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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어느 출장 자리에서 만난 김 선생님(가명)은 인근 지역 사립학교(사학) 소속이다. 김 선생님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는 대한민국 족벌사학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재단 이사장의 두 아들이 각각 교장과 행정실장을 맡고 있다. 이사장은 아들 교장과 행정실장을 통해 인사와 재정을 확실하게 틀어쥐고 있을 게 분명하다.

나와 막역한 사이인 박 선생님(가명) 역시 사학에서 일한다. 박 선생님 학교에는 이사장과 이사의 친인척이 문어발처럼 뻗어 있다. 이사장 동생이 행정실장을, 제수가 교사를 맡고 있다. 이사 아들 교사도 근무한다.

김 선생님과 박 선생님 학교는 모두 전라북도 65개 사학법인에 속해 있다. 이들 사학법인 소속 학교들에는 재단 이사장이나 이사들의 친·인척이 교장이나 행정실장, 교사 등으로 두루 포진해 있다. 뜬소문처럼 떠다니는 족벌사학 내 친·인척 현황이 근거 없이 나도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실이 전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선생님(가명) 학교 재단에는 전직 교장 출신이 이사로 두루 포진해 있다. 외부인사로 채워지는 개방이사 중 한 자리 역시 상호 동지적인(?) 관계를 맺는 타 재단의 이사장이 차지하고 있다.

이들 이사들이 이사장의 거수기 노릇을 할 것임은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교원 인사나 징계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방적으로 재단을 편들 것이라는 점 또한 익히 예상할 수 있다. 재단에 소속되어 있는 학교가 밀실에서 비민주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사학 개혁의 당위성을 끄집어낼 수 있는 지점이다.

사학 이사진은 여전히 사학재단의 '호위부대'다. 정진후 의원(정의당)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전국 4년제 대학 133개 법인의 개방이사 현황(2013년 7월 기준) 분석 결과, 전체 49.6% 달하는 66개 법인에서 법인과 직·간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는 인사가 개방이사로 선임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방이사 유형은 법인이 설립한 대학의 총장·부총장·교원 출신 이사였다. 전체의 31.8%(28명)를 차지했다. 현직 이사장이나 총장도 18.3%(17명)나 되었다. 법인 산하 중·고등학교의 전·현직 교장 또는 교감 출신 인사 역시 13.6%(10명)에 이르렀다. 같은 설립자가 설립한 다른 사학법인 학교의 전·현직 임원 또는 교원은 11.4%(10명)였다.

개방이사제,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민주적사립학교법개정과 부패사학척결을위한국민운동본부'는 2005년 6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황우여 교육위원장(한나라당), 이군현 한나라당 교육위간사, 김영숙 교육위원(한나라당)을 사립학교법 개정의 걸림돌 정치인 '교육공공의 5적'으로 선포하고 낙선운동을 결의했다.
 '민주적사립학교법개정과 부패사학척결을위한국민운동본부'는 2005년 6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황우여 교육위원장(한나라당), 이군현 한나라당 교육위간사, 김영숙 교육위원(한나라당)을 사립학교법 개정의 걸림돌 정치인 '교육공공의 5적'으로 선포하고 낙선운동을 결의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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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이사제는 사학 재단의 전횡을 막기 위해 도입된 혁신적인 제도였다. 그런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역사적인 사립학교법(사학법) 개정이 이뤄진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5년 당시 다수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장 직권상정으로 사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사 정원의 1/4을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의 추천을 받도록 한 개방형 이사제 도입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사장의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등을 교장으로 임명해 족벌 체제를 유지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규정도 도입되었다. 학교법인 임원간 친인척 비율을 3분의 1에서 4분의 일로 축소하는 안 또한 주요 내용으로 부각되었다.

그런데 사학법은 2007년에 재개정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사학법 투쟁은 나라를 위한 투쟁이다"라며 주도한 장외투쟁과,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추진했던 로스쿨법 제정안을 사학법 재개정안과 맞바꾼 결과였다.

결국 사학법은 2007년 재개정안에서 학운위의 개방이사 추천권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누더기가 돼버린다. 친인척 임용 제한 규정을 없앤 것도 이때였다. 학운위 추천권이 절반으로 줄어들었을지언정 개방이사제 자체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하지만 개방이사제의 취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학재단들이 개방이사를 '안방이사'로 선임함으로써 개방이사제의 실질적인 효력을 무력화했기 때문이다.

사학재단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현행 사학법에 개방이사 자격과 관련한 제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방이사제의 법적 취지를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개방이사의 자격 요건을 객관화·구체화하는 식으로 사학법이 다시 한 번 개정되어야 하는 이유다.

2013년 11월 헌법재판소는 2007년 개정된 사학법이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악법이라며 사학들이 낸 헌법소원에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사학법상의 개방형 이사제 및 감사제가 사학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학의 자유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장장 6년 만에 나온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판결이었다.

그 뒤로 보수세력으로부터 나오던 사학법 폐지 목소리는 조금 숙지근해진 듯 보였다. 이들은 대신 사학법 투쟁의 방향을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찾고 있다. <주간경향> 1081호(2014.6.24일자)에 따르면 현재 새누리당과 사학법인 등 보수세력은 사학법상의 법정부담금 폐지나 학교 공사비 의무분담 폐지 등을 중심으로 사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려 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사학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은 장부가액으로만 4조 원 가량이라고 한다. 하지만 법정부담금으로 실제 납부한 금액은 고작 1.5%에 불과했다. 법인이 부담해야 하는 2000억 원의 법정부담금이 국민 세금과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에서 빠져나가게 된 것이다. 사학재단들이 사학법 개정의 방향을 법정부담금 규정 폐지 쪽으로 선회한 배경들이다.

사학을 향한 황우여 후보자의 '무한사랑'

지난 2005년 12월 16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사학법 강행처리 무효 대규모 장외집회에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촛불을 들고 있다.
 지난 2005년 12월 16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사학법 강행처리 무효 대규모 장외집회에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촛불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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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사학재단이 오매불망 바라는 사학법 개정의 가능성이 한껏 높아질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족벌사학 견제나 투명한 학교 운영을 위한 사학법 개정과는 전혀 다른 이유에서 사학법 개정이나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는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5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기 때문이다.

2005년 사학법 개정 당시 황 후보자는 국회 교육위원회 상임위원장이었다. 법안 심의 및 처리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황 후보자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과 함께 사학법 개정 반대 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교육위원회 전체회의 거부와 법안 상정 보이콧 등으로 직무를 유기했다.

황 후보자가 사학법 개정 반대를 위한 대여 투쟁을 이끈 기간은 장장 6개월이나 되었다. 그는 사학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사학법인협의회·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등 관련 단체로부터 박 대통령과 함께 '사학 수호 5걸' 중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는 동시에 황 후보자가 '사학법 개정 및 교육공공의 5적'임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학 편향적인 황 후보자의 태도는 당시 그의 발언을 통해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2005년 사학법이 개정된 후 황 후보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사회에 외부 인사를 넣는 것은 민법상 재단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 발표에서는 "사학법을 신앙의 자유에 부합되도록 재개정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런 황 후보자의 투쟁 덕분이었을까. 2007년 6월 임시국회에서 친·인척 임용 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위법을 저지른 재단이라도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학교 운영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사학법 재개정안이 의결되었다. "황우여씨가 교육과 관련해서 가장 열심히 했던 일은 비리 사학 수호였다"는 한 누리꾼의 말이 결코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 뒤로도 사학을 향한 황 후보자의 '무한 사랑'은 계속되었다. 2009년 4월 보수성향 교육·시민·사회·종교단체 250여 개와 전국 사립학교·학교법인 3300여 개가 동참한 '사학법 폐지 및 사학진흥법 제정 국민운동본부'(사학법 폐지 운동본부)가 발족되었다. 그즈음 황 후보자는 사학법 폐지의 전도사가 되다시피 한다.

2009년 7월 황 후보자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사학법 폐지 및 사학진흥법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했다. 그 자리에서 황 후보자는 "옛 열린우리당이 주도한 사학법 개정은 사학의 자율적 경영을 무시한 악법이었던 만큼 사학법을 일단 폐지하고, 사학제도를 규제 일변도에서 지원, 육성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사학법은 사학의 공적 책무를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수단이다. 그런데 황 후보자는 그마저도 없애버림으로써 사학으로 하여금 무한 자유를 누리게 하려는 의도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이다.

황우여 후보자 지명, 사학들 '날개' 달았다

지난 2005년 9월. 사립학교법  개정안 심사 기한을 앞두고 여야간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후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가 상정안건도 없이 여야의원간 지루한 공방만 벌이고 끝이 났다. 황우여 교육위원장과 정봉주 열린우리당 간사, 이군현 한나라당 간사가 회의진행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005년 9월. 사립학교법 개정안 심사 기한을 앞두고 여야간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13일 오후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가 상정안건도 없이 여야의원간 지루한 공방만 벌이고 끝이 났다. 황우여 교육위원장과 정봉주 열린우리당 간사, 이군현 한나라당 간사가 회의진행을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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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황 후보자를 교육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유가 뭘까. 장관 후보자 역사에서 '역대급 표절남'으로 길이 남을 김명수 후보자의 낙마를 유력한 배경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비정치인 출신 후보자의 검증 문제를, 어느 정도 검증이 이루어진 정치인 출신 후보자를 통해 돌파하겠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관점이다.

이에 덧붙여 나는 황 후보자의 정치적 역량을 꼽고 싶다. 사학법 개정 내지는 폐지를 바라는 박 대통령의 의중을 황 후보자가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문제를 황 후보자가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을 개연성도 높다.

2005년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한나라당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사학법 개정은 전교조에 모든 것을 주자는 법"이라며 장외투쟁을 불사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한 마리 해충(전교조)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수 있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며 개정 사학법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들이 뜬금없이 사학법을 전교조 문제와 연계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학법 문제를 '이념 집단'의 대표격인 전교조와 묶어 놓음으로써 사학 재단을 포함한 보수세력의 결집을 노리고, 이를 통해 사학법 개정 저지 투쟁에서 승기를 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2009년 4월 전국의 사립학교 및 학교법인 3천300여 개가 합세해 만들어진 사학법 폐지 운동본부가 그 구체적인 열매였다.

황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여 교육부장관에 임명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볼 때 이번에도 그때와 똑같은 전술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마침 전교조가 법외노조의 벼랑에 몰려 있으니 외적 여건도 좋다. 구석에 몰린 전교조가 강하게 나올수록 그 반대편에 있는 보수세력 또한 더 똘똘 뭉칠 것이니 크게 어려울 것 없다.

사학법인을 포함한 보수 세력들은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집권 시기를 '사학 탄압기'로 부르곤 했다. 족벌화한 사학을 통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규제마저도 탄압으로 몰아부쳤다. 그들이 평소 신경증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던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선 모습은 비장하기 그지 없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우리 앞에는 이제 '사학 중흥기'가 기다리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사학 마피아'들은 누더기가 된 사학법마저도 통제 일변도의 규제, 곧 '악의 축'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황 후보자는 과거에 사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사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학진흥법 제정의 최일선에 있었다. 그런 그가 교육부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사학으로서는 날개를 달고 날아갈 일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학들은 지역 토호로 불리는 유력가들과 재벌의 수중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 5조원에 이르는 국민세금을 지원받는 실질적인 공교육기관임에도 이들이 과연 온전히 공적 책무성을 담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사학의 '중흥'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보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학법 개정이 하루속히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황우여 교육부장관 후보자, #박근혜 대통령, #사립학교법, #전교조, #족벌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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