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SK)과 양현종(KIA). 올시즌 프로야구 토종 좌완을 대표하는 에이스들의 맞대결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도 많은 승부였다. 지난 18일 인천 문학구장에 벌어진 SK와 KIA의 경기는 '포스트 류현진'으로 꼽히는 두 동갑내기 에이스의 투수전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두 선수는 이날 경기 전까지 세 차례 맞대결을 펼쳤다. 김광현이 1승 1패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하며 승리없이 1패 평균자책점 7.27에 그쳤던 양현종에 우위를 점했다. 통산 전적에서도 김광현이 대 KIA전 26경기 등판 15승6패 평균자책점 2.76을 기록한 반면, 양현종은 대 SK전 통산 30경기 등판 5승8패 평균자책점 3.96에 그쳤다.

이번에도 확률은 거짓말을 하지않았다. 5회까지 두 투수는 나란히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팽팽한 투수전을 양상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0-0으로 맞선 6회말 양현종이 급격히 무너지며 대량 실점을 허용했다.

양현종은 5회까지 3이닝 연속 삼자범퇴 포함 무사사구 2피안타, 투구수도 58구만 기록하며 내용 면에서 김광현보다 앞서가고 있었다. 그러나 6회말 들어 김성현과 김강민에게 연속 안타로 무사 1, 3루 위기를 맞이하더니 조동화의 기습적인 스퀴즈 번트에 허를 찔리며 선취점을 내줬다. 0의 행진이 무너지면서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한 양현종은 이재원에게 적시 3루타까지 허용하며 2점을 더 내줬다. 실점 상황에서 실책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야수들의 움직임과 상황판단도 아쉬웠다.

타선과 수비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한계투구수가 임박해 오며 양현종은 7회에도 흔들렸다. 폭투와 볼넷까지 겹치며 김강민과 조동화에게 연속 적시타를 허용하고 결국 강판 당했다. 교체 투입된 임준혁은 양현종이 남기고 간 두 명의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이며 양현종의 자책점은 7점으로 늘어났다. 6.1이닝 8피안타 2사사구에 7실점(7자책). 5회까지의 호투가 무색하게 올 시즌 최악의 피칭으로 기록되며 첫 패를 떠안았다. 양현종이 내려간 후에도 4점을 더 내준 KIA는 0-11로 굴욕적인 영봉패를 당했다.

김광현도 고비는 있었다. 사실 초반 분위기는 김광현이 더 어려웠다. 김광현은 1~4회에 걸쳐 매 이닝 안타를 허용했고 세 번이나 주자를 득점권에 내보내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김광현은 빼어난 위기관리능력을 바탕으로 후속타를 저지했다. 최대의 고비였던 3회 무사 1, 3루에서 KIA 중심타선인 브렛 필과 나지완을 각각 땅볼과 병살타로 처리한 장면은 이날의 백미였다.

중반 이후 고비를 넘지못하고 무너진 양현종과 달리 김광현은 이닝을 거듭하면서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0의 균형이 깨진 7회에는 세 타자를 깔끔하게 삼자범퇴시키며 자신의 이날 경기 마지막 이닝을 마쳤다. 최종 기록은 7이닝 동안 4피안타 무실점 5탈삼진으로 시즌 2승째를 챙겼다. SK도 김광현의 호투에 힘입어 시즌 10승 고지에 안착했다.

후반 들어 경기균형이 급격히 무너지며 팽팽하던 투수전이 용두사미가 된 것은 다소 아쉬웠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젊은 에이스들의 강한 승부욕과 자존심 대결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언제부터인가 국내 프로야구에서 에이스급 투수들의 정면 대결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추세다. 각 팀들이 확실한 1승을 위해 어떻게든 이길 확률이 높은 경기에만 에이스를 등판 시키려고 하다 보니 특급 투수들간의 맞대결을 기피하는 현상 때문이다.

김광현은 2000년대 후반, 지금은 미국에 진출한 윤석민, 류현진과 함께 '토종선발 빅3'로 꼽혔다. 하지만 세 투수가 최전성기의 기량을 보였던 시즌에 맞대결한 경우는 드물다. 우천 순연 등의 사례도 있지만, 소속팀 감독들이 고의적으로 로테이션을 조정하는 등의 꼼수도 마다하지 않으며 이런저린 핑계도 맞대결을 피한 경우가 많았다.

팀마다 나름의 사정은 있다. 매일 경기가 이어지는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다. 다른 경기에 비하여 에이스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패할 경우 타격은 더 배가 된다. 전력이 약하거나 선발진이 그리 두텁지 않은 팀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경기에서 에이스를 냈다가 패배하며 그 후유증이 팀의 전체적인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날 경기만 해도 일부 KIA팬들 사이에서는 김광현과 SK전 전적이 썩 좋지 않은 양현종을 부담스러운 맞대결에 등판 시킨 것이 다소 무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프로스포츠의 존재 목적은 팬이다. 팬들은 팀의 승리 못지 않게 다양한 볼거리와 스타들의 활약을 원한다. 최고의 선수들이 한 그라운드 안에서 당당히 진검승부를 펼치는 것만큼이나 최고의 볼거리는 없다. 약한 상대를 골라가며 이기려드는 것은 승리의 가치도 반감된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최동원과 선동열의 맞대결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될 만큼 한 경기를 넘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이러한 라이벌 구도가 활성화되어야 더 많은 팬들의 흥미를 끌어 모을 수 있다.

승패의 희비는 엇갈렸지만 승리한 김광현 못지 않게 양현종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양현종에게는 쓰디쓴 경험이지만 그만큼 다음 경기에서 더 집중력과 독기를 가지고 SK전을 벼를 수 있는 동기 부여를 얻은 셈이다. 다음 대결에서 또 한 번 에이스들의 진검승부를 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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