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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 전쟁을 아시나요? 밀양 할매, 할배들이 지팡이 들고 뛰어든 싸움터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0월 1일부터 밀양 765kV 송전탑 공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싸움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대학가 등 전국 곳곳에 '안녕 대자보'가 나붙는 하 수상한 박근혜 정부 1년,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시민기자로 현장리포트팀을 구성해 안녕치 못한, 아니 전쟁터와 다를 바 없는 밀양의 생생한 육성과 현장 상황을 기획 보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 위귀 모습.
▲ 여수마을 어귀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 위귀 모습.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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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을 나누던 사이가 적이 됐다. 인심이 좋기로 소문난 동네는 의심이 가득한 마을로 변했다. 송전탑 건설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경남 밀양의 이야기다. 송전탑 건설공사 인근 마을들의 공동체 붕괴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언뜻 보면 여느 평범한 시골 마을 같지만, 동네 깊숙이 들어가면 지역·주민 간 갈등의 골이 깊다.

밀양시 부북면의 A(53)씨는 이 같은 상황을 "시한폭탄을 껴안고 사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마을마다 긴장감이 팽배하다는 뜻이다. 결정적인 갈등의 불씨는 한전의 개별 지원금이다. 송전탑 건설공사에 합의한 지역을 중심으로 개별 지원금이 지급되면서 지역·주민 간 분열의 씨앗이 싹을 틔웠다. 한전은 송전탑 건설에 합의한 밀양 5개면에 총 185억 원의 보상금을 지원했다. 이중 주민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개별지원금은 40%인 74억 원이다.

74억 한전 지원금 불똥, 이장에게?

송전탑 건설 반대에 합의한 주민들을 "한전 놈한테 돈 받아 처묵은 놈(밀양시 부북면 A(72) 주민)"과 같은 말로 비난한다. 반면, 합의안을 제출한 주민들은 반대 주민들을 향해 "보상금 더 받으려고 하는 수작일 뿐(밀양 청도면 요고리 B(52) 주민)"이라고 헐뜯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송전탑이 세워질수록 주민들은 사분오열됐고, 마을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웃으로부터 비롯된 마음의 상처는 방치되고 곪아갔다. 결국, 양측이 주장하는 '건강권과 사유재산권,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는 의견과 '송전탑 피해 없다, 정부서 하는 일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서로의 입장 차이만,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주민 갈등은 마을 이장 선출 과정에서도 표출됐다. 지난 5일,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주민들은 마을총회를 열어 새로운 이장을 선출하려 했으나 유예되었다. (관련기사 : '송전탑 반대 중심' 밀양 부북면 위양리, 마을이장 선거는?)

요지는 이렇다. 송전탑 반대 성향의 이장이 마을이장 임기가 끝났으니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현 이장이 관행대로 차기 이장을 선출할 때까지 이장직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공사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임기가 끝났기 때문에 이장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 마을은 정반대 경우다. 지난해 10월 한전은 이 마을과 보상안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반대 대책위원회도 주민 회의를 거쳐 해산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이 마을은 주민 회의를 통해 이장을 해임하고 송전탑 건설공사를 적극 반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합의안에 동의하도록 했다"며 새로운 이장을 선출하는 데 합의했다.

주목할 것은 이와 비슷한 상황이 마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송전탑 반대 대책위 관계자는 "마을마다 찬반이 심해 마을 이장 선출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로 어울려 돕고 살던 동네가 송전탑 문제로 뿔뿔이 흩어져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가장 힘든 점은 우리 마을주민하고 싸우는 것"

송전탑 건설 공사를 둘러싸고 밀양 마을 곳곳이 지역, 주민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 송전탑 공사 고마해라 송전탑 건설 공사를 둘러싸고 밀양 마을 곳곳이 지역, 주민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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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국제앰네스트 한국지부와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9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밀양송전탑 인권침해조사단'이 발표한 실태 조사 발표에도 이 같은 마을공동체 붕괴현상이 담겼다.

단장면의 한 집성촌은 마을 사람들끼리 한 가족처럼 지냈으나 송전탑 건설로 제종 형수를 고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부북면에서는 마을주민 간에 언쟁이 벌어져 한 남성이 반대 입장 여성의 가슴 부위에 머리를 들이받는 성추행 사건도 일어났다.

실태조사에 응한 정아무개(72)씨는 "가장 힘든 점은 우리 마을주민하고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아무개(66)씨도 "한전과 싸우는 것은 전혀 안 힘든데 오히려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갈등을 빚고 한전에 붙은 사람과 싸우는 사람들과의 갈등이 제일 힘이 든다"고 말했다.

더욱이 한전과 주민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구성된 '밀양 송전탑 갈등 해소 특별지원협의회'가 발족했으나 구성원에서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배제되어 '반쪽짜리 협의회'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물론 특별지원협의회와 송전탑 반대 주민대표들이 지난해 12월 29일과 올해 1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대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이다.

갈등지역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마을버스 안에서 기자는 밀양 마을의 또 다른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송전탑으로 인해 찢기고 분열되기 전에 이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왔는가를 상상해볼 수 있는 버스 운전기사와 승객들의 대화 내용이다.  

버스기사 : "(손님이 올라타자) 어무이 건강은 어떤노."
손님1 : "밀양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버스기사 : "뱅원에 가나보네. 느그(너희) 어무이(어머니) 일 많이 하셔서 그렇다. 좀 쉬라카이"
손님1 : "네, 고맙습니더."

버스기사 : "(또 다른 손님을 반기며) 너 000 딸 아이가. 어디 갔다 가노. 점심은 묵었나"
손님2 : "봉사활동 하고 갑니더. 밥은 아직 못 먹었서예."
버스기사 : "아직 몬(못) 묵었나. 이리 앞으로 와 바라. 추분날(추운날) 나와서 고생한다. (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며) 이걸로 맛있는 거 사묵어삐라."
손님2 : "아닙니더....(쭈볏거리며) 감사합니더."


태그:#밀양,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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