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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음악엔 소질이 꽤 있으나 노래엔 소질이 참 없다. 그래도 홈런이가 태어나면 노래 불러줘야지.
▲ 노래집 난 음악엔 소질이 꽤 있으나 노래엔 소질이 참 없다. 그래도 홈런이가 태어나면 노래 불러줘야지.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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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심은 꽃 고이고이 심었네
언제쯤에 피려나 기다리네
내 마음에 심은 꽃 고이고이 심었네
무슨 꽃이 피려나 기다리네

김희동 노래집에 있는 '내 마음에 심은 꽃' 노랫말이다. 어제 문득 이 노래가 떠올랐는데 노래 부르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 전까지는 예정일이 다가오는데 아직 출산 기미가 안보여서 마음이 불안했는데 말이다. 내일(28일)이면 출산 예정일이다. 그런데 우리 홈런이(우리 아기 태명)는 언제쯤 나올 생각인 걸까?   

지난 주 내내 홈런이에게 이번 월요일에 나와 달라고 태담했다. 홈런이가 예정일 전에 나와 줘야 너도나도 덜 힘들다고 홈런이를 구슬렸는데 통하지 않는다. 남편은 자기가 토요일엔 야구시즌 시작하니까 그 전에 나와 달라고 말했던 터였다. 나는 남편에게 대놓고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니냐고 했다. 아무튼 우리 두 부부는 다른 이유였지만 예정일 전에 홈런이가 나와 주기를 잠시나마 바랐다.   

홈런이가 작게 태어나면 홈런이도 나도 덜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서 재촉했기도 하지만, 사실 초조하기도 했다. 출산 후기를 보면 39주 이상은 대부분 병원에서 유도분만을 권했다. 예정일이 지나면 양수의 양이 줄기도 하고 아기의 크기가 커져서 분만 때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서 요가시간에 배운 아기 내려 보내는 자세도 열심히 해보고 오리걸음을 걸으며 걸레질 하고 열심히 돌아다녀봤지만 소용없었다. 다행히 병원은 36주 이후에 발길을 끊어서 유도분만 얘기나 제왕절개 얘기는 안 들을 수 있었다.

홈런이가 나오겠다는 신호를 보내주길 기다리면서, 매번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나는 이슬(출산이 가까워지면 자궁경부가 부드러워지면서 소량의 피가 나온다)을 확인했다. 배 모양을 보면서 홈런이의 위치를 관찰하고 배가 뭉칠 때마다 반가워했다. 지난주 말부터 시작된 골반뼈 주변의 통증도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아 아프지만 반가웠다. 

기다리는 출산... 그런데 소식이 없다

홈런이의 침대 위에 출산가방을 챙겨 놓았다. 홈런아, 엄마랑 아빠는 준비됐어!
▲ 홈런이 침대 홈런이의 침대 위에 출산가방을 챙겨 놓았다. 홈런아, 엄마랑 아빠는 준비됐어!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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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 그리고 오늘까지도 아무런 기미가 없다. 나는 살짝 힘이 빠졌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하는 말.

"사실 홈런이는 지금 안 나와도 상관없잖아. 예정일이 며칠 남았는데. 빨리 나와 주길 바라는 건 우리 욕심이지."

그래, 맞다. 욕심. 자꾸 버리려고 해도 버려지지 않고 하나를 버리면 또 다른 놈으로 나타나는 너란 놈, 그놈의 욕심이란 놈 말이다. 성별을 몰랐을 땐 아들이었으면 했고, 태동이 없을 땐 홈런이의 생사를 확인하게 어서 태동을 시작해줬으면 했던 욕심. 한 주 한 주 보내면서 홈런이가 너무 커지지 않게 하려고 운동도 욕심내서 하고, 게다가 아직 나올 때가 아닐 수도 있는데 빨리 나와 달라는 욕심까지.

홈런이를 기다리는 열 달 동안도 이런데 앞으로 홈런이를 키우면서 얼마나 많은 욕심들과 마주하게 될지. 아무튼, 남편의 한마디로 내 마음도 정리되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심은 꽃을 노래하면서 더 진정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 홈런아. 네가 나오고 싶을 때, 홈런이가 준비되면 그때 나와. 하지만 꼭! 아빠가 있을 때 나와 줘야해. 엄마 아빠는 홈런이가 나올 때 같이 만나려고 많은 준비를 했거든. 어라, 이것도 또 욕심일까?

그런데 정말 신기한 일이 있었다. 월요일부터 골반 주위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 혼자 있을 땐 아무렇지도 않다가 남편이 오고나면 그 때부터 통증이 시작된다. 자기 전에는 거의 절정이다. 마치 좁은 골반 틈으로 어떻게든 들어가겠다는 움직임으로 '추정'되는 몸부림이 느껴진다. 홈런이가 발을 뻗어서 내 갈비뼈는 뻐근하고 머리를 골반으로 들이밀어서인지 그 주변은 '악'소리 나게 아프다.

홈런이는 알고 있나보다. 남편 없을 때 나 혼자 홈런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아무튼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통증이지만 '홈런이를 곧 만날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하며 그 통증도 즐기고 있다. 

꽃 피랍시고 그 앞에 앉아 노래한다고 꽃이 피어나지 않는 것처럼 출산도 그런 것 같다. 내가 바란다고 그 날에 아기가 나와 주는 게 아니라 봄에 꽃이 피어나 듯 자신의 때를 알고 나오는 것. 출산 예정일보다 2주 늦는 것 까지는 괜찮다고 했으니까 이제는 정말 맘 편하게 기다려 봐야겠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카페에서 '출산 후기&성공바이러스' 글을 많이 읽는다. 제목은 대체로 이런 형식이다.

인터넷 카페의 출산 후기를 보면서 다양한 출산을 간접 경험한다. 글을 읽으면서 노하우를 배우기도 하고 용기도 얻게 된다.
▲ 출산 후기 인터넷 카페의 출산 후기를 보면서 다양한 출산을 간접 경험한다. 글을 읽으면서 노하우를 배우기도 하고 용기도 얻게 된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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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주1일, 자연분만, 초산, 무통o, 관장o, 촉진제x'

제목을 보면 대략 예상할 수 있겠지만 설명을 하자면, 초산을 자연분만으로 40주 1일 되는 날에 했고, 무통주사와 관장은 했지만 촉진제는 맞지 않고 출산했다는 것이다. 글들을 보면 대략 산부인과에서 출산할 때의 과정이나 처치들을 간접체험하게 된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내진이나 관장, 제모가 귤욕적일까봐 걱정하는데 심한 진통 중에 이뤄지기 때문에 별로 굴욕이라 생각할 겨를도 없다고 한다. 그래도 진통 중 수시로 '당하는' 내진은 골반이 더 빨리 벌어지게 해줘서 반갑기도 하지만 많이 아프다고 한다.

후기를 보면 어떤 엄마는 아이가 크지 않아도 어렵게 출산하거나 제왕절개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엄마는 규칙적인 진통을 기다리다가 병원에도 못 보고 집에서 출산하게 되었거나 병원에 도착한 지 1시간, 심지어는 10분 만에 아기를 '쑴풍' 낳기도 했다.

아기를 '쑴풍' 은 엄마들은 대체로 축복받은 골반을 가졌거나 진통이 시작된 후에 아래의 두 가지를 잘 지켰다고 한다.

1번. 호흡하기. 호흡이 감통효과가 있고 호흡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아기가 위험하다.
2번. 똥 누듯이 힘주기. 진통이 오고 간호사 선생님이 힘주라고 할 때 정말 똥 누듯이 힘줘라.

화장실에서 매일 힘 주는 연습해요

홈런이가 무척 보고 싶다. 이 녀석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뱃속에서 열심히 놀고 있다.
 홈런이가 무척 보고 싶다. 이 녀석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뱃속에서 열심히 놀고 있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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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너무 '출산을 글로 배웠어요'인 걸까?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지난 주 부터는 조산원에서 잘 출산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진통 중에 해야 한다는 호흡법을 연습한다. 아침에도 화장실에 가서 힘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굳이 연습을 왜 하나 싶겠지만 이 연습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난 주 조산원에서 운동하다가 한 엄마가 진통중인 소리를 들었다. 처음엔 여린 신음소리가 점점 자주, 점점 세게 들려왔다. 그 소리로 그 엄마의 진통세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내가 곧 겪을 일이라고 생각이 드니까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출산을 앞두고 진통이 두려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

그러다가 문득 '그래봤자 하루 넘기겠어? 내가 홈런이를 만나면서 길어도 하루만 아프면 되겠지. 이렇게 걱정한다고 진통이 덜 아파지는 것도 아니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담대해졌다.

오늘도 조산원에 운동 갔다가 며칠 전 출산한 엄마를 만났다. 조산원에서 만났던 다른 엄마들처럼 역시나 뽀얗고 예쁜 그 엄마는 진통이 어땠냐고 묻자 "이성을 잃고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남편의 머리카락을 뜯었을 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아기를 보는 순간 그런게 다 잊혀지고 예쁘기만 했다"고 말했다. 아기를 바라보는 그 엄마에게서 빛이 난다. 그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또 얻어왔다.

홈런이가 무척 보고 싶다. 이 녀석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 뱃속에서 열심히 놀고 있다. 다음 기사 쓸 때쯤엔 나도 출산 후기를 쓸 수 있을까.


태그:#임신, #조산원, #출산예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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