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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원어민 교사들을 여럿 만났다. 공교롭게도 교무실 내 바로 옆자리여서 무료로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 '혜택'을 누렸다. 그래선지 요즘 그들의 빈자리가 조금은 서운할 때가 있다. 영어교육이 강화되고 사교육비를 절감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되어 줄곧 유지되다가, 교육적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가에다 최근 수준 미달의 무자격자 파문이 잇따라 불거지며 요즘 들어 학교마다 임용을 꺼리는 분위기다.

밴, 마이클, 조나단, 데이비드(이상 모두 가명). 모두가 캐나다와 미국 출신인데, 하나같이 깍듯하고 서글서글한 성격에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원만해 서로 헤어지기 아쉬워할 정도였다. 그 중 마이클은 삼겹살에 소주 마시는 걸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만큼 거의 우리나라 사람이 다 됐고, 데이비드는 근무 중에 만난 우리나라 여성과 결혼해 아이 둘 낳고 잘 살고 있다.

왜 한국 학생들은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를까

지금은 학교를 떠나고 없는 그들이 최근 부쩍 자주 생각난다. 요즘 아이들을 지켜보노라면 그들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때문이다. 학교에 근무하기 전 대충은 들어서 알고 있었을 텐데도,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 모습에 그들 모두는 '감탄'해마지 않았다. 모든 학교가 자정이 가깝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게 놀랍다고 했고, 그때까지 딱딱한 의자에 앉아 군말 없이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이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다.

"캐나다나 미국 학생들을 데려다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한 달만 생활하게 하면 아마도 그들 모두는 미쳐버릴 것"이라며 농담을 건네곤 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다고 했다. 학교생활 중 받는 스트레스를 아이들은 되레 '공부'로 푸는 것 같다면서, 아이들을 붙잡고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느냐"며 묻고 싶더란다. 천 명도 넘는 아이들 중 악기 하나쯤 다룰 줄 아는 아이가 거의 없다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며.

하긴 그들은 하나같이 '잡기'에 능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다들 농구 실력이 수준급인 데다 피아노와 기타 정도는 기본이라는 듯 능수능란하게 연주했다. 대개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거라고 했다. 학교 축제 때마다 그들은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해 아이들 앞에서 실력을 뽐내곤 했다. 그런가 하면, 패러글라이딩이나 요트, 스키 등 각종 레저 스포츠도 전문가 뺨치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비범한 음악적 재능에다 유도 유단자이기도 했던 조나단은 게다가 미국 유수의 명문대 출신이었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이 "전혀 놀 줄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1년 365일, 하루에도 열서너 시간씩 주야장천 앉아 있다고 공부가 될 리도 없건만, 무슨 극기 훈련마냥 견디는 모습이 가엾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치 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공부가 되든 말든 친구들이 앉아 있으니 그냥 따라 앉아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나름 우리말을 잘 했던 조나단도 '속담'에는 영 젬병이었다. 대화 중 마구섞어 쓸라치면 의사소통이 아예 불가능하다며 하소연하곤 했다. 그 중 단연 압권은 이것이었다. '엉덩이가 무거운 학생이 성공한다'는 교사들의 말. 짧은 영어로 손짓 발짓 다 해가며 설명했지만, 고개를 가로 저으며, 엉덩이의 무게와 성공이 무슨 관계냐며 되레 반문했다.

그들의 말대로, 학교에는 오로지 '공부'만 남았다. 공부가 학생의 '본분'이라고 다그치지만, 솔직히 공부, 그것도 입시 준비를 위한 공부 빼고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대학에서의 공부와, 나아가 자신의 삶과 행복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스무 살까지만 살 게 아닌데도, 종착역은 늘 대학입시다.

정규수업 후 이어지는 방과 후 활동도 수업으로 채워진다. 학사일정에야 '방과 후 활동'이라고 적혀 있지만, 늘 그래왔듯 '보충 수업'과 '심화 수업'만 이어질 뿐이다. 물론, 수능 필수 과목인 국영수 위주다. 아이들은 이름과 내용을 반반씩 섞어 '방과 후 수업'이라고 부르는데, 교육과정상 7교시 시간표가 사실상 9~10교시 수업으로 연장 운영되는 셈이다.

한때 잘 나가던 학교 동아리, 지금은 개점휴업

일주일에 한 번뿐인, 유일하게 '놀 수 있는' 동아리활동 시간도 시나브로 입시 공부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취미가 같은 아이들끼리 모여 계획을 세우고 활동하는 시간임에도, 축구나 농구 등 몇몇 인기 있는 운동 동아리를 제외하면 '개점휴업' 상태에 가깝다. 학교가 나서서 멍석을 깔아줘도 대부분 아이들은 그 위에 데면데면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다.

뜻 맞는 선후배나 동급생들끼리 모여 무언가를 '도모'해 본 경험이 없어서일까. 학교생활 중에 또래들과 의기투합해 어떤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겠다는 열의가 별로 없다. 기존의 동아리에라도 가입하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동아리 가입 자체를 귀찮아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다 싫으니 그냥 쉴 수 있도록 자유 시간을 달라고 투정부리듯 말한다.

연간 계획도, 월간 계획도 지도 교사가 세우고, 활동일지조차 교사의 손을 거치기 일쑤다. 가입은 했으되, 한 해 동안 무얼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도 바람도 없이 그냥 그 시간 동안 교실에 모여 멍하니 앉아 있는 거다. 그러다 보니 교과서만 없을 뿐 교사가 주도하는 수업과 별반 다를 바 없고, 출석 확인이 끝나기가 무섭게 엎드려 자는 아이도 많다.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도 한때 '동아리 전성시대'가 있었다. 행사 때마다 길놀이를 도맡았던 풍물패에서부터, 연극, 록밴드, 태권도, 등산, 댄스, 문학, 심지어 마술 동아리까지 요즘의 스포츠 동아리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땐 시설이나 장비가 부족하고 실력도 변변치 않았지만, 열정만큼은 내로라는 대학의 동아리 부럽지 않았다.

소풍이나 학교 축제 때 그동안 닦은 기량을 뽐내며 친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고, 동아리활동 시간이 있어 학교생활이 즐겁다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허용된 동아리활동 시간은 짧았을지언정 모두가 즐거워했고 조용하던 학교가 그때만큼은 시끌벅적했다. 지금은 결혼해 가정을 꾸린 졸업생들도 학교생활의 추억하면 예외 없이 동아리활동 시간에 놀았던 기억을 첫손에 꼽는다.

그랬던 동아리활동이 시간이 흐를수록 무기력해져만 가고 있다. 물론, 졸업할 즈음 학교생활기록부에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동아리활동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열심히 참여했다'고 기록은 되지만, 그건 마땅히 쓸 게 없어 적는 클리셰다. 입시에서 비교과 영역의 비중이 늘고 있어 더러 학교생활기록부에 관심을 쏟긴 하지만, 어떻게 '스펙'으로 활용할까를 염두에 둘 뿐 실제 활동에는 소홀하다.

3교시 끝종이 울렸다. 이제 점심시간 때까지 동아리활동 시간이다. 바삐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운동 동아리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설레지 않는 표정들이다. 마치 다음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처럼.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의 손에는 축구공과 악기 대신, 참고서와 문제집, 그리고 무릎담요가 들려 있다. 공부를 하거나 잠을 자겠다는 거다. 차이라면, 그곳이 교실이 아닌, 동아리방이라는 점뿐이다.

지금껏 '동아리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믿어 왔다. 그런데 대학입시는 학교생활의 '블랙홀'이 되어 동아리활동마저 거추장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열심히 공부하자'는 다짐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일 테지만, 어느 교실에 낙서처럼 적힌 이글귀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놀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입시교육기관인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노는 것은 죄다.


태그:#동아리활동, #대학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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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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