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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중고 수학여행을 당분간 금지시킨다는 교육부의 발표를 접하고 갑자기 떠오른 우스갯소리가 있다. 단순하면 무식하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수학여행 금지' 방침은, 백 보 양보해서,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를 어떻든 돌려보려는 얄팍한 술수다. 설마 이번 참사의 원인이 수학여행 자체에 있다고 믿는 걸까.

정말 '세월호 참사' 원인이 수학여행이라고 믿는 걸까?

'이래도 수학여행 가야하나'라는 제목의 4월 21일자 <주간조선> 표지.
 '이래도 수학여행 가야하나'라는 제목의 4월 21일자 <주간조선> 표지.
ⓒ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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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정부를 탓하자니 입만 아프고, 대책이랍시고 발표하는 걸 듣는 것조차 괴롭다. 하긴 수백 명의 학생들이 죽거나 실종된 사건이니 만큼, 교육부가 나 몰라라 할 순 없는 노릇. 무언가 눈에 띄는 대책을 내놓기는 해야겠기에, 고민 끝에 내놓은 게 고작 '수학여행 금지'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수학여행 폐지'라는 여론에 뒤늦게 숟가락 하나 얹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이런 대책을 들고 나오리라 예상 못한 국민들은 없다. 작년 해병대 캠프 참사 때도 그랬고, 최근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참사 때도 그랬다. 교육부는 전국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 이번처럼 '당분간'이라는 전제 하에 행사를 보류, 금지 시켰다. 사고가 어디 체험활동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 때문인가. 그저 여론을 달래기 위한 '뻔한' 대책일 뿐이다.

이번 '수학여행 금지'는 교육부 차원의 공식 발표일 뿐, 수학여행은 물론 소풍이나 체험학습 등 각종 교외활동을 자제하라는 공문이 이미 일선 교육청으로부터 학교에 하달된 상태다. 사실상 금지하라는 뜻이다.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부화뇌동하지 말고, 일체 아이들 교육은 학교 내에서만 실시하라는 것. 학교마다 적어도 1학기 교외활동은 그렇게 학사일정에서 제외됐다.

소풍과 수학여행만 손꼽아 기다려온 아이들은 이번 교육부의 발표에 서운해 할 법도 하건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덤덤한 반응이다. 이번 참사로 또래들이 대거 죽거나 실종된 마당에 그럴 기분도 아니라며, 되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는 게 죄스럽다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죽거나 실종된 또래 아이들과 유가족의 슬픔을 나눌 방법을 고민하는 대견스러운 모습도 있다.

이 판국에, 아직 어린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경우엔 모르겠지만, 또래들인 고등학생들은 이미 '수학여행 금지' 따위의 발표엔 아예 관심도 없다. 대신 이번 참사는 아이들에게 교육부는 과연 뭐하는 곳인가 의심하도록 만든 계기였다. 스마트폰과 SNS에 익숙한 아이들은 교육부라고 하면, 으레 '비통해 하는 희생자 가족들 앞에서 팔걸이 의자에 앉아 라면 먹는 장관'을 먼저 떠올린다. 숫제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급조된 '수학여행 금지 지침'... 학부모-업체 '위약금 갈등'

'세월호 침몰사고' 4일째인 19일 오전 수학여행에 나섰다 실종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의 가족들이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수색작업이 진행중인 바다쪽을 바라보고 있다.
▲ '오늘은 좋은 소식 있을까?' '세월호 침몰사고' 4일째인 19일 오전 수학여행에 나섰다 실종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의 가족들이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수색작업이 진행중인 바다쪽을 바라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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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에 수학여행 금지 명령을 내린 교육부는 과연 학교마다의 수학여행이 지금껏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기나 할까. 주로 어디를 가고,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지, 학교가 직접 운영하는 방식과 여행업체에 위탁해서 운영하는 수학여행에는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비교 분석해본 적이 있을까. 마땅히 학교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손 놓고 있다가, 사고가 났을 때만 반짝 관심을 갖는 게 다반사 아니었나.

수학여행을 폐지하자는 여론도 이른바 '1970~1980년대식 관광' 개념에 머물고 있는 기존의 관행을 질타하는 것일 뿐, 말 그대로 '닦고(修) 배우는(學) 여행'의 의미와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학교가 교육적 효과를 망각한 채 오로지 수익 창출에 눈 먼 여행업체에 휘둘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그들에게 '위임'해 버리는 나태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수학여행을 주제별로 소규모로 설계하고,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시하고 있다. 교실 수업에서는 얻기 힘든 다양한 교육 효과를 거두기도 하고, 참여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만족도도 꽤 높다. 시행 후 평가회를 갖는 등의 환류 작업을 통해 더 나은 수학여행 모델을 만들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교육부가 그러한 학교들의 다양한 변화 움직임을 발굴하고 보급하고자 노력하기는커녕, 섣부르게 일괄 금지 시키는 건 튼실한 싹조차 뽑아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물론, '수학여행 금지' 방침이 오래 갈 것으로 보는 교사는 많지 않다. 허둥지둥 대처에 무능하다고 혼쭐난 정부가 어차피 순간을 모면할 목적으로 꺼낸 교육부 발 '뻥카'라는 생각 때문이다.

들끓는 여론에 편승해 급조된 대책이다 보니,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발표부터 하고 본 모양새다. 무지한 건지, 아니면 무책임한 건지 구별조차 쉽지 않다. 일례로, 이미 수학여행 위탁 계약이 맺어진 학교와 여행업체 간 일어날 갈등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감안했다면, 발표하기 전에 구체적인 계약 현황을 조사하고 계약 취소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했다.

4월과 5월은 학교마다 수학여행의 피크 시즌으로 통한다. 그만큼 예약이 몰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교육부의 주상 같은 지침이 발표되자마자, 많은 학교에서 수익자 부담 원칙인 수학여행 특성 상 업체와 학부모들의 위약금 갈등이 첨예화됐다. 문의에 시달린 학교는 교육청을, 교육청은 교육부를 핑계 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책임은 늘 약자에게 가혹한 법. 일선 교육청은 자신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으니 학교가 알아서 할 일이라며 손을 털고 있다. 그런 마당에 학교가 중재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두 당사자, 곧 업체와 학부모가 알아서 하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말 그대로 '무책임의 도미노'다. 이렇게 또 한 번 우리 교육의 신뢰는 허물어진다(위약금 문제가 논란이 되자, 교육부는 "이미 계획된 수학여행을 취소할 경우 발생하는 위약금에 대해서는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논의해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뒤늦게 밝혔다).

고등학생들 "정부보다 더 나은 대책 내놓을 자신 있다"

전남 진도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16일 당일 구조된 탑승객들의 임시 보호소로 쓰인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팔걸이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서 장관의 뒤편으로 체육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생존자들과 다급한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전남 진도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16일 당일 구조된 탑승객들의 임시 보호소로 쓰인 진도 실내체육관을 방문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팔걸이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서 장관의 뒤편으로 체육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안정을 취하고 있는 생존자들과 다급한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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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면, 지침을 하달하기 전에 그것이 미칠 파장을 세심하게 챙겨야 한다. 현장에서 빚어질 혼란을 가늠하는 한편, 선의의 피해자는 없는지 등을 살피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정부와 정책의 신뢰는 거창하고 화려한 대책이 아닌, 꼼꼼하고 소소한 배려에서부터 비롯된다. 현 정부의 무능함은 이러한 무지에서 온 것이다.

관행화된 수학여행 방식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걸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또 '사고여행'이라며 손가락질 받아온 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러나 냄비처럼 확 끓어 올랐다가 식기를 반복하며, 그때마다 미봉책으로 끝났다. 이는 학교와 여행업체에 '일단 소나기만 피하고 보면 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주었다. 백년하청일 테지만 옥석을 가리는 디테일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이번도 마찬가지일 공산이 크다.

자판을 두드리며 교육부의 한심함을 꾸짖으려니, 바로 옆 자리 동료가 대뜸 따지듯 묻는다.

"그럼 넌 대안이 있니? 네가 교육부 장관이라면 뭘 내놓을 건데?"

순간 '대안이 있어야만 비판을 하나?' 싶어 황당하기도 하고 화도 났지만, 이번 참사를 목도하며 진정 학교와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다.

나라면? '수학여행 금지' 따위의 한시적인 보여주기 식 지침을 내리진 않겠다. 그보다 차라리 여느 선진국의 경우처럼, 수영이나 응급처치 등 위급할 때 생존에 필요한 기초 훈련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해 교육과정에 반영하겠다. 이번 참사를 국영수 등 수험용 이론지식에만 매몰된 우리 교육을 혁신적으로 뜯어고칠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겠나.

요컨대, '수학여행 금지'를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는 교육부 관료들에게 '창조적' 대책을 기대하기란 연목구어다. 다만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게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로 '우리나라에 대해 너무 많은 걸 깨달아 버린' 고등학생 아이들이 이렇게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 말마따나, 이게 정녕 나라인가 싶다.

"차라리 우리들끼리 모여 만들어도 정부보다 훨씬 더 나은 대책을 내놓을 자신이 있다."


태그:#수학여행 금지, #세월호 참사,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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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세월호' 침몰사고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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