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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에 침대 메트를 운반하는 것이 나와 함께 한 마지막 일이었다.
 운동장에 침대 메트를 운반하는 것이 나와 함께 한 마지막 일이었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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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오늘 차 가지러 갈게요."
"아뇨, 낼 오세요. 오늘 메트 두 장 옮기고 세차해 놓으렵니다."
"굳이 세차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그냥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차에 남아 있는 추억도 더듬어 보며 차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사람은 아니지만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에 정이 많이 든 애마(愛馬)다.

1995년 겨울. 우리 가족이 된 1톤 더블캡 화물차는 2000년 5월 RV차가 새 가족이 될 때까지 우리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평일에는 숨이 찰 만큼 가득 화물을 실고 거래처에 배달하느라 허리가 휠 정도로 일을 했다. 어쩌다 가게가 쉬는 날은 화물칸에 아이스박스 텐트 등 캠핑 용품에다 애들 자전거 두 대를 싣고 신나게 꽃놀이도 갔다.

20년간 큰 사고 없이 내 곁에 있었지만, 한 번 대형사고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 떠올랐다. 그 날은 2002년 6월18일 한일 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오후 2시쯤 건축자재를 가득 싣고 서둘러 전라북도 금산사 입구 현장에 배달을 갔다. 시속 80km의 저속으로 가는데 백양사 휴게소 근처에서 쓰레기 수거함을 싣고 가는 차가 내 차를 추월 했다.

 쓰레기 수거함을 싣고 가는 차.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쓰레기 수거함을 싣고 가는 차.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이 없습니다).
ⓒ 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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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쓰레기가 채워져 있지 않는 빈 함이었지만 빈 함을 싣고 가는 화물차와 고정이 제대로 되지 않아 덜컹거리는 것이 영 불안했다. 얼마나 갔을까. 그 차가 커브 길을 돌면서 불안했던 일이 현실로 눈앞에서 벌어졌다. 수거함이 굉음을 내며 고속도로에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수거함이 편도 2차선인 고속도로에 1차선과 2차선 경계선에 자로 잰 듯 반씩 걸려서 멈춘 것이다. 그 화물차를 추월하려고 1차선으로 달려오던 고속버스는 브레이크를 밝으며 곡예 운전을 하며 가까스로 지나갔고 나는 쓰레기 수거함 5m 옆 갓길에서 급제동 해 차를 세웠다.

수거함 밑에 바퀴가 달려있어 고속도로 위에서 차선을 좌우로 옮겨 다닐 수 있었는데, 마치 선을 맞춰 내려놓는 것처럼 그 자리에 선 것이다. 끔찍한 대형사고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다시 수거함을 싣는 동안 전방에서 내가 수신호를 해 다른 2차 사고는 없었다.

"여보세요. 당신 정신이 있는 사람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운전자에게 더 이상 뭐라고 말 할 수 없었다.

"우리 오늘 정말 운 좋은 사람들이요. 조심해서 가시오."

내차로 다시 온 나는 나도 모르게 내 화물차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날 저녁 축구는 2;1로 한국이 승리한 날이다. 축구 경기를 보면서도 그 순간을 생각하며 몇 번이나 가슴을 쓰러 내렸다. 철물점을 그만두면서 주차장에서 두 달째 멍하니 주인을 기다리고 서 있는 애마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일을 했으니까 폐차를 해 편히 쉬게 하고도 싶었다. 굳이 돈으로 따진다면 폐차나 중고차로 판매하는 거나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중고차로 판매하기로 한 것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더 살아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사장님 새 차가 됐네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새 주인에게 잘 데려다 주세요."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 듯. 정은 사람이나 동물에게 주는 것이지 쇠붙이에게도 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벚꽃이 흩날리는 도로를 잘 달리고 있는지.
새 주인이 휜 허리를 배려나 하는지.
나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연이라도 한 번 보고 싶다. 멀리서 봐도 금방 알아 볼 수 있으니까.
내가 너무 사삭스러운 건가.

덧붙이는 글 | 월간 첨단정보라인 5월호에 싣습니다.



태그:#이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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