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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서 크라치 군에 도착했을 때 우리 일행은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차량 에어컨이 일찌감치 고장이 났는데 길 위는 지나가는 차들이 뿜어내는 뿌연 먼지가 가득해서 차량 문을 닫은 채 몇 시간을 달렸기 때문이다. 먼지와 피로로 지친 몸으로 첫날 일정을 마감했다.

둘째 날은 조사를 실시하기에 앞서 하루 종일 가구별 조사원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KOICA-월드비전의 식수위생 사업으로 동 크라치 군과 서 크라치 군에서는 83개의 신규 우물을 관정하고, 59개의 우물을 보수하며 55개소에 화장실을 신축하고 7개 마을에 식수 탑을 활용한 급수시설을 마련하는 중이다. 그리고 군 전역에 걸쳐 주민들을 대상으로 위생교육과 캠페인을 실시하고 또 식수시설을 유지보수하는 기술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카쿠에 마을 우물을 수리하여 마을 주민들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수리된 우물 카쿠에 마을 우물을 수리하여 마을 주민들은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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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쿠에 마을 우물에서 방금 뿜어올린 물입니다. 음용 이전에 생화학 검사를 실시하여 수질을 점검합니다.
▲ 깨끗한 물 카쿠에 마을 우물에서 방금 뿜어올린 물입니다. 음용 이전에 생화학 검사를 실시하여 수질을 점검합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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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우물은 고장이 잦아 기술교육과 함께 고장 시 주민들이 쉽게 부속품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마을 마다 식수위생 관리위원회를 새롭게 신설하거나 또는 기존 위원회의 역략 강화를 실시한다.

이번 조사의 목적은 이렇게 다양한 식수위생사업이 지역 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가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미 1년 전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기준치 조사를 실시했고 이번에 다시 조사를 실시하여 1년 전의 상황과 비교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단순한 사업 전후의 비교를 넘어 우리 사업이 가져온 영향력을 측정하게 된다.

우리는 측정을 위해 83개 신규 우물 관정 중 동 크라치 10개, 서 크라치 10개를 선정해서 각 군별로 300가구를 대상으로 면접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이번 출장 중에는 바로 이 600가구에 대한 방문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감독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날은 약 2주 간 조사원들이 마을을 방문한 이후 어떻게 가구를 선정하고 면접을 실시할 것인지에 대해서 교육을 받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여장을 꾸리고 오늘 교육이 진행되는 곳인 월드비전 서 크라치 사무소로 향했다. 월드비전은 2007년부터 동서 크라치 지역에서 약 15년 정도의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지역개발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동 크라치는 월드비전 독일이 서 크라치는 월드비전 한국이 후원하고 있다.

서 크라치 월드비전 지역개발사업장은 한국 후원자들이 15년 계획 아래 지원하고 있습니다.
▲ 월드비전 지역개발 사업장 서 크라치 월드비전 지역개발사업장은 한국 후원자들이 15년 계획 아래 지원하고 있습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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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은 케테 크라치 읍내 마을의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새 건물이라 녹슬지 않은 함석지붕 위로 건기 아침 햇발이 부서지고 있었다. 열 명의 조사요원들이 모여 있었다. 약 1 시간에서 1시간 반 가량 진행될 가구별 조사 면담을 위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종일 교육을 진행한다. 교육진행 강사는 현지 전문 조사업체 소속 베네딕트와 그의 동료들이다.

가구를 방문한 이후 가장에게 허락을 받기 까지 지켜야 할 태도에서부터 시작해서, 지역 주민이 이해하는 익숙한 언어로 질문을 하는 방법까지 구체적인 교육이 이어졌다. 특히 이 지역에는 가 족, 에웨 족 등 여러 종류의 부족민들이 섞여 살고 있어서 조사원들이 질문을 할 때는 각 부족어로 알아듣기 쉽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점에 특히 유의해서 조사원들을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위주로 채용했다. 조사요원들은 주로 현직 초중등 교사이거나 간호사 과정에 있는 지역주민 출신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동서 크라치 6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할 조사원에 대한 교육을 하루 종일 실시합니다.
▲ 설문 조사원 교육 동서 크라치 6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할 조사원에 대한 교육을 하루 종일 실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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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한 질문이지만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또는 조사자가 관찰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조사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질문항목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가령 식사 전에 손을 씻는지 물을 때 손을 씻는다는 것의 정의를 어디까지 할 것인지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면접조사에 있는 관찰항목 중 부엌이 깨끗한지, 음식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조리를 담당하는 사람의 손은 깨끗한지 등은 '깨끗하다'에 대해 먼저 조사원들 모두 공통으로 합의한 정의가 있어야 한다.

또한 지역주민들이 하루에 물을 얼마나 사용하는지를 측정하는 항목이 있는데, 지역주민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물통을 조사자는 '회수'로 물은 이후 이를 '리터'로 계산해서 기입해야 한다. 이 지역에 주민들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물통에 대한 리터 환산법을 교육했다. 100여 개가 넘는 조사 및 관찰 항목을 이렇게 문장 하나하나 다듬고, 각기 다른 부족어로 번역하는 것까지 연습하다 보니 벌써 하루가 다 지나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물통을 리터로 환산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 물통 하나는 리터로 얼마? 지역 주민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물통을 리터로 환산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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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한 우물에서 나온 깨끗한 물을 나르고 있는 콰쿠에 지역 주민
▲ 물을 떠가는 주민 수리한 우물에서 나온 깨끗한 물을 나르고 있는 콰쿠에 지역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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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원 교육의 백미는 설문지 기입을 직접 해보는 것이다. 오늘 교육의 마지막 과정을 위해 베네딕트와 그의 동료 강사들이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쇄해온 설문지를 꺼내겠거니 했는데 가방에 가득 들어있는 것은 태블릿 PC 였던 것이다!

전자 기기를 활용한 설문조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설마 이번 조사에서 태블릿 PC를 활용할 줄이야. 조사원들은 스마트 폰도 다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태블릿 PC를 활용해서 설문조사를 실시하지? 나의 놀라움은 바로 불안함으로 이어졌다.

우려와 달리 조사원들은 몇 십분도 채 안되 태블릿 pc를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 태블릿 pc를 사용하고 있는 조사원 우려와 달리 조사원들은 몇 십분도 채 안되 태블릿 pc를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 차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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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안함은 태블릿 PC 활용 교육이 시작된 지 채 십분도 안 되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태블릿 PC 안에 설문 항목은 매우 다루기 쉽게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화면 가득 질문 하나가 나오고 조사자는 정답 중 한 곳에 손을 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면 다음 문항으로 넘어간다.

태블릿 PC를 든 채 조사를 하는 모습에 조사자들 스스로 제법 폼이 나 보였음이 분명했다. 하루의 마지막 강의라 피곤할 텐데, 갑자기 강의실이 활기로 가득 찼다. 내 우려와 달리 조사자들은 간단한 사용 설명 이후 즉석에서 설문지 첫 문항에서 끝까지 무리 없이 끝내며 높은 숙련도를 자랑했다.

오히려 이 광경을 보고 놀라는 내게 베네딕트가 다가왔다.

"기존에 종이로 인쇄한 설문지에 비해 태블릿 PC의 장점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그렇군요."

"우선 조사자가 답변을 잘못 하잖아요? 프로그램 자체가 알아서 인식하죠."

가령 조사 응답자가 남성인데, 중간에 여성만이 할 수 있는 답변에 조사자가 실수로 잘못 기입하면 프로그램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전체 질문의 맥락에서 엉뚱하게 조사자가 실수하는 내용을 기존 종이 설문지로는 해결이 안됐는데 태블릿 PC로 아주 간단히 해결한 것이다. 베네딕트는 태블릿 PC를 활용한 설문조사에 대한 자랑을 계속 늘어놓는다.

"더 대단한 것은 이겁니다. 예전에는 설문조사를 마치고 저녁부터 밤새도록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별도로 해야 했죠. 그런데 태블릿 PC는 그런 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인터넷을 연결하여 중앙으로 보내면 자료가 저절로 모아집니다. 별도의 타이핑 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지죠."

다 입력하고 나서 당황하지 않고 전송 누르면 끝!
▲ 입력 후 전송 끝 다 입력하고 나서 당황하지 않고 전송 누르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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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이 없어 설사로 많은 아이들이 사망하는 지역의 극단적 빈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에서 첨단 현대 기술이 만나는 묘한 지점에 와 있는 것 같아 이 상황이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태블릿 PC 활용의 매력에 푹 빠진 채 조사원 교육일정으로 꽉 찬 둘째 날은 이렇게 지나갔다.

드디어 셋째 날 오전이 밝았다. 드디어 실전 조사를 실시한다. 먼저 300가구에 대한 정식 조사에 앞서, 조사를 위한 현장 실전 테스트를 실시하게 된다. 우리는 설문조사 시범실시를 위해 카쿠에 마을로 갔다.

콰우에 마을은 우물이 예전부터 고장나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 사업으로 이 마을의 우물을 수리해주었고, 학교에 공중화장실도 지었다. 우리는 이번 조사를 통해 이 마을에 어떤 변화들이 생기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측정하는 것이다. '주민들의 만족도'와 같은 매우 주관적인 지표가 아니라 아이들의 설사 발생률이 줄어들었는지와 같은 객관적 지표를 중심으로 사업 효과를 검증할 계획이다.

우선 콰쿠에 마을 지리를 파악한 후 마을을 몇 개 구역으로 분리한다. 마을 대표를 만나 주민들이 소득수준이나 기타 특성 별로 특이하게 분포하고 있는 가구 집단이 있는지를 확인한다. 카쿠에 마을은 그런 부분이 발견되지 않아 임의로 전봇대 개수를 기준으로 블록을 설정하여 각 조사요원들이 담당 구역으로 흩어졌다.

각자 맡은 구역에서 면접할 가구를 탐색하고 있는 조사원입니다.
▲ 면접 조사를 실시할 가구를 탐색하는 조사원 각자 맡은 구역에서 면접할 가구를 탐색하고 있는 조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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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조사원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면접할 가구를 찾아갑니다.
▲ 조사원 10명의 조사원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면접할 가구를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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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조사요원을 먼 발치에서 동행하면서 따랐다. 조사요원은 세 집 또는 네 집 건너 한 가구씩 선정하여 마을 곳곳의 가구가 골고루 선정될 수 있도록 하며 조사를 시작했다.

이 때부터는 현지어로 대화를 합니다.
▲ 면접 조사 중 이 때부터는 현지어로 대화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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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구 당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가량 걸립니다. 면접이 끝나면 몇 가구 건너 다음 가구로 갑니다.
▲ 면접 조사 한 가구 당 1시간에서 1시간 30분 가량 걸립니다. 면접이 끝나면 몇 가구 건너 다음 가구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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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콰쿠에 마을에는 주로 여성들이 집에서 요리를 하거나 빨래를 하면서 소일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빈집도 많았다. 조사요원은 태블릿 PC를 꺼내들고 천천히 교육받은 대로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현지어로 대화를 하는지라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설령 알아듣는다 해도 여기서부터는 내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마당 한켠에 아름드리 망고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고양이가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다. 시간이 멎은 듯 한 따분할 정도의 평화로움. 어느새 셋째 날도 반나절이 지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 가나 볼타지역 식수위생 사업장에 중간평가를 위해 다녀온 방문기입니다.



태그:#가나, #식수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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