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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수명의 연장으로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는 2013년 겨울. 2014년부터 2030년까지 해마다 20만 명 이상의 베이비부머 세대 은퇴자들이 쏟아진다는 예측이 나오는 2013년 겨울.

이제 은퇴 이후의 삶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할 큰 화두가 되었다. 은퇴 이후의 삶이 길어지다 보니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새로운 삶을 살지 않으면 그 긴 세월을 조용히 늙어가는 것만으로는 채울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퇴직한지 1년6개월 된 새내기 은퇴자이다. 우리 두 사람은 은퇴 후의 삶을 계획하면서 싸우고, 타협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열 가지 삶의 원칙을 세웠다.

첫째, 산속에 들어가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살자. (산속이라도 20분 이내에 응급실이 있는 병원에 갈 수 있는 곳)
둘째, 밭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자급자족하자.
셋째, 돈 버는 일은 하지말자.(육십 평생을 돈 버드라 고생했으니 최소한 확보된 연금으로 소비를 줄여서 살자)
넷째, 잃어버린 건강을 지키기 위해 규칙적인 운동을 하자.
다섯째, 손자 손녀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할머니 집을 만들자.
여섯째, 사람, 꽃과 나무, 새와 짐승들이 더불어 사는 총체적 삶을 만들자.
일곱째, 여행을 많이 다니자.
여덟째, 귀촌생활에 관한 글쓰기와 모임으로 세상과 소통하자
아홉 번째, 명상과 기도로 영혼을 맑게 하여 죽음을 감사하게 맞을 준비를 하자.
열 번째, 마지막 이별을 할 때 당신이 있어 행복했다는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좋은 배우자가 되자는 계획을 세웠다.

은퇴하기 7년 전부터 싼 땅을 찾아다니다가 지리산 자락에 18000평의 임야를 구입했다. 직장이 대덕연구단지에 있어 삼십년 가까이 산 대전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이 넓은 땅을 원하는 바람에 자식들이 살고 있는 서울과 멀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남편의 뜻을 따랐다.

20분 이내 거리에 남원의료원이 있는 것도 그 땅을 사는 동기가 되었다. 그 산을 사고부터 남편은 조그마한 집을 짓자는 나와의 약속을 무시하고 매주 지리산을 오가며 산을 깎는 토목공사를 벌여 예상치 못한 공사비가 들어갔다. 휴가를 몰아 목조주택 학교와 한옥학교에서 집짓는 기술을 배우고 공구들을 구입했다.

그렇게 지리산 터를 오가기 7년, 작년에 퇴직하여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남편은 삼십여 평 정도의 집을 짓자는 두 사람의 합의를 어기고 설계단계에 들어가자 큰 집을 짓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직장에 나가지 않으니 집에서 지낼 시간이 많으므로 집안에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에는 실내에서 운동을 해야 하니 운동실이 필요하다, 조용히 명상하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이유를 들어 넓은 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은 내 뜻을 굽히고 남편의 주장에 이끌려 60평짜리 집과 40평의 취미공간을 짓고 말았다. 다행히 공구와 서투나마 집짓는 기술이 있어 하청을 주지 않고 직영을 하여 건축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60여 평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근사한 통나무집이 일 년 만에 완성되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정도가 넘지않는다)라는 문구가 좋아 붙인 집 이름
▲ 검화당의 일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정도가 넘지않는다)라는 문구가 좋아 붙인 집 이름
ⓒ 김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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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작한다'는 희망이고 설레임이다. 본격적인 귀촌 생할이 시작되는 해이다.
▲ 2014년 설날 일출 '새롭게 시작한다'는 희망이고 설레임이다. 본격적인 귀촌 생할이 시작되는 해이다.
ⓒ 김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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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들어가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살자는 첫 번째 약속은 반쪽만 지켜진 셈이다. 집 앞 300여 평의 밭에서 고구마, 땅콩,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 호박을 비롯하여 재배 가능한 야채를 가꾸고 수확하는 기쁨은 어미가 자식을 기르는 것만큼 깨끗하고 귀한 즐거움을 주었다.

밭에 돌이 많아 마을 분들이 경운해 주기를 꺼려 남편은 쇠스랑으로 파고 나는 돌을 줍는 고된 노동에 허리가 휘어지도록 고생을 했다. 제초제를 쓰지 않은 탓에 풀을 뽑고 돌아서면 다시 풀밭이라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농사일이라는 것을 절감했지만 싱싱하게 자라는 채소들을 보면 엄숙한 자연의 섭리에 고개가 숙여진다.

가꾸는 기쁨 못지않게 자연에서 채취하는 즐거움 또한 산 속에 사는 재미이다. 이른 봄에 낙엽을 뚫고 올라오는 애기 속살처럼 보드라운 산마늘이며 산에 지천으로 나는 취나물, 곰취, 우산나물, 고사리, 지보 등을 채취하여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아먹고 친구들과 나누는 기쁨은 산에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순도 100%의 희열이다.

어머니 대지(大地)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자식의 심정으로 감사함이 넘친다. 깨끗한 먹거리로 건강도 많이 회복되었고 먹거리가 깨끗하면 생각도 맑아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먹거리를 자급하자는 두 번째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는 셈이다.

매일 아침식사가 되는 고구마는 우리에겐 귀중한 식량이다. 과거 3년동안 멧돼지에게 털렸으나 작년에 튼튼한 철망울타리를 치고 재배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좋은 식량이 되었으나 며칠 후면 끝날 것 같다. 올해는 2배 면적에 고구마를 심을 생각이다
▲ 고구마 수확 매일 아침식사가 되는 고구마는 우리에겐 귀중한 식량이다. 과거 3년동안 멧돼지에게 털렸으나 작년에 튼튼한 철망울타리를 치고 재배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좋은 식량이 되었으나 며칠 후면 끝날 것 같다. 올해는 2배 면적에 고구마를 심을 생각이다
ⓒ 김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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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지 말자는 세 번째 약속은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집짓는 마무리가 끝나지 않아 200 만원이 조금넘는 연금으로 살기는 부족하다. 도시생활 할 때의 소비 습관이 아직 남아 있지만 잘 입고 잘 먹는 일에서 자유로우면 시골생활은 도시보다 적은 돈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 유사시에 대비한 약간의 여유자금을 비축해 놓고 절약하며 살면 돈을 벌지 않고도 이 생활이 가능할 것 같다. 소유를 줄이고 존재가 승리하는 삶을 위해서는 돈을 쓰지 못하는 어려움을 참고 절제가 주는 단출함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고 병든 몸을 치유하자는 네 번째 약속은 아주 잘 지켜지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108배와 명상으로 아침을 열고 발목펌프로 몸을 깨운다. 발목펌프는 동그란 나무 몽둥이위에 발목을 올리고 양발을 번갈아 때리는 운동으로 발끝 말초혈관 까지 혈류가 원활히 흐르게 하는 큰 효과가 있다. 고구마와 요구르트, 호박죽과 야채샐러드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에는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뒷산을 한 시간 가량 등산을 한다.

집에 돌아오면 커피와 과일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해질녘 까지 농사일과 집 주변 가꾸기와 월동준비를 한다. 일주일에 4일은 주민센타에서 요가와 국선도를 하고 매주 목요일은 친구들과 지리산둘레길을 걷는다. 매일 운동하고 맑은 공기 마시고 좋은 음식을 먹는 덕분인지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적은량을 잘 씹어서 먹다보면 이렇게 사는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 아침 채식식단 적은량을 잘 씹어서 먹다보면 이렇게 사는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 김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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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손녀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할머니 집을 만들자는 다섯 번째 약속도 잘 지켜지고 있다. 일곱 살짜리 외손자 수환이와 세 살 된 손녀 지유는 할머니 집에 오면 첫마디가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 이곳에는 장난치며 같이 놀 수 있는 개들이 있고 바위틈으로 쏘다니는 다람쥐가 있고 마음껏 뛰어 다닐 자연이 있으니 녀석들에게 이곳은 천국인 모양이다.

얼마 전 제어미가 해외세미나에 참석하느라 일주일간 우리 집에 두고 간적이 있는데 녀석이 제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외갓집에 가고 싶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칭얼댄다며 "엄마, 도대체 무슨 요술을 부렸기에 애가 계속 외갓집 타령인가요?" 하는 딸의 전화를 받고 "애, 나는 그저 함께 놀아주었다." 라고 대답하고는 혼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 오고 싶어 하는 할머니 집을 만들겠다는 우리 두 사람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이쯤 되면 제 자식들 성화에 못 이겨서라도 우리 자식들이 제 부모 집에 더 자주 오지 않겠는가.

더불어 살자는 여섯 번째 약속도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는 편이다. 귀촌한 부부들과 함께 일하고 음식을 같이 나누고 같이 노는 기쁨이 도시생활에서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은퇴해서 시간이 자유롭다는 점, 새로이 시골생활을 배우는 점, 은퇴자라서 서로 돈을 아껴 쓴다는 점,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만나면 유쾌하고 재미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것들과 더불어 살자는 여섯 번째 약속도 서서히 발전해 가고 있는 중이다. 집 주변에 야생화와 꽃나무를 심고 레브라도 리트리버 두 마리를 기르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가 지어지면 산양과 오골계도 기를 생각이다. 인간중심의 생활에서 벋어나 동물들과 더불어 살게 되면서 자연을 이해하고 신비를 알아가는 의식이 확장됨을 느낀다.

여행을 많이 다니자는 계획은 많은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은퇴 후에 세계를 돌아다니려고 젊은 시절 고생하고 돈을 모았건만 집터를 닦고 집을 짓는데 예상 밖의 지출을 감행한 남편의 고집 탓에 은퇴 후에 여행을 많이 다니겠다는 나의 소망은 이루기 어려운 꿈이 되었다. 은퇴를 준비하는 분들은 서로의 소망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시행착오를 하지 않아야 노후에 다툼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글쓰기와 모임으로 세상과 소통하자는 여덟 번째 약속도 지키려고 노력한다. 블로그와 오마이 뉴스를 통해 글을 올리고 몇 개의 모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남편은 한 달에 한두 번 연수원이나 단체에 강의를 나가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명상과 기도를 통해 영혼의 주파수를 높이고 죽음을 준비하자는 아홉 번째 약속도 지키려 노력중이다. 매일 명상과 단전호흡으로 마음을 맑게 하고 생각이 단순하고 깨끗해 질 수 있도록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나에게 한 번 주어진 귀한 삶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수행자의 마음으로 껍질에 싸인 자아를 깨뜨리고 우주의 본질인 핵을 만나기 위해서 닦고 또 닦고 깨고 또 깨고 끊임없이 변화하려 노력하는 수행자의 자세로 여생을 살고 싶다.

세상 떠날 때 서로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며 떠나자는 열 번째 약속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아홉 가지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며 사는 하루하루가 쌓이다 보면 잘 죽는 마지막이 오지 않을까 꿈꾸며 오늘이 마지막이듯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부부의 생활은 수많은 은퇴자의 한 유형일 뿐이지만 전원생활을 꿈꾸는 분들에게 조그마한 정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적어 보았다. 많은 분들이, 특히 여자 분들이 시골에는 의료, 문화, 편의시설이 부족하다고 시골생활을 꺼려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그런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땅을 살 때 20분 이내에 준 종합병원에 도착할 수 있는 터를 고르면 응급상황에 대한 걱정은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또 시골에도 문화행사나 강좌가 많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 무료라서 돈 들일 일도 없다.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노동의 기쁨도 크다. 실컷 땀 흘리고 나면 몸과 마음이 군더더기가 없는 깨끗한 상태, 자연 그대로의 희열이 있다.

도시생활이 군중속의 삶, 객체적인 삶이라면 시골생활은 자연과 내가 일체된 주체적인 삶이다. 우리 부부는 나름대로 행복한 은퇴자의 삶을 즐기고 있다.

▲ 헤리와해피 장난판 헤리와 해피는 래브라도리트리버 종으로 손자와 손녀의 친구로 작년에 집에왔다.
ⓒ 김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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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귀농, #귀촌, #검화당, #지리산,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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