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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여수복지관 한글반 모습
 동여수복지관 한글반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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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 한글을 배웠으니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대학까지 댕길랍니다. 영어도 배우고 잡고, 일본어도 배우고 잡고, 대학도 가고 잡네요. 아예 백살 묵드락 댕길랍니다. 하하하!"

21일(월), 동여수노인복지관 한글교실을 방문해 열심히 공부하는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배운 소감을  물었을 때 한 할머니가 대답한 말이다. 공책에 반듯하게 한글을 받아쓰는 할머니들의 눈초리가 초롱초롱하다. 칠판에 선생님이 쓴 글은 '쓰고 또 쓰고'다. 선생님이 먼저 글씨를 쓰며 질문을 하면 할머니들이 큰 소리로 답변한다.

"ㅆ"에 'ㅡ'가 들어가면 뭐가 되죠? 'ㅆ'에 'ㅓ'가 들어가면 뭐죠?"
"'쓰'입니다. '써'입니다."
"예! 맞습니다. 항상 자음과 모음이 모여 글자를 만들어 냅니다."

58세부터 76세까지의 할머니 20여 명이 공부하는 한글반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집이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닌 게 한이 돼 이곳에 나왔다"고. "길거리를 가다 간판을 읽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는 할머니는 "손주와 길을 가다 간판을 읽었더니 아니! 할머니가 글을 아네!" 라고 칭찬해줘 "기뻤다"고 한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할머니는 "그동안 자신의 이름도 모르고 까막눈으로 살다가 이곳에 다닌 후로는 책도 읽을 수 있고 친구도 만날 뿐만 아니라 치매예방도 된다"고 한다. 한글교실 선생님인 정채만(68세)씨는 4년째 한글을 지도하고 있다. 정씨로부터 한글반 지도소감을 들었다.

한글반 교사 정채만씨 모습. 석사학위 소지자이기도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만 남았다는 엘리트다.
 한글반 교사 정채만씨 모습. 석사학위 소지자이기도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만 남았다는 엘리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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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반의  한 할머니가 쓴 공책
 한글반의 한 할머니가 쓴 공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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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이 어렸을 적에 여자들은 학교에 보내지 않았어요. 이분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분야는 받침글자를 어려워해요. 'ㄱ'자도 모르던 사람들이 간판을 읽고 성장했을 때 기쁘죠. 가르친 분들이 여수시에서 주관한 한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탓을 때 보람을 느꼈습니다."

노인복지관에서 한글을 배운 후 '나의 행복'이라는 주제로 감사편지를 쓴 박아무개 할머니의 글이다.

"눈을 뜨고도 글도 모르는 장님.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장님. 매일 매일 배워도 까먹는 장님. 그래도 연필 하나 공책 하나 가방에 넣어 다녀도 정말로 행복해요. 이제는 일학년 복지관 학교에 다녀서 행복해요. 나의 생활 매일 목이 아프도록 가르쳐 주신 선생님 미안하고 고마워요. 이제는 내 손자들 이름 석 자를 쓸 수가 있어서 정말로 행복하답니다. 노년에 글을 쓰고 배울 수 있어서 정말로 좋아요. 옛날 시대는 배울 수 없어서 한이 된답니다. 이제라도 배울 수가 있어서 정말로 행복합니다."

한글반 반장인 이옥자(73세)씨는 "이곳에서 한글을 가르쳐줘서 항상 고맙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이든 할머니들이 항상 정답을 쓰는 건 아니다. 받아쓰기 시험을 볼 때 교사가 "써내다"를 말했지만 "써나다"로 쓰는 할머니도 있다. 하지만 한 두 글자 틀리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자신의 이름도 몰랐던 분들이 수업을 마친 후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가는 모습이 흐뭇하다.

건강과 치매 예방을 위해 취미활동에 열심인 노인들

매일 250명의 노인들이 이용하는 동여수복지관은 노인들을 위한 상담과 건강, 평생교육지원, 경로당운영, 노인일자리 사업, 노인돌봄종합서비스, 노인장기요양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 3층으로 올라갔다. 탁구를 시작한 지 4년 됐다는 이인자(76세)씨를 만나 소감을 들었다.

탁구는 전신운동이라 건강에도 좋고 웃고 즐길 수 있어 너무나 좋다고 한다
 탁구는 전신운동이라 건강에도 좋고 웃고 즐길 수 있어 너무나 좋다고 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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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는 정신집중에 좋아 치매예방을 위해 매일 나와서 당구를 한다는 한 할머니. 힘들지 않아 좋다고 한다
 당구는 정신집중에 좋아 치매예방을 위해 매일 나와서 당구를 한다는 한 할머니. 힘들지 않아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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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운동이잖아요. 체력도 좋아지고 스트레스도 풀려요. 여기오지 않고 집에만 있었더라면 우울증에 걸려 죽었을 겁니다. 저는 심장질환이 있는데 호전됐어요. 노인들이 웃을 일이 있습니까? 탁구 치면서 웃고, 친구만나고, 너무 좋아요. 다만 여름이면 냉방시설이 안 돼 덥고 시멘트 바닥이라 무릎관절이 아픕니다."

당구에 열중인 조정심(75세)씨의 당구치는 모습이 프로 못지않다. 그녀에게 당구의 장점을 들었다.

"눈도 밝아지고 정신을 집중하니 치매예방도 됩니다. 건강도 좋아지고 심심하지 않아 매일 나옵니다."

서예실에 들렀다.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써내려  가는 오장옥(83세)씨에게 서예를 하면서 좋아진 점에 대해 들었다. 그는 서예를 배운지 2년 밖에 안 됐다.

83세지만 서예를 하다보니 치매예방도 되고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83세지만 서예를 하다보니 치매예방도 되고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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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안정되고 치매예방에도 좋아요. 집에 있는 것보다 나와서 활동을 하며 친구도 만나 놀기도 하니 여러 가지로 좋죠."

동여수노인복지관 2층에 새로운 명소가 탄생했다. 북까페인 '서다헌'은 차와 책,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이다.  지난 17일(목) 개관한 서다헌에는 대형 책장 2개, 붙박이 책상과 책장, 오름 단상이 설치됐다. 오름 단상은 평소 바닥에 앉아서 책을 볼 수 있지만 필요하면 장기자랑도 하는 작은 문화 공연장으로 변신할 수 있다.

서다헌 내부의 모습
 서다헌 내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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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다헌에 비치된 대형 책장은 여천 NCC(주) 목공동우회 직원들이 제작해 기증한 것이다. 현재 1500권의 양서가 비치됐지만 아직도 빈자리가 많다. 지역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동여수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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