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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키다  다카시 구마모토학원대학 교수( 미나마타현지연구센터장)
 미야키다 다카시 구마모토학원대학 교수( 미나마타현지연구센터장)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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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 최악의 공해병으로 기록된 '미나마타병. 지구상에 병명조차 없던 이 병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1954년 바다건너 일본에서다. 하지만 5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미나마타시 지역에서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본 큐슈 구마모토현 남단 연안 도시 미나마타시에 위치한 일본 화학기업 짓소공장(窒素,신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하나 둘 원인불명의 병을 얻었다. 고양이도 중추신경이 마비돼 미쳐 날뛰다 전멸했다. 모두가 '미나마타 괴질병'이라며 전염병이라고 의심할 때 실험을 벌인 사람이 있었다. 미나마타시 보건소장이었다.

그는 인근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고양이에게 먹었다. 역시 중추신경 질환으로 신음하다 죽어갔다. 공해의 영향은 물고기 등 자연생태계에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먹이사슬의 끝자락에 서 있다. 고양이에 이어 사람들이 이상증상으로 급사했다.

1954년 8월 1일, 지역일간지인 구마모토니찌니찌신문(熊本日日新聞)이 이같은 실험 결과를 토대로 "고양이와 사람들이 죽어간 원인은 유해물질에 중독된 물고기와 조개"라고 크게 보도했다. 이는 수은을 배출시킨 인근 짓소 공장에서 의문의 죽음이 비롯됐음을 의미했다. 짓소공장에서는 당시 아세트알데히드를 생산하고 있었고 이 과정에서 수은이 섞인 폐수를 흘려보냈다.

"원인은 짓소공장의 폐수" 그런데도 폐수 방류 '허용'한 정부 

미나마타병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메틸 수은에 의해 일어난 중추신경계 장애를 일으키는 병이다. 미나마타병명은 1968년 지정됐다.

주요 증세로는 시야협착, 언어장애, 지각장애, 보행장애, 시력장애, 근력저하, 사지 뒤틀림 등이 있다. 당시 칫소(신일본질소주식회사)가 아세트알데히드 제조공정에서 촉매로 사용한 무기수은 일부가 메틸 수은으로 변화해 폐수를 통해 인근 해안에 방류됐다. 수은이 어패류에 축적됐고 이를 먹은 주민들이 병을 얻었다.  태아성 미나마타병도 발생했다.

하지만 짓소는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18일 구마모토학원대학에서 구마모토 충남방문단과 만난 미야키다 다카시(61) 교수는 "당시 대기업인 짓소회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 때 공장가동을 중단시켰다면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랬다. 병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56년 5월, 수은 중독에 의한 미나마타병 환자가 처음으로 공식 보고됐다. 그해 가을 '어떤 종류의 중금속이 어패류를 통해 인체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공식 보고서도 나왔다. 1957년에는 구마모토현 위생부가 '미나마타병의 원인은 짓소 공장의 폐수'라고 발표했다. 일부주민들이 구마모토현과 중앙정부에게 '식품위생법을 적용해 어획금지 및 섭취금지 조치, 폐수배출정지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후생성은 '만내의 어패류가 모두 유독하다는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구마모토현지사는 짓소회사와 환자 간 주선을 통해 '짓소가 죽음의 원인으로 밝혀지더라도 보상 청구를 하지 않겠다'는 악명 높은 위로금 계약을 체결하게 했다. 행정기관이 환자들에게 몇 푼의 돈을 주고 입을 다물도록 재갈을 물리는데 앞장선 것이다. 

대규모 '수은 식중독 사건'  기업-정부 알면서도 '방치'

고양이 실험 결과를 토대로 미나마타병의 발병원인을 최초보도한 지역일간지인 구마니찌니찌신문(熊本日日新聞) 기사(1954년 8월 1일).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고양이 실험 결과를 토대로 미나마타병의 발병원인을 최초보도한 지역일간지인 구마니찌니찌신문(熊本日日新聞) 기사(1954년 8월 1일).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 미야키다 교수( 미나마타현지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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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더욱 확산됐다. 일본 정부는 1968년 결국 '미나마타병은 짓소공장에서 쏟아낸 수은 등 폐수로 인한 공해병'이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공장가동을 중단시켰다. 병명 또한 '미나마타병'으로 지정됐다. 지역 보건소장이 실험결과를 통해 '공해병'이라고 밝힌 때로부터 꼬박 13년이 흐른 뒤였다. 짓소는 이때까지 수은을 포함한 폐수를 미나마타만에 계속 흘려보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폐수를 계속 흘려보낸 기업, 위험성이 확인됐음에도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행정.

문제는 계속 이어졌다. 다음 해인 1969년, 환자들은 짓소를 상대로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1973년 법원은 짓소회사에 대해 가해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정부는 '피해 입증 및 보상 신청'을 환자들에게 떠넘겼다. 환자구제도 게을리 했다. 사실상 환자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방치했다.

정부가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첫 환자발생으로부터 반세기가 넘은 지난 2009년이다. 2004년 대법원이 짓소와 함께 국가와 구마모토현에게 책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리자 정부가 나서 피해보상 신청을 받은 것이다. 지난해 8월 관련법에 의해 피해구제를 신청한 환자는 6만 명에 이른다.

미야키다 교수가 혀를 차며 말한다.

"미나마타병을 간단히 설명하면 수은에 중독된 물고기를 먹고 일어난 식중독 사건입니다. 한 식당에서 식중독 사건이 일어나면 행정기관은 당장 영업정지 처분을 내릴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고농도 수은이 검출된 식중독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국제기업이자 대기업인 짓소에 대해 반세기 동안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고 환자 또한 방치했습니다"

"후쿠시마, 미나마타 실패 되풀이 우려"

미나마타병의 근원이 된 수은을 무단방류한 짓소공장(붉은 원안)이 있는 미나마타시 항공사진
 미나마타병의 근원이 된 수은을 무단방류한 짓소공장(붉은 원안)이 있는 미나마타시 항공사진
ⓒ 미야키다 교수( 미나마타현지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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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5월 1일, 미나마타병 첫 공식환자가 발생한 집(미나마타시 짓소공장 부근), 이 집에는 지금도 미나마타병 환자가 살고 있다.
 1956년 5월 1일, 미나마타병 첫 공식환자가 발생한 집(미나마타시 짓소공장 부근), 이 집에는 지금도 미나마타병 환자가 살고 있다.
ⓒ 미야키다 교수( 미나마타현지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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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환자들이 방치된 본질적인 이유는 '뿌리 깊은 지역 차별정책'"이라고 강조했다.

"1958년 도쿄에 있는 큰 제지회사가 폐수를 방류해 어민들이 물고기가 안 잡힌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자 6개월 만에 수질법을 제정해 공장의 영업을 정지시켰습니다. 반면 미나마타 짓소공장의 가동이 중단하기까지 13년이 걸렸습니다. 이게 지역차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지금도 미나마타는 지역차별 정책으로 온갖 희생이 강요되고 있습니다."

미나마타 시에서는 한때 짓소 공장장이 미나마타 시장으로 선출됐다. 짓소공장 노동조합 조합원과 회사원이 현의원 또는 시의원이 됐다. 미야키다 교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짓소는 지금도 힘을 갖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자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현청의 모습은 있지만 시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구마모토대학 교수로 임용되던 1977년 당시를 잊지 못한다.

"취직을 하는 데 '미나마타병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말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결국 대학도, 학회도 정치문제가 된 미나마타병을 은폐하거나 방치하는 데 일조한 것이죠. 미나마타병 환자 구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병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진행형입니다."

실제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10월, '일본이 수은 피해를 이미 극복했다'고 발언했다가 미나마타 병 환자 등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환자들의 고통은 물론 법적 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후쿠시마현 원전피해주민 문제에도 관여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후쿠시마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닌 도쿄주민들을 위한 도쿄원전입니다. 왜 도쿄주민을 위한 원전이 시골인 후쿠시마에 있을까요? 사고가 생길 경우 도쿄주민의 피해를 적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후쿠시마에 사는 15만 명의 주민이 집에도 못가고 피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자체가 기업과 정부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의 경우 미나마타의 몇 십 배 아니 몇 백배의 피해가 우려됩니다. 미나마타의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미나마타병은 연구하지 말라"

지난 11월 18일 구마모토충남방문단이 구마모토학원대학에서 미야키다 교수( 미나마타현지연구센터장)에게 미나마타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구마모토충남방문단이 구마모토학원대학에서 미야키다 교수( 미나마타현지연구센터장)에게 미나마타병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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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키다 교수는 10년 전 부터 구마모토학원대학에서 미나마타병 최고 권위자인 하라다 마사즈미(原田正純) 교수와 일해 왔다. 하라다 교수는 미나마타병을 최초로 연구하고 미나마타 학을 정립(2002년 구마모토학원대학에 미나마타학 개설)시킨 최고의 연구자로 지난 해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미야키다 교수는 이후 미나마타시 현지에 개설된 미나마타병 연구센터(2005년 발족)에서 일할 계획이다. 

그는 미나마타 지역의 재생과 지역민들의 지속가능한 삶, 사람답게 사는 삶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건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당사자 주체가 되어 활동해야 합니다, 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관여해야 합니다, 사회적 곤란에 대비한 국내외 지역 간 연대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미나마타병 사건이나 후쿠시마 원전사건이 가능하게 한 기업지배적인 사회경제 시스템과 결별해야 합니다, 미나마타에 짓소공장이 들어오기 전에는 농업과 임업, 어업이 중심이었어요. 기업은 소금을 만드는 제조업이 있었죠. 이처럼 고유한 역사문화 풍토에 의존해 생활했습니다. 당장 원전을 멈추고 태양광 에너지로 모든 것을 해결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 지역에 있는 자원으로 삶의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게 필요합니다."

그가 결론처럼 말한 한 마디는 이렇다.
"지역적으로 생각하고 지구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이전까지는 거꾸로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했어요. 지역을 보면서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의 얘기가 끝나자 충남 시민단체로 구성된 구마모토충남방문단의 이상선 단장이 말했다.

"지금 충남에는 화력발전소가 밀집돼 있습니다. 충남 도민들은 수도권에 전기를 보내기 위해 고압송전탑 수 천 개(4142개)를 껴안고 살고 있습니다."

충남에서는 송전탑 주변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 사례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경남 밀양에서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태그:#미나마타병, #미야기타교수, #미나마타시, #지역차별,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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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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