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4월 1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음식협동조합 '끼니' 사무실에서 글 쓰는 요리사, 맛 칼럼니스트 등 맛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4인 4색 '푸드토크'를 진행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 보도 관계로 뒤늦게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 드립니다. [편집자말]
'맛' 관련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를 만들었다. 왼쪽부터 구완회(끼니 조합원, 여행작가), 김경(끼니 사무국장, 공정무역커피 이피쿱 조합원), 박찬일(끼니 조합원, 요리연구가), 황교익(끼니 조합장, 맛 칼럼니스트), 박상현(끼니 조합원, 맛 칼럼니스트)씨.
▲ '맛' 관련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맛' 관련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를 만들었다. 왼쪽부터 구완회(끼니 조합원, 여행작가), 김경(끼니 사무국장, 공정무역커피 이피쿱 조합원), 박찬일(끼니 조합원, 요리연구가), 황교익(끼니 조합장, 맛 칼럼니스트), 박상현(끼니 조합원, 맛 칼럼니스트)씨.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다(I am what I eat)."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한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현대사회는 '맛'을 매우 중시한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에서는 '맛집' 관련 정보가 넘쳐나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맛이 무엇인지, 오늘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궁금해하는 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특정 음식을 광고하거나 포털 사이트에 노출되려는 일부 음식점의 눈속임이 있을 뿐이다.

'맛' 관련 전문가들이 모인 건 그래서다. '당신의 미각을 믿나요'란 도발적 제목으로 2012년 8월 맛 콘서트를 열고, 2013년 10월에는 아예 협동조합으로 뭉쳐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아래 '끼니')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맛으로 세상을 읽겠다"란 야심찬 포부 아래 조합원들이 모여 직접 강의를 열었다. 지난 4월 말부터 약 세 달간 진행된 '맛 칼럼니스트 과정'이 그것이다.

총 9강의 과정에서는 <미각의 제국> 저자 황교익(끼니 조합장)씨를 시작으로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 김경애 요리연구가 등이 연단에 섰다. 강연 내용은 '주방에서 본 국수와 국시, 면과 누들의 사회사'(2강), '한국음식문화 최근 100년의 충격'(3강), '계절과 지역을 잃어버린 밥상'(8강) 등 제목에서 그 내용을 엿볼 수 있다.

강연에는 참가자들이 직접 '블라인드 테스트' 등을 해볼 수 있도록 각각 음식들이 주어졌다. 간장과 쌀, 두부 등 주로 일상에서 자주 접해서 되레 그 맛을 잘 알기 어려운 음식들이었다. 참가자 중에는 공장 제조 간장과 직접 만든 간장을 비교해 먹어 본 뒤, 집에 돌아가 집에 있던 간장을 다 버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대기업의 보편적이 맛이 사람들을 길들여 미맹(味盲)으로 만들고 있다"며 "자신만의 미각을 찾아보라"고 말하는 이들, 맛 칼럼니스트 과정의 주요 강사진들을 만나봤다. 사회는 조합원인 구완회 작가와 <오마이뉴스> 기자가 번갈아가며 진행했다. 협동조합 끼니는 현재 맛 칼럼니스트 2기 과정 수강생을 모집 중이며, 강의는 오는 7월부터 매주 화요일 진행될 예정이다.

사회: 구완회(끼니 조합원, 여행작가)
참석자: 황교익(끼니 조합장, 맛 칼럼니스트), 김경(끼니 사무국장, 공정무역커피 이피쿱 조합원), 박찬일(끼니 조합원, 요리사), 박상현(끼니 조합원, 맛 칼럼니스트)

"공허하고 왜곡된 한국 음식문화... 실체 드러내고 싶었다"

구완회: "먼저 맛 칼럼니스트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맛과 음식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이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 주면 좋겠다."

황교익: "우리나라에서 음식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분류하면 이렇다고 본다. 한쪽은 '전통음식'을 강조한다면, 다른 한쪽은 어떤 음식이 몸에 좋은가를 논하는 '식품영양' 쪽이다. 또 다른 하나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관념들, 슬로 푸드나 로컬 푸드 등의 개념이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국인이 본래부터 무엇을 먹어 왔는지, 고유식품이나 한국의 음식문화에 대해서는 정확한 파악 없이 그저 공허하게 떠도는 얘기들이 많다. 이것의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고 싶었다."

요리연구가 박찬일씨는 "우리 음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연구를 한다. 과학적으로 연구는 돼있을지언정, '한국 음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해가 극히 적다"고 말한다.
 요리연구가 박찬일씨는 "우리 음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연구를 한다. 과학적으로 연구는 돼있을지언정, '한국 음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해가 극히 적다"고 말한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박찬일: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맛에 대한 열망이 많고, 전통음식에 대한 자부심도 강한 편이다. 그런데 한국 음식의 맨얼굴, 우리가 늘 먹는 음식의 '맨얼굴'을 보자는 논의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제가 보기에 그 이유는 '잘 몰라서'다. 우리 음식을 연구하는 사람들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연구를 한다. 과학적으로 연구는 돼있을지언정, '한국 음식이 정말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이해가 극히 적은 거다.

사실 한국 음식에 대해 조사를 해보면 일본 식민지 시대 만들어진 것이 소름끼치게 많다. 도대체 '한식'의 뜻은 정확하게 뭘까? 김치? 된장? 언뜻 보면 한정식이 마치 한국 전통음식인 것 같지만, 제가 얼마 전에 일본 료칸에 가보니 굉장히 비슷한 음식이 나오더라. 이를 테면 이런 한정식을 한국인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먹었냐는 게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다. '끼니'의 강의들은 실제로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들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박상현: "연장선상에서, 한식을 말하는 데 있어 지금까지는 전통주의와 영양학적 관점에 대해서만 얘기해 온 면이 있다. 그런데 이런 관점은 주로 학계와 식품업계 등 일종의 '권력'있는 사람들이 만들었다. 저는 여기에 굉장히 많은 모순과 오류들이 있다고 봤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걸 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담론과 직접 대결하기 보다는, 모여서 함께 고민하면서 또 다른 이론과 가치들을 보여줘야 한다고 봤다."

김경: "사실 우리는 2014년도 지금 여기 한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집중하고, 이게 왜 일어나느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슬로 푸드'같이 외국에서 넘어온 것에 대한 얘기가 주된 소재였다. 한국 땅에 맞지 않는 얘기들을 억지로 꿰어 맞추다 보니 '영양주의'만 강조하게 되는 것 같다. 또 하나는 음식 관련해 생활협동조합이 많이 생기는데, 어딘가 어색하고 실증적으로 검증하기는 어려운 상황인 거다. 그걸 지적하고 싶었다."

"'맛집'은 넘쳐나는데, 왜 제대로 맛을 아는 사람은 없을까"

기자: "'맛'을 우리가 생각보다 잘 모른다는 건데, 사실 인터넷과 텔레비전만 봐도 '맛집' 소개 등 음식 정보들은 넘쳐나지 않나. 정보들은 많은데 제대로 된 맛을 아는 사람은 왜 적을까."

황교익: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음식문화라는 게 실은 일상문화다. 삼시 세끼 무언가를 먹지 않나. 그러면 일상을 먼저 들여다 봐야 하는데 사람들이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어 최근 MBC 지인들을 만났는데, 유럽에서 사탕수수를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등 '설탕의 제국사'와 같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더라. 그런데 사실 그건 이미 유럽의 시각에서 다 정리가 된 얘기고, 우리는 우리만의 연구가 필요한 것 아닌가. 예전 한반도 사람들은 단맛을 어디에서 얻었고, 조청과 곶감의 단맛은 어떻게 다른지 이런 것들 말이다.

사실 그들이 말하는 설탕은, 오히려 우리 시각에서 보면 당시 하와이 강제 이주 역사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착취 당한 역사로서 우리와 관련이 있는 거다. 이렇듯 우리만의 시각으로 설탕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한데, 방송에서는 그게 아니라 유럽 등 서구의 시각에서 만들고 있다. 저는 이런 것보다는 우리만의 고유한 통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구완회: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이렇게 소위 '맛집'만을 찾아다니고 맛집에 광분을 하는 것일까. 저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맛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맛에 대한 '합의'가 없다. 최소한의 기준점을 합의해 논의해 봐야 하는데 그런 시도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대기업 등 자본의 논리, 이 논리를 업은 전문가들의 '권위'에 휘둘리기 쉽다."

황교익: "보통 한국 사람들은 밥도 김치도 늘 일상에서 먹으니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게 대다수다. 음식을 제대로 아는 건 단순히 얼마나 많이 접했냐가 아니라 얼마나 다른지 아는 '분별력'을 말한다. 저 김치와 이 김치가 어떻게 다른지, 맛의 다름에 대한 분별력이 필연적인데 물어 보면 정작 설명을 잘 못한다. 잘 모른다. 분별력 있게 먹어본 경험이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다."

박상현: "저는 우리 스스로가 적어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 봤는지, 정말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해 노력해 보고 직접 만들어 보려 노력해 봤는지 묻고 싶다. 사람들에게 이걸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고 흥미를 유발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먹어보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강연 과정에서도 된장과 술, 빵과 초콜릿, 떡 등 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음식들로 직접 시식을 한다."

"맛으로 세상을 읽고 맛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하는 게 목표"

'맛' 관련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를 만들었다. 왼쪽부터 구완회(끼니 조합원, 여행작가), 김경(끼니 사무국장, 공정무역커피 이피쿱 조합원), 박찬일(끼니 조합원, 요리연구가), 황교익(끼니 조합장, 맛 칼럼니스트), 박상현(끼니 조합원, 맛 칼럼니스트)씨.
▲ '맛' 관련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맛' 관련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를 만들었다. 왼쪽부터 구완회(끼니 조합원, 여행작가), 김경(끼니 사무국장, 공정무역커피 이피쿱 조합원), 박찬일(끼니 조합원, 요리연구가), 황교익(끼니 조합장, 맛 칼럼니스트), 박상현(끼니 조합원, 맛 칼럼니스트)씨.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기자: "그렇다면 토론자 본인들의 일상음식문화는 어떤지 궁금하다. 해당 기초과정을 들으면 제대로 된 음식을 맛볼 수 있나. 강연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기게 되나."

구완회: "혹시라도 오해가 있을까 봐 설명하자면, 우리가 전문가이고 여기에 대해 다 알고 있으니 이걸 그냥 알려주겠다는 게 아니다. 문제 제기, 즉 질문 자체가 안 나왔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권위 있는 사람들이 말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좇아다녔는데, 지금부터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거고 각자의 맛의 기준을 찾아나가자는 의미다.

제가 볼 때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강의를 하고 듣는 이유는 하나다. 맛으로 세상을 읽고 결국 맛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거다. 그리고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여기에 필요한 사회적 행동은 무엇인지 등을 같이 고민해 보자는 취지다."

김경: "여기서 진행하는 맛 칼럼니스트 과정의 부제는 '맛있는 세상읽기'다. 맛을 학문의 영역으로 들여다 보는 거다. 맛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어떻게 쌀밥을 봐라 봐야 할까 등을 고민한다. 가장 기초적으로는 참가자들에게 '너의 감각은 뭔데'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맛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점을 찾자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황교익: "'핸드폰을 통해 보는 사회사'처럼, 우리가 먹는 음식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것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예를 들면 매 끼니마다 내가 왜 이 음식을 먹는지, 왜 이 음식이 내게 주어진지를 생각해 보는 거다. 우리나라에는 유독 치킨 가게가 많고 닭튀김이 많을까? 싸고, 편하니까. 이걸 먹는 사람들은 대개 노동자일 가능성이 크다. 맞벌이라서 바쁜데다 싸니까 시켜 먹고, 또 맛에 길들여지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순환이 결국 우리의 하루하루를 만든다."

박찬일: "나아가 치킨에서만도 다양한 사회사, 문화사를 끌어낼 수 있다. 대다수 치킨집이 결국 우리 IMF 당시 대량해고 사태 이후 생겨난 것 아닌가. 게다가 닭의 종자조차도 우리가 사와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식으로 치킨 하나를 먹으면서도, 이 음식의 전통과 사회문화적 측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거다."

기자: "강좌 수강생들 반응은 어떤가."

박상현: "사실 음식 얘기를 들으러 돈 내고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80~90명씩 몰려오는 걸 보고 매우 놀랐다. 우리가 '간장'을 소재로 얘기했는데, 참가자들이 직접 먹어 보니 지금 공장에서 만들어진 간장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알게 되더라. 당장 집에 가서 집에 있는 간장을 버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두부 같은 경우도 그렇다. 포장 두부와 실제 즉석에서 만든 두부 맛을 알게 되면, 우리 동네에 두부 만드는 공장이 없나 찾아보게 된다. 그런 것을 알게 되면 삶의 질은 당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저는 결국 사람들을 '미맹'으로 만드는 것은 대기업 식품들의 보편적인 맛이라고 본다. 사람들을 비슷한 맛에 길들이고, 그래야 제품을 쉽게 팔 수 있으니까."

김경: "그때 참가자들에게 내놓은 것이 하나는 대기업의 가장 비싼 두부 제품이었고, 또 하나는 값은 싸지면 즉석으로 만들어서 파는 노점상 두부였다. 그런데 참가자들이 노점상에서 파는 두부는 다 먹더니 대기업 제품은 한 입 떠먹고는 안 먹는 걸 봤다. 우리가 식품 브랜드에 의해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했다."

황교익: "'내가 먹는 것이 나다'란 말이 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고, 무슨 '맛'을 보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저는 '더 나은 음식'을 연구하고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결국 이 사회의 변혁을 일으키는 일의 시작으로도 연결된다고 본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어떤 것부터 해야 할까. 미리 결말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가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세밀한 감각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맛 강좌는 우리 스스로를 비롯해 내가 속한 사회 등 여러 가지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수업이 될 거다. 먼저 자기 자신의 행동이 바뀌고, 나아가 세상을 좀 더 괜찮은 방향으로 바꾸는 그런 강의 말이다."


태그:#맛 칼럼니스트 과정, #끼니, #삶과 먹을거리 협동조합 끼니, #황교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