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대림역 12번 출구로 나오면 중국의 어느 동네에 온 것만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대림역 12번 출구로 나오면 중국의 어느 동네에 온 것만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자전거를 타고 널찍한 안양천 변을 달리다가 도림천으로 들어서면, 신도림역을 지나 신림역까지 이어지는 아담한 개울이 나온다. 도림천은 한강의 동생 하천쯤 되는 안양천의 지류로, 신도림, 구로, 신림동 등 서울의 도심을 품고 흐른다. 도림천을 따라 놓인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면 이채롭고 이국적인 시장을 만나게 되는데 대림2동 대림중앙시장이 그곳이다.

지난 6월 28일 대림역 앞에 도착하자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진달래 분식, 연변 냉면, 목단 호프 등 익숙하지 않은 간판에 낯섦과 정겨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대림동 중앙시장으로 이어지는 약 500m 거리는 한자와 한글이 섞인 빨간 간판이 빽빽하고, 중국말이 흔히 들려오는 이채로운 공간이다.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릴 정도다. 서울 속 작은 중국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마치 중국의 어느 작은 동네에 여행 온 느낌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관광지', 이곳은 '진짜 중국'

대림중앙시장은 관광 명소로 유명해진 인천 차이나타운하고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노점과 식당, 상점, 여행사, 직업소개소 등이 이어져 있어 어디에도 '여긴 관광지예요'라는 느낌은 없었다. 다른 차이나타운의 음식점들이 한국인 입맛에 맞춰 변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더구나 사람과 상가로 가득한 거리를 걷다 보면 주민들의 '생활공간'이라는 느낌이 더욱 생생하게 든다.

주변 풍경은 낯설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중국 색이 강했다. 타향살이를 하는 중국 동포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상점들이 즐비하다. 중국에서 복을 기원하는 색으로 통용되는 붉은 간판도 흔히 보였다. 상인도, 손님도 대부분 중국동포다. 중국말과 한국말, TV나 영화에서나 들었던 북한 사투리까지 뒤섞여 귀가 즐겁다.

오리알, 소힘줄, 건두부, 해바라기씨 등 이채로운 식품들이 많다.
 오리알, 소힘줄, 건두부, 해바라기씨 등 이채로운 식품들이 많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약 150m 길이의 시장 안에는 다양한 음식도 볼 수 있다. 양꼬치, 만두 등 특유의 향신료 냄새를 풍기는 중국 음식이 가득하다. 마포구 연남동, 중구 명동의 중국식당과 다른 건 탕수육, 짜장면, 짬뽕이 아니라 양꼬치, 훠궈(중국식 샤브샤브) 같은 '오리지널' 중국 음식을 판다는 점이다. 중국 베이징으로 여행을 갔을 때 시장에서 먹었던 음식과 똑같았다.

한국의 전병과 비슷한 '지엔빙'은 그 크기부터 남달랐다. '요우삥(油餠, 기름떡)', '빠오즈(만두 또는 진빵)' 등은 물론 꽈배기, 호떡 등도 주전부리 수준이 아닌 한 끼 식사로 먹을 수 있을 만큼 큼지막했다. 뭐든지 큰 대륙의 분식다웠다.

중국에서는 이런 부드럽게 튀긴 밀가루 음식을 콩 국물에 적셔서 식사로 먹는다. 따뜻할 때 바로 먹으면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슈퍼에서 부드러운 맛이 좋은 하얼빈 맥주를 보았지만, 대낮부터 얼굴이 붉어질까봐 차마 마시진 못했다.

큼지막한 크기의 분식 먹거리들은 주전부리가 아닌 한 끼 식사용이다.
 큼지막한 크기의 분식 먹거리들은 주전부리가 아닌 한 끼 식사용이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대림중앙시장 가는 길가엔 다양한 종류의 양꼬치가 선보인다.
 대림중앙시장 가는 길가엔 다양한 종류의 양꼬치가 선보인다.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점심으로 국숫집으로 들어가 종업원 아주머니가 추천하는 우육면(牛肉面)을 먹었다. 중국말로 주문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한국말로도 소통이 잘 됐다. 메뉴판에도 중국어와 함께 한국어 설명이 잘 나와 있었다. 소고기가 들어가 한 끼 식사로 든든한 국수는 단돈 4천 원이었다.

'소 힘줄' '돼지 코'... 대륙의 음식 맛 볼 기회 

시장에는 소고기,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양고기와 개고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육점들도 곳곳에 있었다. 소의 꼬리까지 국으로 끓여 먹는 우리지만 이곳에는 소의 힘줄로 만든 반찬도 판다. '질긴 것의 대명사, 쇠심줄까지 음식으로 만들다니.'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소는 똥 말고 다 먹는다"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이 외에도 강원도 속초에서 보았던 팔뚝만한 북한식 아바이 순대, 중국식 까만 찹쌀 순대, 돼지 간 무침과 피둥(돼지껍질로 만든 일종의 묵), 달걀보다 큰 오리알, 고소한 해바라기 씨, 건두부 등 이채로운 식품을 판매하는 점포들도 시선을 끌었다.

질기기로 유명한 '쇠심줄'로 만든 반찬.
 질기기로 유명한 '쇠심줄'로 만든 반찬.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중국식 까만 찹쌀순대와 팔뚝만한 크기의 북한식 아바이 순대.
 중국식 까만 찹쌀순대와 팔뚝만한 크기의 북한식 아바이 순대.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특히 눈에 띈 것은 돼지 코와 귀를 따로 자른 다음 양념에 졸인 음식이었다. 놀란 눈으로 음식을 바라보고 있자 옆을 지나가던 한 주민이 "돼지 껍데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쫄깃하고 고소하다"며 한 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이분은 자전거 탄 기자를 반가워하며 중국에서 살 때 티베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을 잃었던 여행기를 들려주었다. 또 중국에는 자전거가 대중화되어 도시의 차도는 물론, 터널이나 궁벽한 시골에도 자전거길이 나 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집에 가는 길에 먹으라며 해바라기 씨를 한 봉지 사서 쥐여주는 주민의 손이 따뜻했다.

'더 나은 내일' 꿈꾸는 중국 동포들

많은 중국 동포들이 사는 생활공간답게 음식점만큼 눈에 띄는 것이 직업 소개소였다. 또 대림중앙시장 주변은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고향의 향수를 달래는 곳이었다. 중국 동포들은 평일에는 바쁘게 일을 하고, 주말이면 이웃과 이곳에 모인다. 결혼식과 동창회 모임을 알리는 플래카드와 악수를 하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답게 다가왔다. 배가 불러 못 먹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연길 냉면은 다음에 이곳에 또 와야 하는 이유가 됐다.

대림중앙시장에서 만난 중국 길림성 출신의 아주머니는 '고향모임'을 하러 왔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친구들은 신도림, 신대방, 송파, 영등포 등 다양한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못했던 모임이라며 즐겁게 웃는 표정이 흑백 사진 속에서 보았던 내 어머니의 순박한 웃음과 닮아 친근했다. 이방인으로 살아가기 녹록지 않은 이 나라에서 더 나은 내일과 따뜻한 삶을 위해 이곳에 발을 디딘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 온라인 뉴스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태그:#자전거여행, #도림천, #대림 중앙시장 , #중국동포 , #대림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