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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면 삐뚤빼뚤하지만 홈런이를 향한 내 사랑을 듬뿍 담았다.
▲ 내가 만든 홈런이의 손싸개 자세히 보면 삐뚤빼뚤하지만 홈런이를 향한 내 사랑을 듬뿍 담았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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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초, 나는 오랜만에 배움을 시작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문화센터가 연 '오가닉 코튼으로 만드는 우리 아기 의류' 강좌가 바로 그것. 수강인원은 여덟 명, 두 개의 긴 책상에 수강생들이 마주 보고 앉아 수업을 시작했다. 원래 손을 잘 떨기도 하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 가까이 앉아 작은 바늘귀에 실을 꿰자니 부끄럽고 뻘쭘해 진땀까지 났다. 실을 무사히 꿴 뒤에도 기본적인 홈질을 하는 데도 바늘로 애꿎은 손만 계속 찔러댔다. 첫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니 어깨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홈런이(우리 아기의 태명)의 손 싸개, 발 싸개, 턱받이, 누빔 호박바지, 누빔 조끼, 누빔 어그부츠(말만 어그부츠일 뿐 두꺼운 양말에 가깝다), 배냇저고리까지 한 달 반 동안 난 바느질에 중독돼 있었다. 유기농 면천의 부드러움 덕에 바느질하는 동안 마음이 편했다. 특히 마지막 배냇저고리를 만들 때에는 '얼마 지나면 홈런이와 눈을 마주치며 배냇저고리를 입혀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설마 내가 만든 옷 입고 칭얼거리진 않겠지?

금요일에 바느질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일단 상부터 펴고 수업시간에 끝내지 못한 바느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완성된 옷에 리본을 달고, 수를 놓고, 남편에게 자랑하는 게 올 겨울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1월 초, 결국 사달이 났다.

임신 중기, 아침에 일어나면 손의 움직임이 예전만 못해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이 구부려지지 않았다. 영문도 모른 채 내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아프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정형외과에 가면 엑스레이 촬영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혹여나 홈런이에게 해가 될까봐 한의원에 갔다.

침을 몇 번 맞고 나서 괜찮아졌긴 했지만 바느질을 하면서 손을 무리하게 썼구나 싶었다. 더이상 바느질 수업을 들으러 가는 것은 내 욕심인 것 같아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지금까지 홈런이를 생각하며 만든 옷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산후통에 겁 먹었지만... 아프니까 엄마다

릴렉신 호르몬에 대한 내용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아, 내가 아픈 건 당연한 것이구나.
▲ 산후조리 100일의 기적 릴렉신 호르몬에 대한 내용을 읽다가 무릎을 쳤다. 아, 내가 아픈 건 당연한 것이구나.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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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을 그만뒀지만, 요즘음 손가락뿐만 아니라 손목도 말썽이다. 머리를 묶거나, 세수를 하거나, 밥을 먹으면서 젓가락을 내려놓을 때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듯 아팠다. 크게 힘을 쓰지 않는 일상적인 동작에도 통증이 느껴져 난 평소보다 예민해졌다. 별것 아닌 일에 짜증이 잦아졌다. 그러다가 우연히 <산후조리 100일의 기적>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SBS스페셜 - 산후조리의 비밀'을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었다.

이 책은 산후통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산모들이 엄살을 부리는 것도 아니며, 정말 산후통이라고 할 만한 증상들이 있다고 설명해 줬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병원에서는 뚜렷한 병명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 여성들의 산후통은 출산 후 병원 진단으로는 알 수 없는 통증이나 뼈가 시린 것 등의 증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은 연구 결과 실제 갑상선에 이상이 생겼거나 섬유근육통증후군으로 판명된 몇몇 사례를 소개했다.

세계의 산후조리 문화와 산후통에 대한 소개 및 연구결과와 함께 산후조리 때 주의해야 할 것들도 소개돼 있었다. 그중 산전에 근력을 키워두는 게 산후통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읽고 나는 운동을 더 열심히 해보기로 결심했다. 매주 화·목요일 산부인과 병원 내 문화센터에서 진행 중인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월·수요일에 조산원에서 하는 체조 모임에도 나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지금 이 몸으로는 출산도 힘들고, 출산 후에 홈런이를 돌보는 것도 벅찰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홈런이를 낳고 나면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텐데, 팔목까지 아프면 홈런이를 많이 안아줄 수 없을 테니까.

물론 이 책을 때문에 '근력을 키워두면 산후통이 줄어들 것'이라는 확신을 얻은 건 아니다. 그런데 대충이라도 산후통이 뭔지 알고 나니 지금 아픈 것과 앞으로 아플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졌다. 지금 내가 아픈 건 홈런이가 내 골반을 비집고 나올 때를 대비해서 내 몸의 인대와 관절을 유연하게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픈 건 몸이 출산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덜 짜증 나고 덜 무서웠다.

괜한 자책... 엄마는 홈런이 걱정

홈런이의 신장 크기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책에 자책을 반복한다. 하지만, 홈런이의 태동은 여전이 다이내믹하다. 나더러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걸까.
 홈런이의 신장 크기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책에 자책을 반복한다. 하지만, 홈런이의 태동은 여전이 다이내믹하다. 나더러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걸까.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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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9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산부인과 병원으로 2주에 한 번씩 진료받으러 가야 한단다. 지금은 35주째, 가벼웠던 산모수첩이 초음파 촬영 사진 등이 점점 많이 붙어 무거워졌다. 산모수첩처럼 홈런이도 많이 무거워졌다. 2주 동안 몸무게가 500g 더 늘어서 2.3kg이 됐다. 심장소리도 좋고 건강하단다.

임신 중기부터 걱정되던 게 있었다. 홈런이의 신장 크기다. '신우확장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데 양쪽 신장크기가 같지 않고, 한쪽이 유난히 커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전히 신장 한쪽의 크기가 다른 쪽보다 조금 크다고 했다.

"신장 크기가 조금 크지만 지난 번 보다 많이 커지진 않았어요. 그러니까 많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시겠어요?"

내 배 속에 있는 동안에는 홈런이의 신장을 위해 어떻게 뭔가를 할 도리는 없다. 치료를 할 수도, 커져 버린 신장의 크기를 줄일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걱정을 많이 하지는 말라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혹시 내가 못 견디고 사이다를 마셔서 그런 건 아닐는지, 아니면 다른 잘못을 해서 홈런이의 신장이 그런 것인지 괜스레 자책하게 된다. 홈런이가 배 속에서 혹시 괴로워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하지만, 홈런이의 태동은 여전이 다이내믹하다. 나더러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걸까. 홈런이의 엉덩이가 내 배의 왼쪽에 불룩 튀어나왔다가 어느새 가운데로 와 있다. 오른쪽 갈비뼈 아래는 발을 쭉 뻗었는지 불룩하게 튀어나왔다. 어떤 때는 아프기까지 하다. 아랫배쪽에서 홈런이는 손을 움직이는데 자꾸 내 방광을 건드려 깜짝 놀라기도 한다.

요즘에는 홈런이 엉덩이를 만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딱딱하게 솟아오른 홈런이의 엉덩이. 어느 날인가는 내가 홈런이 발을 간질간질하며 장난을 쳤는데, 퇴근한 남편도 나랑 똑같이 홈런이 발을 간질인다. 부부는 이렇게 닮는가 보다.

홈런아, 이사할 때는 참아주렴... 다른 때는 언제든지 좋아

홈런이가 점점 커져서 숨이 가쁠 때가 많고, 어떤 날은 빵이 먹고 싶어서 한번 사 먹었다가 몇 시간 동안 위액이 역류해 식도가 아픈 적도 있었다. 요즘은 다리와 손가락이 부어서 결혼 후 처음으로 결혼반지도 뺐다. 반지를 빼는 것도 어려워 몇 차례 실패 끝에 린스를 발라 겨우 뺐다.

이렇게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미 아이를 키운 사람들은 한결같이 "배 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한 거야"란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홈런이가 보고 싶다. 홈런이의 얼굴이 보고 싶고, 깊은 우주 같을 홈런이의 눈도 마주 보고 싶다. 또, 홈런이의 발가락도 간질이고 싶다.

지금부터 2주 뒤면 37주. 그때부터는 언제든지 아기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2주 뒤에 이사해야 하니까 그때는 홈런이가 조금 참아주면 좋겠다. 이사한 뒤에는 언제든지 나와도 되니까. 그날이 오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겠지만 곧 홈런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열 달 품은 내 아기가 우리를 쳐다볼 그날을 기다리며 이제 저녁 준비해야지.


태그:#임신, #바느질, #산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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