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윅> 에서 이츠학을 연기하는 이영미

▲ <헤드윅> 에서 이츠학을 연기하는 이영미 ⓒ 쇼노트


뮤지컬 배우 이영미는 <헤드윅>에서 '이츠학 단골 배우'다. 10년 동안 <헤드윅>에서 다섯 시즌을 연기했으니 시즌의 반 이상에 참여한 셈이다. 이제는 잠꼬대를 해도 대사가 저절로 나올법한 이영미는 이츠학으로는 유일무이한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개 <헤드윅>은 헤드윅을 연기하는 배우의 팬들이 단체 관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영미의 팬들은 발 벗고 나서서 단체 관람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지난 9년 동안 그 어느 이츠학 출신 배우도 세우지 못한 진기록이 아닐까. "100%의 즐거움을 안겨주면서 0%의 스트레스를 주는 게 뮤지컬"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야기하는 이영미를 만났다. 

- 이번에 <헤드윅> 10주년 공연으로 고향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 것 같은데.
"10년 동안 다섯 시즌 공연했다. 2007년에 하고 4년 만에 돌아왔을 때가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이번에는 가까운 동네 친구 집에 놀러 온 느낌이 든다."

- 이영미씨의 장기는 파워풀한 가창력이다. 그럼에도 예전 시즌에서 이영미씨의 이츠학은 파워풀한 가창력을 모두 뿜지 않고 상대 남자배우 헤드윅과의 밸런스를 맞출 줄 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 배우에게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주고, 느끼는 것만 표현하는 데 있어 솔직하다. <헤드윅>은 단 두 명의 배우만 무대에 서는 공연이다. 이츠학은 헤드윅이 액션을 하면 받아주는 리액션 캐릭터다. 이런 리액션을 잘 하는 것 같다. 리액션을 얼마나 잘 하는지에 따라 캐릭터가 얼마나 돋보이는가를 절감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헤드윅의 심정 이해하면서 내 눈빛도 바뀌더라"

<헤드윅> 이영미 "이츠학은 남자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콤플렉스가 있다. 젊었을 적에는 제 안에 있는 여성성을 누가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여성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여자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던 시기였다."

▲ <헤드윅> 이영미 "이츠학은 남자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콤플렉스가 있다. 젊었을 적에는 제 안에 있는 여성성을 누가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여성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여자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던 시기였다." ⓒ 쇼노트


- 몇 발자국만 걸어야 하고 동작은 어떻게 해야 하는 식으로 정형화된 뮤지컬에 비해 <헤드윅>은 콘서트형 뮤지컬이다 보니 연기하는 배우의 입장에서는 숨통이 트이지 않나.
"헤드윅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이츠학은 그렇지 않다. 드러나 보이기보다는 그늘에 숨어있는 느낌의 캐릭터다. 또한 이츠학은 자기 노래를 하는 게 아닌 백업 보컬이다. 되레 다른 공연보다 숨통이 막힌 듯한 느낌의 캐릭터다. 이츠학은 헤드윅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표현할 수 있는 공간도 작다."

- 이영미씨가 이츠학에게 공감가는 부분이 있다면.
"<헤드윅> 초창기에는 많은 부분이 이츠학과 비슷했다. 이츠학은 남자지만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콤플렉스가 있다. 젊었을 적에는 제 안에 있는 여성성을 누가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여성적이라고 이야기하는 여자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던 시기였다. 또, 가수로서의 가능성이 컸고, 잘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잘 풀리지 않은 자격지심이 있었다. 이츠학이 헤드윅을 볼 때 '내가 더 나은데, 내가 왜 헤드윅 뒤에서 노래를 해야 돼?'하는 반감과 울분에 있어 싱크로율이 높았다.

<헤드윅> 초연할 때 제가 연기하는 이츠학의 영상을 보면 화가 많이 나 있는 걸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연기하다가 회차를 더하면 더할수록 슬픈 눈으로 바뀐다. 마지막 공연할 때는 '이츠학을 계속 연기하는 게 좋지 않겠구나' 생각한 적도 있다. 헤드윅이 왜 아픈지, 슬픈지를 너무 이해하고 있는 이츠학을 느낄 수 있어서다. 너무 이해를 한 나머지 헤드윅과의 대립 구도가 아니라 반대로 안쓰럽고 안아주고 싶게 된다.

나는 캐릭터를 설정하고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다. 원초적으로 연기하고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예외로 이번에는 이츠학이라는 설정, 이를테면 헤드윅과 대판 싸우고 굉장히 사이가 좋지 않은 식의 설정을 갖고 가서 예전에 공연할 때와는 다른 이츠학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나 싶다."

<헤드윅> 이영미 "카리스마가 있다는 건 존재감이 있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귀엽고 발랄한 역할을 하고 싶어도  그 이미지 때문에 맡지 못한다. 그래서 싫어했지만, 이제 제 모습이거니 하고 받아들인다."

▲ <헤드윅> 이영미 "카리스마가 있다는 건 존재감이 있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귀엽고 발랄한 역할을 하고 싶어도 그 이미지 때문에 맡지 못한다. 그래서 싫어했지만, 이제 제 모습이거니 하고 받아들인다." ⓒ 쇼노트


- 파워풀한 가창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카리스마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다.
"처음 앨범을 냈을 때는 발라드 장르였고, 최근 음반도 서정적인 장르의 노래였다. 뿜어내는 스타일의 노래가 아니라 재즈 같은 음악을 좋아한다. 하지만 파워풀한 가창력이 무대와 맞다 보니 록 성향의 뮤지컬 배우로 보는 시선이 있었다. '내 음악적 성향은 이게 아닌데 왜 그렇게 볼까' 하는 거부감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보이는 모습도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뮤지컬 팬들이 바라는 모습도 보여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카리스마라는 단어가 소스라치게 싫었던 적도 있다. 어릴 적부터 '카리스마 있다'는 소리를 들어왔지만, 이 때문에 뮤지컬에서 손해 보는 것도 있더라. 카리스마는 존재감이 있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귀엽고 발랄한 역할을 하고 싶어도  그 이미지 때문에 맡지 못한다. 그래서 싫어했지만, 이제 제 모습이거니 하고 받아들인다."

- 여왕벌이라는 별명도 있다.
"학창 시절에 <대학가요제>에 나간 적이 있다. 남자 네 명에 저 혼자만 여자인 팀이었는데, PD님과 FD님, 서울 지역 예선에 합격한 연대 소나기 팀과 서강대 에밀레 팀을 통틀어 여자는 저 혼자였다. 그런데 남자들이 술로 저를 이기려 했지만 이길 수가 없었다. 그때 PD님이 붙여준 별명이 여왕벌이다."

-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다. 정치로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어릴 적 꿈이 가수다. 그래서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위해 대학을 간다는 심정으로 학교를 다녔다. 당시 정외과는 문과 중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과였다. 사회 과목을 좋아해서 들어갔는데 정외과에 들어가 보니 고등학생 때 생각했던 학문은 아니었다. 세계의 정치사를 달달 외워야 했다.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정치에 관심이 없어졌다. 세상을 바꾸려는 이는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언젠가는 이를 바꾸려는 사람이 또 나타난다. 정치는 바꾸려는 이가 계속 바뀌는 순환이다."

이영미 헤드윅 이츠학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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