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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AA 1부리그 풋볼 결승전의 우승이 확정되자 NDSU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NCAA 1부리그 풋볼 결승전의 우승이 확정되자 NDSU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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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게임의 종료를 알리는 폭죽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거의 동시에 2만여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운동장으로 쏟아져 내려온다. 선수와 코칭스태프, 응원단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이 껴안고 춤추고 소리를 지른다.

35:7. 2014 대학 풋볼 1부 리그 챔피언 결정전, 노스다코타 주립대(North Dakota State University)가 타우슨 대학(Towson University of Maryland)을 큰 점수차로 이기고 3년 연속 챔피언이 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지난 1월 4일 토요일(현지시각), 텍사스 프리스코(Frisco, TX)의 도요타 경기장 2만1000여개의 좌석 중 90%가 노랑과 초록옷을 입은 응원단들로 메워졌다. 노스다코타 주립대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학생들도 많았지만 가족, 동문, 직장 동료, 친구들과 함께 온 다양한 연령층의 지역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노스다코타 주립대는 올해로 연속 세 번째 챔피언 결정전에 나섰다. 시즌이 시작된 지난해 8월부터 줄기차게 외쳤던 응원 구호와 동작을 챔피언 결정전이 열린 이날 다들 세련되게 선보였다. 누군가 구호를 선창하면 주변 사람들이 목청껏 따라했다.

상대편 타우슨 대학은 올해 처음 챔피언 결정전에 오른 팀이다. 시즌 중반부터 다크호스로 부상하면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다. 예상 못한 결승 진출이라 응원단이 그다지 많이 못 왔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가 위치한 미 동부 매릴랜드에서 텍사스까지는 차로 21시간 걸리는 거리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먼 거리를 달려와 응원했지만, 큰 점수차로 패하고 돌아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다. 어느 팀이 최종 결승에 오르냐에 상관없이 이미 정해진 곳에서 챔피언 결정전을 하게 한 NCAA(전미 대학 운동 연맹)의 조치가 야속할 뿐이다.

지역 대학 스포츠팀 응원 위해 1800km를 달려온 사람들

노스다코타 주립대 팬들은 응원을 하기 위해 1850km, 17시간을 달려왔다.
 노스다코타 주립대 팬들은 응원을 하기 위해 1850km, 17시간을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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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전역을 강타한 강추위로 며칠 전부터 챔피언 결정전이 열리는 프리스코행 비행기들이 취소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눈과 얼음으로 미끄러워진 도로에서도 여기 저기 사고 소식이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스코 도심 곳곳에선 노랑과 초록옷을 입은 바이슨(Bison: 노스다코주립대 상징) 팬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학교가 위치한 파고(Fargo)에서 거리로 1850여km나 떨어진 이 먼 도시를 가득 메운 2만여 풋볼 팬들, 그들은 새로 비행편을 찾아 예약했거나 함께 내려가는 패키지 그룹에 합류했거나 밤새 직접 운전을 하고 온 이들이다. 이 행사를 위해 파고의 관광버스 회사들은 티켓과 숙소 교통편을 제공하는 패키지를 모집했다. 비행기의 경우 약 1인당 1395달러를 제시했지만 최초 정원 162명은 금세 매진됐다. 관광버스도 입장권 포함 약 500~700달러 가량했고 카풀을 해 운전 수고와 비용을 나누자는 광고도 곳곳에 내걸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8개 주를 통과해 텍사스로 향하다보니 여러 가지 돌발 상황들도 발생했다. 지역 신문인 <더 포럼>(The Forum)에 의하면, 친구들 9명과 프리스코로 내려가던 메럴 글렉손( Merle Gullekson)씨는 일행의 티켓을 넣은 지갑을 고속도로 공중 화장실에 놓고 온 것을 알게 됐다. 본인은 물론 친구들까지 관람이 무산되는 사태에 눈앞이 깜깜해진 글렉손씨, 그러나 곧 반가운 전화를 받게 된다. 똑같은 I-29 고속도로를 달려 텍사스로 가던 다른 그룹이 그의 지갑과 경기 티켓을 발견하고는 경찰에 신고, 중간 휴게소에서 무사히 돌려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지갑을 건네주며 한 말은 "Pass It Forward."(앞으로 전달 : 풋볼 경기 시 공을 던지며 하는 말)였다고.

부모가 사는 덴버(Denver)에서 겨울 방학을 보내고 있던 닉 프로테로(Nic Prothero)도 행운을 잡았다. 그녀는 이번 경기를 꼭 보고 싶다는 간곡한 내용의 글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렸는데, 이미 프리스코에 도착해 응원을 준비하고 있던 한 그룹이 그녀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는 입장권을 구할 수 있다면 자신들이 모자를 돌려 비행기 티켓 값을 모아줄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남겼다. 닉은 결국 그들과 함께 경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도요타 경기장을 찾은 니미쉬 다마디카리(Nimish Dhamadakari), 올해는 자동차를 렌트해 4명의 친구들과 다시 경기장을 찾았다. 그는 경기장이 위치한 도시가 지난해보다 더 복잡해졌다고 했다. 교통 연구소에 근무하는 전문가답게 도시가 팽창하며 늘어난 차량 통행을 지난해와 비교해 분석했다.

많은 이들이 니미쉬처럼 프리스코의 도로며 맛집, 숙소들에 대해 아는 체를 한다. 2016년까지 이곳에서 대학 풋볼 1부 리그 챔피언 결정전이 열릴 예정이니 NDSU가 계속 챔피언에 오른다면 이런 이들의 숫자는 더 많아질 것 같다. 이 열성적인 팬들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학교가 결승에 진출한다면 열 몇 시간의 운전쯤은 아랑곳 않고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이들 덕에 텍사스의 조그만 도시가 며칠간 북부에서 온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대학 농구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어린이들
 대학 농구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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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대학을 중심으로 한 학교 스포츠의 가장 큰 백그라운드는 이런 열성적인 지역 주민들이다. 평일 저녁, 농구나 배구 경기가 열리면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관객 역시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시즌권을 구입해 경기 일정표를 붙여놓고 빼놓지 않고 경기장을 찾는다. 그래서 자신의 후배거나 아는 친구의 아들과 딸일 수도 있는 선수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응원한다. 그러므로 학교에서 장학금과 기숙사 비 일체를 제공해주는 학교 대표 선수는 일반 학생들보다 더 모범적이어야 한다. 운동 성적뿐 아니라 생활 태도, 학점 관리는 필수다.

NDSU 2학년인 풋볼 선수 칼슨 웬츠(Carson Wentz)와 야구선수인 팀 콜웰(Tim Colwell)는 지난 학기 평점(GPA)이 4.0 만점이었다. 작년 학교의 전체 운동선수들 학점 평균은 3.2이다. 공부와 운동, 페어플레이 정신까지 갖춘 이들은 지역 주민들의 자랑이다. 특히 몇 년 전부터 풋볼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어 지역민들의 자부심이 한층 높아졌다. 지난 가을엔 스포츠 전문채널인 ESPN이 '컬리지 게임 데이(College Game Day)'라며 직접 파고 도심에 중계석을 차려놓고 풋볼 경기를 생중계하기도 했다.

지역 방송에서는 이 지역 출신의 ESPN 스태프를 찾아 인터뷰를 하는 등 중계석이 꾸려지는 내용까지 세세히 방송하며 인구 15만의 조그만 도시가 전국에 소개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파고가 캐나다 어느 시골 마을이 아니란 걸 알릴 기회가 된 것을 기뻐하며 말이다.

학교와 주민들의 신임 받던 코치는 왜 떠나야 했나

'고마웠어, 크레이그 코치'
 '고마웠어, 크레이그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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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NDSU가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 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바이슨 팀의 주축이었던 쿼터백 브룩 젠슨(Brock Jensen)과 코너백 마커스 윌리엄스(Marcus Williams), 라인베커 그랜드 올슨(Grand Olson) 등이 올해 학교를 졸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관중들은 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활약하는 장면에서 "고마워, 4학년"을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헤드코치의 이동이다. 10년 동안 NDSU 풋볼팀을 이끌던 크레이그 볼(Craig Bohl). 그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와이오밍 대(Wyoming University)로 영입돼 가게 된 것이다. 감독 사임은 시즌 중간에 발표가 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이 흔들리지 않고 한 번의 패배 없이 끝까지 좋은 성적을 냈던 것은 볼 코치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그만큼 대단했던 것으로 평가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NDSU 풋볼 팀은 연일 승전보를 전해줬고 지역 방송에서는 매주 일요일 아침, 그가 출연하는 크레이그 쇼(The Craig Show)를 편성해 전날 있었던 게임에 대해 코치로부터 직접 설명 듣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만큼 파고 지역에서 크레이그는 풋볼 코치 이상의 인기를 얻는 존경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NDSU는 학교 규모상 연봉 35만 달러 이상을 지급할 수 없는 입장인데다, 이번에 와이오밍대가 제시한 것으로 예상되는 120~150만 달러는 학교도 지역 주민들도 손 써볼 수 없는 큰 금액이어서 결국 그의 사임은 자연스레 확정됐다.

하지만 학생들과 주민들은 원망 대신 그동안 좋은 추억을 남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그를 보낼 수 있었다. 이번 챔피언 결정전 직후 총 감독 크레이그 볼에게 헌정하는 영상이 전광판을 채우며 모두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으니 그로서도 영예로운 이적이라 할 만하다.

학교 재정 악화 원인, 스포츠팀에 대한 무리한 지원?

'1000달러 넘게 들었지만, 가격을 매길 순 없지.'
 '1000달러 넘게 들었지만, 가격을 매길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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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크레이그 볼 총 감독의 스카우트 사례는 미국 대학 스포츠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다. 지불 능력이 되는 큰 학교들에게 뛰어난 코치와 선수들을 선점당하고 한정된 예산으로 대학 스포츠 팀을 꾸려가야 하는 중소 규모 학교들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에 대해 얼마 전 <아틀란타>(The Atlanta)는 미국 학교 예산의 너무 큰 부분이 스포츠 분야에 쓰이는 현실을 비난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기자는 텍사스의 한 고등학교를 예로 들며 풋볼 선수 한명에 쓰는 돈이 1300달러인데 반해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쓰는 돈은 618달러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미 북서부 주의 경우, 수학교육을 위해 학생 한 명당 328달러를 쓰지만 치어리더에겐 1인당 1348달러를 투자하는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내가 사는 파고-무어헤드(Fargo-Moorhead) 지역에도 있다. 2010년부터 11% 가까이 줄어드는 학생 수와 미네소타 주 정부의 재정 지원 감소로 MSUM(미네소타 주립대 무어헤드 캠퍼스)는 지난해 말, 학과와 교사 수를 크게 줄이는 긴축을 단행했다. 이 학교의 재정이 주변 학교에 비해 급격히 악화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이 바로 학교 당국의 스포츠팀에 대한 무리한 지원이란 비판이 있다.

이렇듯 미국 학교에서 스포츠팀은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에게 페어플레이 정신을 키워주는 것은 물론이고 재학생들과 동문, 지역주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은 지금껏 미국 학교 스포츠가 발전·육성되어 온 이유다. 하지만 그 이면으로 학교의 재정을 파탄내고 등록금 인상의 원인이 되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팀에 대한 학교의 지원은 축소하기 쉽지 않다. 선수들이 졸업 후 동문이 되고 지역주민이 되어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도 한다. 뭐든지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 계륵이 된다. 주축들이 모두 졸업하고 헤드 코치가 바뀐 NDSU의 올해 성적, 그래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

왕복 3600Km를 달려 응원 온 팬들
 왕복 3600Km를 달려 응원 온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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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국학교스포츠, #풋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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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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