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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드라마를 보는데, 막내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추운데 식구들 모두 잘 지내느냐"고 묻는 안부에 나도 동생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면서도 내 눈과 귀는 온통 텔레비전에 가 있었다. 요즘 한창 인기가 있는 드라마를 '다시보기'로 시청 중이었고, 게다가 돈까지 내고 보는 중이라 한 장면도 놓칠 수 없었다.

건성건성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동생의 말이 내 가슴을 파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누나가 한 김장이면 엄마 맛이 나겠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TV 볼륨을 줄였다.

혼자 사는 동생에게 온 전화

동생은 "이제야 누나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면서 늦은 시간에 전화한 이유를 에둘러서 설명했다. 그 말에 내 가슴이 아팠다. 사무실에 앉아 편히 돈 버는 게 아니라 몸을 놀려 일 해서 먹고 사는 동생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늦은 밤까지 일하고 돌아왔을 동생이 그려졌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지낼 동생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옮겼다.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피하고 싶었나보다.

'갓'을 넣으면 김치 맛이 시원해집니다.
 '갓'을 넣으면 김치 맛이 시원해집니다.
ⓒ 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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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막내 동생은 마흔이 넘었는데도 여태껏 혼자 산다. 엄마가 계셨다면 왜 그 나이가 되도록 혼자 살게 두었겠나. 채근을 해서라도 장가를 보냈을 터다. 적극적으로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그 나이까지 혼자 살고 있다. 누나와 형이 있지만 부모만 하겠는가. 모두 제 살기에 바빠서 혼자 있는 동생을 챙겨주지를 못했다. 동생 역시 결혼에 별 생각이 없었던지라 그만 혼기를 놓쳐 버렸다.

동생은 부모님이 근 마흔이 다 되어서 낳은 아들이라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막내 동생을 특별히 사랑해서 늘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곤 하셨다. 어머니는 사랑을 오래 못 주실 줄을 알고 그리 예뻐하셨던 걸까. 동생은 어머니와 오랫동안 함께 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때 언니와 나는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나 있었고,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은 군인이었다. 막내 동생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몇 달 뒤에 새어머니가 들어오셨기에 동생은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터다. 막내는 세상이 싫고 미웠는지, 자신을 파괴하며 살았다. 대학교에 합격했지만 가지 않고, 저 혼자 떠도는 삶을 살았다.

애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비로소 주변을 둘러보게 되자, 혼자 지내는 동생이 보였다. 그러나 대학도 나오지 않고 노동자로 사는 동생이 그리 자랑스럽지가 않아 남편과 시댁에 내세우지를 않았다. 동생이 잘났다면 왜 자랑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때 내 눈에는 동생이 못나 보여서 남들에게 이야기하기가 꺼려졌다.

온갖 재료에 고춧가루를 넣어 발갛게 양념을 합니다.
 온갖 재료에 고춧가루를 넣어 발갛게 양념을 합니다.
ⓒ 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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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친정에 가서 동생을 만나도 잔소리나 했지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았다. 정이 그리웠을 동생에게 왜 그리 냉정하게 대했을까. 혹시 내게 어떤 부담이 올까봐 지레 피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남에게 내세울 만큼 잘나지 않은 동생이 창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잘 나지 않은 동생, 부끄러웠다

언니는 맏이라서 그런지 역시 달랐다. 잔소리를 많이 했지만 그것은 모두 동생을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었다. 가끔 동생의 혼처 자리를 물색해 와서 선 보기를 권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동생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자리를 피해 버렸다. 가정을 가지고 편안히 안주하기를 바랐지만 동생은 "혼자 사는 것도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언니의 잔소리는 나의 무관심과 대비되어 나를 부끄럽게 만들곤 했다.

가끔 동생을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그 생각을 털어냈다. 멀리 있는 동생보다 눈앞의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게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에 문득 동생 생각이 났다.

김장을 했는데 맛이 괜찮았다. 올해 김장은 멸치 젓국을 넣고 경상도 식으로 담자는 남편의 말을 따랐더니 꽤 먹을 만했다. 맛있는 게 생기면 나눠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지 누구에게 줄까 생각하다가 문득 막내 동생이 떠올랐다. 혼자인 동생은 김장김치를 얻어먹을 데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김장 김치를 보낼 테니 주소를 알려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웃에 사는 아는 동생들은 생전 처음 김장을 해본다며, 자신이 대견스럽다고 했습니다.
 이웃에 사는 아는 동생들은 생전 처음 김장을 해본다며, 자신이 대견스럽다고 했습니다.
ⓒ 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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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어떻게 담갔느냐"는 동생의 물음에 "젓갈을 조금만 넣고 경상도 식으로 담갔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생은 "그러면 비리지 않겠네요" 하며 "누나가 담근 김치면 엄마 김치랑 비슷하겠지요?" 하는 게 아닌가. 비린 것을 즐겨 먹지 않았던 친정 식구들 식성을 뜻하는 말이었다.

친정 아버지는 비린 것을 좋아하지 않아 우리 집 밥상에는 채소 반찬이 주를 이뤘다. 생선도 비린내 나는 것은 들지 않았고, 쇠고기나 돼지고기 같은 육류도 우리 집에서는 먹는 사람이 없었다. 할아버지를 위시해서 아버지와 삼촌들이 모두 육식을 하지 않으셨다. 김장김치 역시 젓갈을 넣지 않고 담갔다. 

"엄마가 한 김치랑 비슷하겠지요?"

"엄마가 한 김치랑 비슷하겠지요"라는 동생의 말에 순간 내 가슴 저 밑으로 찌르르 뭔가 지나갔다. 동생 입에서 엄마 소리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울컥 눈물이 솟아 올랐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동생이 보였던 것이다.

동생은 누나인 나에게서 엄마를 찾는구나.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동생은 내게서 엄마를 찾았는데 나는 이제야 그걸 깨달았으니, 자책감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소리 죽여 울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귀 속으로 들어갔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이 났고, 동생이 불쌍해서 귀가 멍멍해지도록 울었다.

시댁의 손위 동서님이 김장 김치를 한 통 보내주셨습니다.
 시댁의 손위 동서님이 김장 김치를 한 통 보내주셨습니다.
ⓒ 이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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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통에 한 가득 김장김치를 담고 따로 밑반찬도 챙겨서 동생에게 보냈다. 혹시라도 김치 국물이 새어나올까봐 단히 밀봉을 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서 상자 겉에 테이프를 두르고 또 둘렀다. 그것이 동생을 향하는 내 마음의 표현이었다. 

이제야 누나 노릇을 한다. 엄마를 잃고 헤매었을 동생에게 비로소 엄마 노릇을 한다. 비록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동생을 생각할 수 있어서 기쁘다.

김치를 받고 동생은 엄마를 떠올렸을까?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을 '엄마'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어보지는 않았을까? 잠시라도 엄마가 동생에게 찾아와서 다정하게 지켜봐 주셨기를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기사 공모 '김장'에 응모하는 글입니다.



태그:#김장,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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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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