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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정대 후문에 게시된 '안녕하지 못한' 대자보들을 지나가는 학생들이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 고려대학교 정대 후문에 게시된 '안녕하지 못한' 대자보들을 지나가는 학생들이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 하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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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대자보를 자진철거할 때까지 보존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일부 대학교에서 미관상 혹은 사전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사유로 대자보를 철거하는 가운데, 안녕들 대자보 열풍의 진원지인 고대의 이번 결정이 주목할 만하다.

"안녕들하십니까"에 참여하고 있는 09학번 강훈구씨는 학기가 끝나는 20일까지 대자보를 보존해 줄 것을 학생처에 구두로 요청했다. 강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학생처는 이 요청을 수락했다고 한다.

20일인 오늘, 기자가 학생처에 통화하여 향후 대자보를 철거할 계획이 있냐고 질문하자, 학생처 관계자는 "학교 측에서 이를 철거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관계자는 "대자보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붙인 것이기에, 학생들이 자진 철거할 때까지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학칙상 대자보는 '신고', 옥외 대자보는 불개입 원칙

고대는 건물 내에 부착하는 인쇄물은 그 내용에 관계없이, 학부 혹은 학과사무실의 도장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건물 외에 부착하는 인쇄물은 기본적으로 학생처의 소관 하에 있으며 고려대학교 학생처는 이러한 인쇄물에 대해 별다른 제제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옥외 대자보에 대한 학교 측의 불개입 원칙은, 최근 대자보를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있는 타학교들과 대비되는 모습니다.

이는 고려대학교 학칙에 인쇄물과 광고물에 대한 관리를 "허가"가 아닌 "신고"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려대학교 학칙 제 73조는 "학생단체 또는 학생이 다음 각 호에 열거한 행위를 하고자 할 때에는 소속 대학·학부장 또는 학생처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으며, 그 행위를 "광고 및 인쇄물의 교내 부착 및 배부", "교내 시설물의 점유 사용", "외부 인사의 학내 초청", "교내·외의 집회 및 행사"로 적시하고 있다.

또한 제 74조는 "학생 단체 또는 학생이 간행물을 발행하고자 할 때에는 소속 대학·학부장 또는 학생처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며 간행물에 대해서도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나마 '집회 및 행사'와 '간행물'은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신고 대상에서조차 삭제될 예정이다. 고려대학교 교무처는 지난 10일 고려대학교 학칙 전부개정안 공고를 통해 "간행물 발행의 경우에 사전 신고를 규정한 제74조는 언론출판의 자유 침해 가능성 있음, 교내외의 집회 및 행사의 신고를 규정한 제73조 제4호는 집회결사의 자유 침해 가능성 있음"이라고 삭제 이유를 밝히고 있다.

고대생들 "대자보 일방적 철거 상상 못해", 떨어지는 대자보 붙여주기도

서울역으로 나들이를 떠났던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임을 해산하면서 서로 소감을 나누며 정리하고 있다
▲ 서울역 나들이 정리 서울역으로 나들이를 떠났던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임을 해산하면서 서로 소감을 나누며 정리하고 있다
ⓒ 김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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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11학번 조단원씨는 다른 학교에서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히는 것에 대해 "고대와는 달리 다른 학교에서 대자보를 철거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며, "대자보가 학교에 의해 일방적으로 철거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씨는 "법이나 규칙은 사람을 위하는 것인데, 학교 규칙이라는 원리원칙만 따지기보다 그 규칙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 무엇이 더 소중한 가치인지 따져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고대 내에는 정대 후문을 기점으로 약 70여 장의 대자보가 붙어있는 상황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과 바람 때문에 너덜거리고 떨어지는 대자보들도 있지만, 지나가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다시 붙여주고 있다.

12학번 강수진씨는 오늘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오다 익명으로 게시된 대자보가 바람에 너덜거리는 것을 보았다. 강씨는 근처 문구첨에서 청테이프를 사다가 이 대자보를 다시 붙여줬다. 강씨는 "비록 내가 쓴 대자보는 아니지만, 이 대자보를 쓴 사람은 이 기회를 빌어 어렵사리 말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런 사람들의 소중한 목소리들이 묻히면 안될 것 같아서 붙여줬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어서 "다른 학교에서 용기를 내 준 사람들의 목소리도 묻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첨언했다.


태그:#대자보, #안녕들, #고려대, #주현우,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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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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