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좌우에 배치된 사람들은 영조에게 우호적인 사람과 적대적인 사람을 나타낸다.
▲ 영화<역린>의 포스터 좌우에 배치된 사람들은 영조에게 우호적인 사람과 적대적인 사람을 나타낸다.
ⓒ 초이스컷 픽쳐스 , 파파스필름

관련사진보기

개봉 이틀 만에 65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인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 <역린>(이재규 감독)이 드디어 1000만 관객을 향한 롱런에 돌입했다.

현빈이 군 전역 후 3년 만에 촬영한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기대 그리고 이재규 감독의 영화 데뷔 작품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명불허전이라고 했던가! 영화 <역린>은 긴장감 있는 화면과 배우들의 극사실적인 표현들이 몰입도를 상당히 높인 영화다.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대비하면서 영화 <역린>을 보면 다양한 스토리와 볼거리를 찾아낼 수 있다.

<역린>을 보다 감동적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기록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중용>(中庸) 23장이다. 이 <중용>의 말씀을 열쇳말로 영화의 스토리가 흐르고 있고,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도 여기에 담겨 있다.

또한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아름다운 카메라 워크'다. 카메라 워크를 따라가다 보면 캐릭터들의 감정의 흐름도 볼 수 있고, 움직임과 정적의 거친 조화와 분열을 통해 다양한 메시지를 읽을 수 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아름다움과 잔인함이 하나되고, 그런 교차와 대립 구도가 만들어낸 정점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절제되고, 때론 거친 연기와 슬프고 다이내믹한 역사적인 사실들이 만나는 모습에서 바로 역린(용의 턱밑에 거슬러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한다)을 느낄 수 있다.

ㅇㅇ

흑과 백의 대비로 선과 악을 상징한다.
▲ 정조와 살수가 대결하는 장면 흑과 백의 대비로 선과 악을 상징한다.
ⓒ 초이스컷 픽쳐스 , 파파스필름

관련사진보기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는 말은 단순하지만, 엄청난 반역의 비극을 품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본래 정조 이산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지만 효장세자의 아들로 양자로 입적해 세손이 되고 영조가 죽자 왕에 올랐다. 사도세자는 반역자이므로 반역자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죽은 형의 아들이 된 것. 정조 이산은 정순왕후(영조의 마지막 중전, 한지민 분)와 대립하게 된다. 노론을 등에 업고 정순왕후는 15세에 66세인 영조의 중전이 됐지만, 영조 사후 정조가 즉위하자 대비마마가 됐다.

즉위 1년 만에 사도세자를 복권시키려는 정조와 이를 막으려는 노론벽파(정순왕후)가 존현각에 벌이는 '정유역변(丁酉逆變)'의 24시간의 기록이 영화 <역린>에 담겨 있다. 정조의 암살을 둘러싸고 살아야 하는 자(현빈, 정조 역)와 죽여야 하는 자(조정석, 살수 역), 살려야 하는 자(정재영, 상책 역), 지켜야 하는 자(박성웅, 금위대장 역)들의 엇갈린 운명과 비극적 최후의 기록을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화 <역린>은 <중용> 23장에서 시작해서 <중용> 23장으로 끝난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其次는 致曲 曲能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니, 唯天下至誠이아 爲能化니라)

정조는 아버지 정헌세자(사도세자)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아버지의 비극적 최후에 대한 보복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정조는 이런 비극의 씨앗은 궁중권력의 암투와 파벌 그리고 인간들의 사악한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식과 허의(虛儀)로 가득찬 조선왕조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깨닫는 것이다. 정현왕후를 중심으로 한 노론세력의 조정의 장악은 정조로 하여금 살기 위해 밤을 새워 책을 읽고, 어둠 속에서 '화난 등 근육'을 길러 무예를 닦아야 하는 처지로 만든다.

상책 갑수(정재영 분)는 본시 살수였지만 본디 인간적인 성품과 정조와의 어린시절 감정이입으로 정조를 살려야만 하는 사람이 된다. 살수 을수(조정석 분)과 대립할 수 없지만 대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극적 결말로 이끌어 간다. 이런 과정에 바로 <중용> 23장은 정조와 상책의 중의적 인간관계가 맺어진다. 영화의 전체적인 전개에서 상책과 정조와의 관계는 중심적인 플롯이 되는 것이다.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사람도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중용>의 말씀에 따라 만들어진 인간관계가 결국 정조와 세상을 구하게 된다.

서브 플롯은 바로 상책 갑수와 살수 을수의 관계다. 인간을 짐승처럼 대하며 자신의 작은 권력을 유지하며 사이코 패스 같은 역할을 하는 광백(조재현 분)은 작은 것(천민)을 더 하찮은 존재로 만들지만, 정조는 작은 것에 정성을 보여주면서 결국 감동시켜 변화를 만들어내고 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사람을 변하게 하고 세상을 변하게 만든 것이다. 

영화에서 정조가 직접 광백을 죽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대목이 영화 <역린>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다. 광백은 정조에게 "나 하나 처리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냐"라며 비소(誹笑)를 짓지만 현빈의 보검 사인검(四寅劍)은 주저함이 없시 조재현의 목을 날려버린다. 여기서 정조의 굳은 의지를 볼 수 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曲能有誠)는 말이다. 곡진(曲盡)하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됐다. 이는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해야 바뀐다는 말이다.

결국 정조는 토굴에서 가장 작은 어린 생명들을 제일 먼저 구해낸다. 세월호 침몰에서 제일 먼저 아이들을 버리고 먼저 자신들을 구한 어른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정조는 천재다. 정조는 노력파다. 게다가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하는 현자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을수와 갑수 그리고 정조가 하나의 화면에 나오는 결투장면이다.

노론벽파의 무장인 구선복을 설득해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패할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해볼만한 싸움으로 만든 정조의 지략이 돋보인다. 절제된 긴장감을 보여주는 활 쏘는 장면과 사인검을 휘두르는 정조의 모습에서 단호한 무인의 섬뜩함과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활과 검의 싸움에 등장한 조총은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황당할 수도 있는 싸움에서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결말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살수 을수(조정석)의 살의를 느끼게 만드는 표정과 몸짓은 살수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분위기를 만들어냈지만 결투장면에서 보여준 무술은 평범한 사극에서 보여준 수준이어서 조금은 아쉽다.

관객은 조정석(살수 역)이 가진 포스나 살의를 감안하면 더 높은 난이도의 검술이나 창의적인 무술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책 갑수와 살수 을수의 인간관계와 마지막 결투에서의 조우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지만 또 하나의 스토리를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역린>, 우리들의 역린이 되어야

살수(조정석 분)가 영조를 살해하기 위해 떠나는 장면, 배경화면이 미장센의 극치를 보여준다.
 살수(조정석 분)가 영조를 살해하기 위해 떠나는 장면, 배경화면이 미장센의 극치를 보여준다.
ⓒ 초이스컷 픽쳐스 , 파파스필름

관련사진보기


이재규 감독의 <역린>이 보여준 미장센은 극과 극의 이미지를 하나의 영상미에 담아낸다. 조화미뿐만 아니라 색채미도 미찬가지다. 존현각에서 벌어지는 결투씬에서 검과 활과 조총의 화려한 활약상이 다양한 앵글을 이용한 카메라 워크을 사용하여 긴장미와 지극히 폭력적인 상황을 아름다운 영상미로 보여준다. 붉은 피가 낭자한 화면에서 붉은 색의 화려하고 고급스런 색채미를 느끼게 만든다. 다양한 화면 캡춰도 기존의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긴강감을 자극하면서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극사실적인 묘사와 화면은 현대 영화나 드라마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광백이 도망자를 살해하는 장면이나 살수 을수를 조총으로 머리에 쏴 살해하는 장면, 그리고 정조가 구선복의 부하의 목을 치는 장면 등의 극사실주의적 묘사가 영화의 생동감을 살려주면서 긴장감을 높인다고 할 수 있다.

탄탄한 내공과 강인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정조나 농염하고 교활한 자태를 뽐내는 정순왕후, 압도적인 살의와 전문가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살수, 이중적인 삶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는 상책,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난해한 표정과 얼굴을 가진 광백 등 다양한 캐릭터들의 개성이 풍부한 연기가 무엇보다도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과 더불어 1000만 관객의 영화 명단에서 <역린>을 볼 수 있을지 기대해 볼만하다.

영화 <역린>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역린이 돼야 한다. 작은 것에 정성을 다하고 세상과 사람을 바꾸는 삶이 돼야 한다는 것. 세월호 침몰 사고 때문에 자괴감과 수치에 빠진 대한민국이 새로운 사회의 패러다임과 국가의 진정성을 다시 세우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게 바로 이 영화가 주는 시사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태그:#영조, #사도세자, #이산, #역린, #정현왕후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 그리고 감정의 다양한 느낌들 생각과 사고를 공유하는 공간! https://blog.naver.com/nty1218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