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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니라 열무가 주인공이지” 아주머니 말에 웃음꽃이 핀다. 고된 농사일과 턱없는 농산물값에도 무너지지 않고 농촌을 지키는 우리 농민들의 힘이다.
 “내가 아니라 열무가 주인공이지” 아주머니 말에 웃음꽃이 핀다. 고된 농사일과 턱없는 농산물값에도 무너지지 않고 농촌을 지키는 우리 농민들의 힘이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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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를 지나 초복으로 달려가는 성하의 계절이다. 직장인들은 휴가계획으로, 학생들은 방학을 맞아 무더위를 잊어보지만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농민들에게 탈출구는 없다. 무더위를 잊게 할 기분 좋은 일이 있다면 자식같이 키운 농산물이 제값을 받는 것인데, 올해는 한숨만 나온다고 한다.

지난 7월 10일. 시설재배 원예작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충남 예산군 오가면 일대는 지금 열무와 토마토 수확이 한창이다.

"올해는 봄배추도 갈아 엎고… 어떻게 된 게 우리 땅에서 난 건 죄다 싸다"는 한 농민의 넋두리를 들으며 수확 현장을 찾았다.

신원리 최아무개씨의 200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 안에는 열무 작업이 한창이다. 농민은 별재미 못 보고 벌써 중도매인 손에 넘겼지만, 그도 겨우 인건비 정도 건지는 눈치다. 비닐하우스 안엔 열무를 뽑아 흙을 털고 차곡차곡 단을 묶는 작업이 한바탕이다. 연녹색의 싱싱한 열무이파리를 보니 하우스안 열기가 잠시 잊혀진다.

"여름철엔 뭐니뭐니해도 열무김치가 최고여. 그저 보리밥에다가 열무 김치 한 보시기 쓸어넣고 고추장에다가 썩썩 비벼 먹으믄 그이상 맛있는 게 읍서."

취재를 나왔다고 하니 아주머니 한 분이 열무와 함께 김치맛까지 자랑이 맛깔난다. 그러면서도 사진을 찍으려면 모두 얼굴을 가려 버린다. 늙은 얼굴 나오는 게 싫단다. 한 장만 찍을테니 포즈 좀 취하라 사정하니 "자 그럼 찍어유"하며 열무단으로 얼굴을 가려 버린다. "내 얼굴 보다 열무가 나와야 되니께"하자 모두 웃음꽃이 핀다. 한 아주머니는 "열무값 좀 오르게 김치 많이 담가 잡수라"고 신문에 써달란다.

중도매인 한아무개씨는 "열무 1단에 1200원 나오는데 인건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열무밭을 지나니 방울토마토 수확이 한창인 하우스가 나온다. 하우스 안은 찜솥같은 열기로 푹푹 삶는데, 태국 청년 세 명이 밭고랑을 타며 부지런히 토마토를 따 나른다. 이들을 연중 고용하고 있는 밭주인은 "더운 나라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찜통 더위에도 일을 잘해 만족한다"고 말한다.

이역만리 태국에서 온 청년이 예산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다.
 이역만리 태국에서 온 청년이 예산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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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재배단지인 부여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농업의 외국인 근로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예산지역에도 약 30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농촌현장에서 고마운 일손이 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오래 전 떠나고, 농촌은 급속히 초고령화 되고 있다. 이제 우리 농업은 고용인력을 외국에서 공급받아야 생산이 가능할 정도로 큰 변화에 직면해 있다.

방울토마토 밭주인은 "시설재배같이 기계화가 안 되는 작물을 생산하고 유지하려면 방법이 없다. 외국인 근로자라도 구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며 "정부가 농촌현실을 감안해 외국인 근로자 고용안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닐하우스를 벗어나자 밖의 날씨가 시원하다.

열무를 뽑아낸 자리엔 곧 거름이 뿌려지고 또 작물이 심어질 것이다. 토마토도 끝물까지 따내고 나면 바로 다른 작물이 들어가야 한다. 따라나온 농민에게 무엇을 심을 계획이냐고 물으니 "좋은 것 있으믄 나 좀 알려달라"고 한다.

모든 농작물의 시세를 전망할 수가 없고, 잘못하면 생산비용도 건지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한 농촌현실이 아프게 느껴진다. 발걸음이 무겁다.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폭염, #농촌, #농작물,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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