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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아니었다. 5공청문회에 환호했고, 부산에서 낙선한 일을 의아해했지만 대통령 선거에 기권함으로서 그에게 새털만큼 가벼운 한 표를 던지지도 않았다. 재임시절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사람들이 말할 때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만 했지 잘못된 말이라고 타박도 하지 않았고 노무현 대통령을 변호하지도 않았다.

그분이 세상을 떠나면서 나는 비로소 그분을 만나러 갔다.

이 책은 부질없는 그분에 대한 공부의 종착역이다. 야간자습 감독하는 날은 내가 일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조용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핑을 즐기고 있는데 이 책이 나를 끌어당긴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자네, 이리 와서 내 이야기를 좀 들어주게'라고 하는 것 같다.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어느 한 줄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내용을 읽으면서 자꾸만 교무실 벽에 있는 시계를 올려다본다. 가는 시간이 야속했고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까웠다. 이참에 고백해야 할 것이 있다. 서평을 쓰면서 '너무 재미있어서 아껴가면서 읽었다'고 쓴 일이 가끔 있었는데 그 말은 그 책이 재미나고 유익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기호일 뿐이었지 뼈에 사무치게 재미나고 유익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은 글자 그대로 '아껴가면서 읽은' 첫 책이 아닐까 싶다. 진솔하고, 성공과 실패를 여과없이 담았다. 그리고 언론과 기존의 저서에서 찾을 수 없는 그분의 인간적인 풍모와 속마음을 충분히 담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자 그대로 호흡을 함께 했던 비서관만이 쓸 수 있는 일화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면서 겪었던 과정이 이 책의 매력의 전부는 아니다. 조선시대의 사관의 역할을 그대로 했다고 해야 할 만큼 생생한 그분의 육성을 구술한 직접화법의 대화와, 청와대에서의 5년과 봉하에서의 생활을 마치 4계절의 변화를 시인이 노래한 듯한 서정적인 글쓰기의 흐름이 어느 대가의 문학가의 그것과 겨루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치인의 자서전 중에서 가장 진솔하다고 생각되어서 두고 두고 읽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여보 나 좀 도와줘>보다 더 잘 노무현 대통령을 이해시켜주었다. <여보 나 좀 도와줘>는 대중을 위한 대외용 아웃풋이라면 이 책 <기록>은 그 아웃풋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고뇌 그리고 우여곡절마저 담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읽다보니 야속하게도 시계는 야간자습을 마쳐야 하고 책을 덮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는 책을 소중히 아껴가면서 읽지 않았다. 띠지는 배송이 오자마자 쓰레기통으로 보냈고 평생 책갈피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읽다가 멈출 때는 사정없이 그 페이지를 접었고 그것도 귀찮으면 대충 책의 표지를 읽다 만 페이지로 밀어넣었다. 이 책만큼은 그렇게 못하겠다. 여분의 종이를 찾아서 접은 다음 읽다 만 페이지에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소중한 시간은 속절없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이 책과의 만남도 너무 짧았다. 우리와 그분과의 만남이 그러했듯이. 이 책을 다 읽고 수능을 마친 고3 교실에서의 수업을 떠올린다. 아이들과 졸업 후의 생활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 다시는 이 아이들과 이런 자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아이들이 옆에 있는데도 그리움과 아쉬움이 사뭇친다.

아이들이야 가끔 개인적으로 만나볼 수 있지만 그는 이제 볼 수 없다. 20년이 넘게 읽을 책을 곁에 두지 않은 적이 없었던 터라 별 수 없이 다음 책을 집었지만 새 책이 밉고 정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오랫동안 난독증에 시달릴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기록> (윤태영 / 책담 / 2014.04. / 1만5000원)



기록 - 윤태영 비서관이 전하는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

윤태영 지음, 노무현재단 기획, 책담(2014)


태그:#노무현,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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