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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인문학 공동체 감이당 3번째 글쓰기 수업, 교재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을 해설한 김해완의 '리좀, 나의 삶 나의 글'이다.

고미숙 선생님의 강의는 오리엔테이션을 포함해 5번째 듣고 있다. 늘 그렇지만, 깔깔깔 웃게 만드는 그녀의 힘은 무엇일까? 5번의 강의는 경쟁하듯 질주하여 하나의 가치로 매몰되어가는 우리들의 삶에 제 3의 길이 있다고 말하는 일관된 주제가 있다. <구운몽>을 통해서도 <열하일기>를 통해서도 비운의 조선 문장가 이옥을 통해서도, 이번 수업인 들뢰즈와 가타리를 통해서도 고미숙 선생님의 주제는 일치한다.

그녀를 통과한 작품들은 고미숙으로 체화되어 나온다. 누구나 느끼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표현하지 못한 것들, 혹은 미화하고 싶고 숨기고 싶은 감정들을 가차 없이 걷어버리지만 아주 유머스럽게 전달한다.

철학 수업이 개그콘서트가 될 수도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나는 개그콘서트가 우리의 삶을 가장 명철하게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측면이고, 철학은 우리 삶을 해석하고 길을 알려주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이라는 점에서 개그콘서트를 하찮게 보지 않는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마스타니 후미오가 쓴 아함경에 대충 이런 말이 나온다.

"기독교의 신은 너무 완벽해서 다가갈수록 먼 존재로 느껴지지만 불교의 부처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다가갈수록 가깝게 느껴진다."

우리가 느끼기에 수많은 책을 쓴 작가들은 특히 고미숙처럼 해박한 고문지식과 근거를 사용하여 책을 쓴 사람들에게 대충이란 없을 듯 보인다. 그래서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글을 쓰고 강연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완벽을 향한 힘겨운 노력을 하는 대단한 사람으로만 보인다.

그녀의 저서 열하일기의 비하인드를 들어보자.

"나처럼 살아야 해요. (엥? 무슨말인가) 들뢰즈가 처음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을 때 수유너머에서 세미나를 하며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서점에 나온 책이 정부 지원을 받아 <천개의 고원>을 번역한 것같은 대학원생들에게 원고를 나누어 해석했는지 정말 엉망이었어요. 해석이 틀려서 이해를 못하는지 철학적으로 난해해서 이해를 못하는지 알 수 조차 없었지요.

심지어 어떤 부분은 쳅터가 바뀌기까지 했어요. 진짜 기본 교정도 보지 않고 책을 찍어낸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책을 낼 수가 있는지(한보따리 욕)... 번역이 엉망이라 원서를 놓고도 공부했지요. 하지만 나는 제대로 수업을 들은 적이 없어요. 수유너머 매니저를 했기 때문에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어요. 주방 살림 챙기랴, 수업 짜랴 제대로 공부를 할 정신이 없이 아주 바빴어요. 그렇게 귀 동냥으로 들은 것이 들뢰즈에요.

그리나서 들뢰즈는 잊고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를 탈고 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열하일기가 신문에 나왔어요. 신문의 전면에 대문짝 만하게 나온 거예요. 내 평생 다시없을 일일 것에요. 그런데 제목이 <들뢰즈의 눈으로 열하일기를 읽다(2003 3 28) >였어요. 깜짝 놀랬지요. '그랬나?! 들뢰즈의 눈으로?' 내 책을 다시 뒤져보게 됐어요.

수유너머 매니저를 하면서 귀동냥 한 것이 나도 모르게 체화되어 '기계' '영토화, 탈영토화' '홈 파인 공간'이런 개념들을 나도 모르게 자유롭게 책에 사용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모든 것은 뜻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공부를 잘 못한다고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아요. 지식이 체화된다는 것, 공부가 실천되는 것은 나도 모르게 나오게 되는거예요. 이 사건을 통해서 꾸준히 하게 그냥 체화되는 거라는 걸 알았어요."

물론 선생님은 서양철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낯선 용어에 기죽거나 어려워서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서 하신 말이다. 그들의 서양문화에서 탄생했고 그 철학자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지 내용을 파악해가면 개념이 들어오니까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시고자 말 한 것이지만 내게는 한편의 코미디였고 전문 작가들도 저럴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주는 사건이었다.

더 재밌는 선생님의 에피소드가 있다. 처음 들뢰즈가 우리나라에 소개되었을 때 '들뢰즈와 가타리'를 공저자가 아니라 '프랑소와'처럼 한 사람의 이름인 줄 알았다고 한다. 들뢰즈는 이렇게 큰 기쁨으로 보시를 한다며 우리를 또 한번 웃게 했다. 이럴 때는 정말 전문 작가나 동네 아줌마나 똑같다는 생각에 선생님이 가깝게 느껴졌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고구마나 감자처럼 하나의 뿌리가 아니라 여러 곳으로 뻗어나가고 중심이 없는 식물)과 그에 대립되는 수목(한개의 뿌리에 고정되어 있으며 모든 가지의 기저는 뿌리를 향하고 있다)개념을 말한다. 선생님의 강의는 삶과 괴리됐다는 느낌이 전혀 없이 유머까지 얹혀져서 계속된다.

"여러분의 선배는 의역학, 동서양철학 3년을 공부했어요. 그런데 여전히 아무것도 몰라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모른다는 것에 어떤 스트레스도 받지 않아요. 그렇게 공부하는 겁니다. 공부가 더 빨리 더 많이 목표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리좀은 목표가 없지요. 중심이 없어요. 단지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만 있을 뿐이에요. 이런 탈코드화가 예측 불허한 엄청난 에너지의 변용을 낳는 것이지요.

머릿속에 우리가 이상으로 여기는 고정된 실체인 글이 있고 그리고 나의 삶인 실제가 있어요. 이 둘이 얼마나 일치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불일치에 괴로워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것의 일치란 존재하지 않지요. 실제인 주체인 나와 고정된 글의 세계 사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운동하고 있는 것이지요."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것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꾸역꾸역 읽은 책과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의 삶이 안주를 찾으려하고 반복하려 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고 변화를 거부하려 하는 것이 '퇴적화', '영토화'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더 나아가서는 제도와 규율과 권위가 강요하는 것에 내가 충실히 따라가는 것이 고착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로 살아가려면 나의 제도와 나의 규율과 나의 강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야단쳐 수학문제를 풀게 하고 돈을 벌어 학원비를 대고 남들 만큼 큰 차를 타고 넓은 평수를 늘리고 이러한 것에 의문을 품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도주'를 시도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탈영토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입시라는 '영토화', 더 많은 돈이라는 '영토화', 신자본주의라는 '수목'이 있다면 우리는 대학이 아닌 길, 돈을 뛰어넘는 가치, 공동체가 살아있는 자본주의라는 '리좀'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지층'(영토화나 고착화와 상통하는 개념이다.)이라는 개념도 나오는데 우리가 '탈지층화'에 주목하기보다는 먼저 왜 '지층화' 되는지 주목해야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왜 돈을 벌고, 자식을 키우는데 있어 입시에 올인하고 공동체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이익에 매몰되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왜 이런 가치로 '지층화'되어 가는지를 주목해야 한다. 이 이유와 현상을 파악하면 '탈지층화'인 다른 길이 보이지 않을까?

어려운 철학을 고미숙 선생님을 통해 너무나 재밌고 아주 쉽게 신나게 배우고 있다. 나의 이런 공부도 고착화된 '홈파인 공간'에서 '매끈한 공간'으로 도주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도주만 하면 안정이 없어진다고 한다.

끊임없이 '영토화'와 '탈영토화'가 반복되면서 다양한 가치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야 할 것이다. 나의 돈 안 되고 돈만 드는 이 공부가 어딘가로 흘러가 어떤 에너지로 변하고 있을지 나의 미래가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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