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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건' 사흘째인 18일 오후 전남 진도군 인근해 침몰현장에서 해경과 해군 해난구조대(SSU)이 침몰한 선체를 부력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설치한 뒤 실종자의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 선체 진입시도하는 해경·해군 '세월호 침몰사건' 사흘째인 18일 오후 전남 진도군 인근해 침몰현장에서 해경과 해군 해난구조대(SSU)이 침몰한 선체를 부력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설치한 뒤 실종자의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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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세월호 배 사고 뉴스 봐야 해요."
"응?"
"학교 숙제예요. 담임 선생님께서 배 사고 뉴스 보고 오라고 하셨어요."
"그런 숙제를 내셨구나."

주방 개수대 옆에 붙어 있는, 한 뼘 크기의 소형 티브이를 켰다. 세월호 침몰 관련 뉴스 속보가 요란스럽게 나오고 있었다. 딸은 사뭇 심각한 표정으로 손바닥만한 화면을 응시했다. 그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우리 집의 짧은 풍경이었다.

선박사고 전문가가 된 아이들... 뭐라고 해줘야 하나

어젯밤, 딸에게 뉴스 보고 오기 숙제에 대해서 몇 마디를 물었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자고 했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또 무엇을 했냐고 물었다. 그냥 놀았다고 했다. 그저 놀기만 했냐고 되묻는 내 말에 딸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놀긴 놀았는데, 그냥 얌전히 앉아서 놀았어요."

조신하게 말하는 딸 아이가 새삼스럽게 보였다.

"선생님, 배에 갇힌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에어 포켓(선체 속 공기가 남은 공간)이 있으면 살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래도 수온이 10도를 조금 넘는 정도여서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도 있지 않아요?"
"변침(여객선이나 항공기 등이 항로를 변경하는 것)을 급하게 했다고 하는데, 왜 그런 거예요?"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입에서 어려운 말들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번 세월호 사고 관련 기사를 꼼꼼히 챙겨 보지 않으면 어른들도 알아듣기 힘든 전문 용어들이었다. 어제 2학년 어느 반의 수업 시간이었다.

보고하는 글을 쓸 때는 조사 과정과 결과를 모두 중시해야 한다는 교과서 학습 내용을 함께 살피는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세월호 사고가 떠올랐다. 늦춰진 출발 시간을 벌충하려고 운항 규정에 맞지 않게 무리하게 항해한 건 아닌지, 평소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과정에서 그런 처참한 결과가 나온 게 아닌지 하는 생각들이 들어서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욕심 많은 어른들이 자신들의 경제적인 이익이라는 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꼼꼼히 지켜야 할 제반 과정을 제대로 따르지 않아 이번 사고가 터진 게 아니냐는 말을 넌지시 던졌다. 그때부터 에어 포켓이니 변침이니 하는 어려운 말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스스로 모금함 만든 아이들... 어른인 게 부끄럽다

세월호 침몰로 많은 학생이 실종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 지난 18일 재학생들이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로 많은 학생이 실종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에서 지난 18일 재학생들이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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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3학년 아이들이 모금을 하더라니까."

도교육청 출장에서 평소 형님처럼 대하는, 남원 모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박 선생님을 만났다. 세월호 사고 후 학교 분위기가 어떤가라는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모금 이야기를 들은 나는 놀라웠다.

"선생님들이 시킨 게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한 거예요?"
"그렇다니까. 커다란 상자로 모금함까지 만들어서 모금을 했어."
"그 아이들하고 얘기는 나눠 보셨어요?"
"아니, 아직. 월요일쯤 가서 이야기좀 해 보려고. 기특하지? 우리 학교 애들이 시골에 살지만 괜찮다니까."

박 선생님에게 혹시 모금함이나 모금하는 장면을 찍어 놓은 사진이 있느냐고 물었다. 박 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사진이 대수랴. 나는, 삼삼오오 모여 모금 얘기를 처음으로 꺼내고, 자기들끼리 회의를 연 뒤 모금 상자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을 박 선생님 학교의 중학교 3학년 아이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아이들은 남녘 농촌 소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다른 학교의 이름 모를 학생들을 위해 꼬깃꼬깃한 용돈을 아주 조용히 모았다. 그 무엇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두 눈이 시려왔다. 가슴이 먹먹했다.

신나게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텐데도 자리에 앉아 얌전히 놀고, 철 없는 장난꾸러기들이지만 어른도 알기 힘든 사고 경위와 수습 과정을 자세히 알며, 흉사를 당한 이름 모를 타지역 학생들을 위해 묵묵히 모금함을 돌린 초등학생·중학생들에게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세월일까.

지난 17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은 서울에서 진도로 날아갔다. 다음날 우리는 신문과 인터넷에서 박 대통령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으고 애원하는 한 실종자 가족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진을 본 이 땅의 아이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통령에게까지 애원했건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기만 했다. 궂은 날씨에 대한민국은 구조를 위한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이 무력한 시스템을 아이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객선 회사는 화물 과적과 부적절한 구조 변경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 극대화를 추구했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 다수는 긴박한 상황에서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도 내리지 않은 채 먼저 탈출했다. 언론은 세월호 사고 이후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보도 경쟁을 하고 있다. 이토록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을 보며 이 땅의 아이들은 얼마나 짙은 한숨을 내쉬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세월호, #안산 단원고, #아이들, #철없는 어른들,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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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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