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쫑 파티날, 고 황유미 님의 부모님과 박희정 배우 2013년 5월 속초에서 있었던 영화촬영 쫑파티. 유미 역을 맡은 박희정 배우는 자신의 삭발한 모습을 보여드리며 울었다. 김태윤 감독은 "이 사진이 이 영화의 진짜 마지막 컷"이라고 했다.

▲ 촬영 쫑 파티날, 고 황유미 님의 부모님과 박희정 배우 2013년 5월 속초에서 있었던 영화촬영 쫑파티. 유미 역을 맡은 박희정 배우는 자신의 삭발한 모습을 보여드리며 울었다. 김태윤 감독은 "이 사진이 이 영화의 진짜 마지막 컷"이라고 했다. ⓒ 임자운


지난해 5월 강원도 속초에서 있었던 영화 쫑파티에서의 한 장면입니다. 영화에서 유미씨(영화속 인물의 이름은 '윤미') 역을 맡았던 박희정씨는 촬영 때문에 삭발한 머리를 유미씨의 아버님·어머님께 보여드리기 싫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두 분의 아픈 기억을 되살릴 것 같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버님의 거듭된 청이 있어 희정씨는 결국 모자를 벗었습니다. 이내 어머님이 눈물을 보이셨고, 그 모습에 희정씨는 더 울고 말았습니다. 많이 죄송했다고 합니다. 이 사진은 김태윤 감독이 직접 찍었습니다. 감독님은 "이 사진이 내 영화의 진짜 마지막 컷"이라고 했습니다.

아버님의 이야기가 영화로 잘 만들어질까, 우려가 컸습니다

저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입니다. 작년에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 바로 반올림에 왔습니다. 소송 실무를 배우고 익혀야 할 시기에 단체 활동을 먼저 배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직 어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활동가이자 변호사입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어느 변호사 못지 않게 뜨거운 한 해를 보냈습니다. 이종란 노무사를 비롯한 반올림 활동가들, 그리고 황상기 아버님을 비롯한 피해 가족분들 덕에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영화에 대한 관심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습니다. 과연 만들어지기는 하겠냐는 우려, 설령 만들어진다 한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겠냐는 우려,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님의 이야기가 영화로 잘 만들어지겠냐는 우려. 즉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습니다.

영화가 촬영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과정이 궁금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숱한 굴곡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태윤 감독은 8개월간 아버님을 따라 다니며 각본을 썼습니다. 숫기가 없는 분이 계속 따라다니니 아버님과 활동가들은 그리 살갑게 대하지도 않았던가 봅니다. 그 와중에도 꿋꿋이 그리고 꼼꼼히 기록하고 다듬어서 각본을 완성한 후, 그것을 들고 배우와 스태프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영환 촬영감독은 <도둑들>, <베를린> 같은 작품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휩쓴 분입니다. 이 영화 제안을 받았을 때에도 수억 대의 다른 프로젝트 제의가 있었지만, 각본을 읽고 나서 결국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철민 배우는 딸의 적극적인 권유로 개런티 없이 영화 주인공을 맡더니, 약속 받은 런닝 개런티마저 전액 기부하겠다는 선언을 했더군요.

그렇게 필요한 사람들을 모아냈지만 역시 문제는 제작비였죠. 투자자를 찾다 포기하고, 결국은 크라우딩 펀딩을 조직합니다. 8000여 명의 후원자와 100여 명의 개인투자자가 모여 제작비가 마련된 것도 기적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촬영은 그 돈이 채 모이기 전에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감동은 여기서 받았습니다. 부족한 제작비를 쪼개 영화를 촬영하면서 당장 생계가 급한 현장 노동자들의 급여부터 챙겼다고 합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공식 포스터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공식 포스터 ⓒ 또 하나의 약속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영화를, 저는 이미 두 번 보았습니다.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우려는 신나게 날려 버렸습니다. 사실 저의 가장 큰 우려는 이 영화가 실제 이야기를 너무 과장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감독은 황상기 아버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특히 유미씨가 끝내 아버님의 택시 뒷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는 내용이 가슴을 울렸다고 합니다. 일이 그렇게 시작되면 사실 더 불안합니다. 저쪽의 머리에는 뿔을 달고 이쪽의 어깨에는 날개를 달고 싶은 욕망이 생길 테니까요. 극명한 선악 구도 말이죠. 하지만 영화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저 있었던 사실들을 담담하게 촘촘히, 하지만 어색하지 않게 엮어 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아버님을 가장 아버님답게 그렸습니다.

황상기 아버님은 7년째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외치고 계십니다. 어느 기업이건 노조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씀도 하십니다. 정의감에 불타는 노동 운동가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아버님의 싸움이 유미씨에 대한 사랑, 그리움, 죄책감에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그 점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버님의 싸움이 그렇듯, 이 영화는 한 아버지의 '가족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 사내는 그저 자신의 가족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그 사랑을 온전히 지켜내려 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노동운동가도 되고 투사도 되고 말았다는 것, 저는 그게 이 영화가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속살인 것 같습니다.

아버님, 어머님께 죄송해야 할 사람은 희정씨가 아니잖아요

영화가 만들어진다 했을 때 우리 모두가 가졌던 우려들, 영화 제작팀은 사실 더 많이 했을 겁니다. 투자가 안 되고, 배급은 더 안 되고, 홍보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을 모르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 주변에서 다들 만류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구태여 이 영화를 만든 이유가 뭘까요. 영화화하기에 차고 넘치는 소재인데 만들지 못할 이유가 뭐냐는 호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잘 만들 자신도 있었겠죠.

거기에 한 가지 더하자면, 어쩌면 영화를 잘만 만들어 놓으면 도와주는 이들이 많을 거라는 기대를 했을지 모릅니다. 영화의 성공을 훼방 놓을 보이지 않는 손이 불편하고 못마땅한 사람들, 당당하게 드러나서 그에 맞서고픈 보이는 손들, 그 힘을 믿었는지 모릅니다. 반올림의 싸움도 그러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여러 우려가 비껴갔습니다. 영화는 기대 이상의 제작팀을 꾸렸고, 기대 이상의 후원자와 투자자를 모았으며, 그에 힘입어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일들, 개봉을 불과 며칠 앞둔 요즈음의 상황들, 상영을 약속했던 영화관들이 돌아서고 있고 예매가 진행 중이던 극장에서 돌연 상영 계획을 철회하기도 하고 공중파 방송에서 영화 소개를 외면하는 그러한 상황들은 어쩌면 영화 제작팀의 손을 떠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의 몫이죠. 평소 잘 드러나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언제나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존재하는 우리들 말이죠.

영화 제작자 중 한 명인 윤기호 PD는 지금 우리에게 "우리 영화가 작은 영화로 보이게 하여, 개봉주가 지나면 내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며, 예매와 단체관람 조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안 열리는 극장에 문의를 계속 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서. 희정씨는 참 좋은 배우입니다. 작년 이맘 때 있었던 유미씨 추모제에 남모르게 찾아와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아직 캐스팅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미씨 아픔을 잘 알고 잘 표현해줄 사람을 선택해 달라"고 말이죠.

그 기도가 통했는지 희정씨가 유미 역을 맡게 되었고, 영화에서 저는 희정씨의 대사에서 제일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참 고마웠죠. 그런 희정씨가 어머님께 삭발한 모습을 보여드리며 죄송해서 우는 이 사진. 저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울컥합니다. 희정씨의 그 마음이 예뻐서이기도 하지만, 화가 나서이기도 합니다. 정작 아버님, 어머님께 죄송해야 할 사람은 희정씨가 아니잖아요.

또 하나의 약속 반올림 황상기 김태윤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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