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300: 제국의 부활>의 한 장면.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지난 2007년 개봉해 세계적 흥행을 맛본 영화 <300>은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는 작품이었다. 속편의 여지가 그만큼 적었다는 뜻이다. 제국을 꿈꾸는 페르시아 제왕에 맞서 처절한 전투를 벌이다 '영광스런 죽음'을 맞이한 스파르타 전사들 이야기는 이후 여러 패러디와 2차 생산물로 재생산되기도 했다.

물론 매력적인 이야기이긴 하다. 크세르크세스에 맞선 스파르타 인들의 이야기는 역사서 속에서도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니 말이다. 그래서 영화의 후속 편 <300: 제국의 부활>의 제작 소식이 들렸을 무렵, 사뭇 기대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어떻게 뒷이야기를 끌어갈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6일 개봉한 <300: 제국의 부활>은 일단 세간의 우려를 씻을 만하다. 전편을 연출했던 잭 스나이더가 제작자로 나선 가운데 새로 메가폰을 잡은 노암 머로 감독과 각본을 맡은 커트 존스타드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죽어간 영웅 그 다음 세대를 논하기보다 그 시대로 다시 돌아가 더 넓고 깊게 바라봤다.

사실 <300>이 흥행은 했지만 텍스트적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죽어가는 스파르타 인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페르시아 인은 기괴하고 왜곡된 시선으로 표현했기 때문. '오리엔탈리즘' 혹은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의 또 다른 반영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물론 스파르타 전사들은 대패했다. 하지만 그들은 영웅이 됐고, 이후의 역사가의 말을 빌어 그리스 전사들(사실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국)의 공을 기억하게 했다.

<300>의 단점 극복하려 한 노력 엿보여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의 한 장면.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300:제국의 부활>은 그 시선을 스파르타를 넘어 그리스 전체로 확장시켰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로드리고 산토로 분)에 대항하기 위해 그리스 연합을 구축하려는 아테네 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설리반 스탭플턴 분)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며 그리스 내 여러 도시 국가를 설득하고 나선다. 그의 시선을 중심으로 그리스가 제국의 야망을 가진 페르시아에 대적하는 과정을 그린 것.

전편에서 기괴했던 페르시아 인들은 이번에 다소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았다. 여기에 여전사 아르테미시아(에바 그린 분)를 페르시아 사령관으로 끌어왔다. 즉, 그리스를 점령하려는 페르시아 쪽 역시 괴물이 아닌 인간의 영역으로 내려온 것. 아르테미시아가 단순한 야욕에 찬 여성이 아니라 아테네에서 버림받은 기구한 삶이 있었다는 점도 묘사돼 그의 무자비함이 어느 정도 영화에서 설명된다.

<300>이 제한된 숫자의 전사들이 펼치는 전쟁이라는 설정에서 관객들에게 쫄깃한 긴장감을 줬다면, <300: 제국의 부활>은 보다 스펙타클한 화면 구성과 다양한 캐릭터를 내세워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테미스토클레스와 아르테미시아의 성 대결은 거친 전투와 휴전을 반복하면서 보다 리듬감 있게 다가온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일말의 이성애 역시 관능적으로 표현했다.

전편에 비해 후속은 전체 상영 시간을 약 10분 정도 줄였다. 106분이라는 러닝타임에 꽉 들어찬 이야기가 오히려 너무 짧다고 느껴질 수 있겠다. 해상 전투 장면에서 빛을 발한 3D 및 특수효과 역시 잘 차려놓은 밥상에 오른 반찬이다. 여러 모로 즐길 거리가 많은 블록버스터가 나왔다.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의 한 장면.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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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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