는 도리어 그들이 보호해야할 대상들을 외면하는 모습이 펼쳐진다.

그들의 뻔뻔함에 속초에서 택시운전을 하던 피해자 아버지는 생업을 팽개치다시피 하며 싸움에 뛰어들었고, 기나긴 법정싸움 끝에 기적처럼 승리를 거둔다. 비록 완전히 승리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대 자본이라는 골리앗에 서민이라는 다윗이 처음 승리를 거둔 싸움이었다.

이 기사를 읽던 한 영화감독은 눈물을 흘렸다. 이 싸움의 과정 자체가 너무 큰 감동이었기에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그래서 속초로 찾아갔고, 사실상 영화<또 하나의 가족>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주변에는 하지 말라는 우려가 많았다. 괜히 대기업을 건드려봤자 좋을 게 없다는 시선이었다.

그럼에도 감독은 뚝심 있게 밀어붙였고, 작품을 완성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거대 자본의 투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억대의 제작비는 제작두레란 이름으로 십시일반 개인들의 쌈짓돈으로 해결했다. 아직 뜻한 만큼 모아지지 않았기에 계속 모금이 이뤄져야 하지만 어렵게 여겨졌던 작업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작품이 첫 공개되던 순간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영화에 찬사를 보내며 감독과 배우, 제작자들을 격려했다. 한 여성 관객은 영화가 끝난 뒤 관객과의 대화를 마친 제작자에게 10만 원을 쥐어주며 "제작두레를 못해서 미안하다, 소주라도 받아 마시라"고 한 뒤 조용히 사라져, 훈훈한 뒷얘기를 남기기도 했다.

"자본 영향 받는 영화들 답답, 이 영화는 내가 잘할 수 있다 확신"

 영화 <또 하나의 가족> 김태윤 감독

영화 <또 하나의 가족> 김태윤 감독 ⓒ 부산국제영화제

지난 9일 종로 효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또 하나의 가족> 김태윤 감독은 "피해자 분들이 이 영화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영화 속 피해자 모델인 황상기 아버님은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고 '영화 끝나고 울었다'고 하시더라"며 영화를 만든데 대한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또 하나의 가족>은 최근 배급사 선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개봉 준비에 들어갔는데, 김 감독은 "아직 구체적 시기는 결정 안됐지만 겨울시즌 개봉을 목표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 결과 나온 다음에 시나리오를 쓸까 말까하고 있다가 민변 변호사님 소개로 황상기 아버님 만나게 됐습니다. 기사를 통해서 내용을 알았지만 실제인물 만나 봐야 만들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좋았던 거지요.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으니까요"

김 감독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였다. 일반적으로는 제작사의 요청을 받아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 데, <또 하나의 가족>은 김 감독이 먼저 움직인 경우였다. 그만큼 꼭 만들어야 할 영화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8개월 정도의 취재가 시작됐다. 반도체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파악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고, 피해자들에게 허락도 받아야 했다. 재판 과정도 참고해야할 부분이 많기에 꾸준히 찾아다녀야 했다. 김 감독은 "충무로 제작사들은 '안 된다,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해서 내가 만들면 되겠지 생각했다"면서 "영화 <26년>을 통해 제작두레를 통한 펀딩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상업영화 만든다고 하면 간섭이 많은 부분도 고려했어요. 초기 진행비나 투자비 필요한데 전액을 다 못 모은다 하더라도 제작두레를 시작해 보자 싶었던 것인데,  한 달 만에 1억 2천만 원이 들어온 겁니다. 그 돈으로 배우들 캐스팅하고 세트 빌리며 영화를 진행시킬 수 있었지요."

충무로 기획영화의 답답함도 이 영화를 만든 이유의 하나였다.  

"자본의 영향을 받는 기획영화를 하다 보니까 싫은 것도 있고 질렸던 부분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가 원하는 재밌고 의미가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 사건을 알게 된 거지요. 평소에 사회적 문제에 기본적인 관심은 갖고 있었기에 이건 내가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최근 홍리경 감독이 <탐욕의 제국>이란 이름으로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지난 5월 여성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역시 개봉을 준비 중이다. 삼성 피해자들을 이야기하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모두 만들어진 것이다.

김 감독은 "다큐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집회나 재판 과정에서 홍 감독을 자주 만났다"면서 "어떤 분들은 다큐로 만들지 왜 극영화로 만들었냐는 이야기도 하시는데, 저는 다큐 만드는 사람도 아니기에 그런 질문 들으면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는 극영화가 다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감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극영화가 아무래도 다큐보다는 유리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백혈병이 걸린 딸이 아버지의 택시 안에서 숨지는 장면은 다큐에서는 찍을 수 없잖아요. 다만 영화를 완성하고 아쉬운 부분은 다른 피해자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지 못한 부분이에요. 황상기 아버님 외에 다른 분들 이야기도 있었는데, 영화 분량상 넘어간 부분들이 많아 안타까웠습니다." 

"특정 대기업 비판보다는 인간 존중하지 않는 사회문제로 봐야"

 영화 '또 하나의 가족' 촬영 현장의 김태윤 감독.

영화 '또 하나의 가족' 촬영 현장의 김태윤 감독. ⓒ <또 하나의 가족> 제작위원회


영화의 제목인 '또 하나의 가족'은 삼성이 벌인 캠페인 광고의 문구였다. 그러다보니 제목에서 그 구호의 허구성을 비꼬는 느낌도 든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그 의미를 재해석한 것"이라며, "개봉 전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처음 생각한 제목은 '꿈의 공장'이었어요. 그런데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콜드콜텍 해고 노동자 문제를 다른 영화다)가 있어서 안 되겠다 싶어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또 하나의 가족'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던 거지요.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일단은 그렇게 결정된 된 거예요. 삼성반도체피해자 모임인 반올림에서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을 많이 쓰기도 합니다. 제목으로 정하면서 '또 하나의 가족'을 재해석해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영화제목이 바뀔지도 몰라요. 이래저래 힘이 많이 드는 영화인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최근 이 영화를 "사회고발 형식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많이 알려진 사실을 반복하기보다는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을 존중하려는 자세가 없다"는 것이 감독의 시각이기도 했다.

"광주 인화학교를 다룬 <도가니>나 <부러진 화살>처럼 안 알려진 사실이면 모를까 이미 다 아는 일이고,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던 거지요. 물론 고발하는 영화여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하지만 영화가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마찬가지고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 사안에 대해서는 사회적 모순이나 대기업의 횡포, 단순히 나쁘다거나 잘못해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문제로서 강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영화가 삼성 비판이라는 점만 강조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느낀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표현의 다양성 차원에서 영화가 택할 수 있는 소재 중 하나였을 뿐, 어떤 대상을 비판하기 위한 목적의식을 갖고 만든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특정 기업을 비판하는 영화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삼성 비판 영화 나왔다는 식으로 관심 많이 가지는데, 어떤 면에서는 부담스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가 지금까지 치열하게 싸우면서 살아왔던 것도 아니고, 운동으로서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싸움은 황상기 아버님이나 노무사님이 다 하셨잖아요. 저는 충분히 영화화 될 수 있는 소재였기 때문에 만든 것이고 보시는 분들도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작두레 계속 모금 중, 관객 관심 많으면 영화도 별일 없을 것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태지만 제작두레 모금은 계속 되고 있다. 13일 현재 모금된 돈은 모두 2억 8천만 원 정도다. 순제작비가 9억 원 정도가 들어갔으니 3분의 1일에 못 미친 상태다. 그렇지만 빠듯한 예산으로 만들었다고는 해도 허술하게 찍은 작품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제작 들어가면서 정지영 감독님이 백만 원을 주시던데,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물론 제작비가 넉넉한 것이 아니었는지라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이 영화를 거창하게 많이 벌여서 찍을 이유가 없다고 봤어요. 없어 보인다는 느낌이 들게 찍지는 않았음을 자부합니다. 부산영화제를 통해 먼저 공개했지만 개봉할 때는 일부 편집을 다시 해 상영할 생각입니다."

 지난 10월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야외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또 하나의 가족' 김태윤 감독과 출연 배우들

지난 10월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야외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또 하나의 가족' 김태윤 감독과 출연 배우들 ⓒ 이정민


<또 하나의 가족>은 이른바 '개념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연인 박철민 윤유선을 비롯해 정진영, 김규리, 박혁권씨 등이 배역을 맡아 출연했다. 윤유선씨는 부산영화제 상영 후 가진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대기업 관련 드라마도 많이 찍었다"며 출연 동기를 가볍게 이야기했는데, 김 감독은 "판사인 남편이 출연을 허락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 캐스팅은 어떤 배우가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봤는데, 일단 생각했던 배우들을 거의 캐스팅할 수 있었어요. 출연료 부분은 제가 계약서를 쓴 제작자가 아닌지라 잘 모르겠어요. 다만 피해자 역을 맡을 배우는 머리를 삭발하는 장면도 있고 하다 보니 아무래도 신인배우가 낫다고 생각했어요. 기획사에서 캐스팅 자료를 보내오기는 했으나 맘에 드는 배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오디션을 통해 뽑은 건데 마음에 드는 배우들을 찾았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제작을 우려하는 시선이 많았다면 개봉 작업에 돌입한 지금은 잘 상영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상영중단으로 논란이 컸던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프로젝트>에서 보이듯, 보이지 않은 손길이 영화 상영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꽤 담담해 보였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냐면서 결국은 관객들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어떤 영화든지 관객의 관심이 중요하다면서 관객들의 도움을 요청했다.

"배급 방해 우려에 대해서는 제가 그 부분까지 관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섣부르게 미리 예상을 하기가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관객들이 보는 데 지장이 없게 극장마다 하나씩은 걸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혹시라도 상영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던가 하면 논란이 상당히 커질 것이라 생각해요.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극장을 많이 찾아주는 것이죠. 관객들이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 준다면 큰 힘이 될 것이고, 영화의 의미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영을 방해하기도 힘들 겁니다."

덧붙이는 글 영화 '또 하나의 가족' 제작두레 http://anotherfam.com/movie-2
또 하나의 가족 또 하나의 약속 김태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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