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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래 슬플 때가 있어요. 나는 혼자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요. 내가 함께 먹어 줄게. 고등어가 통조림 깡통 속에서 나와요. 밥알을 세고 있는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고양이도 야옹, 발가락을 살짝 깨물며 함께 울어 주어요. 아빠도 모르는 내 마음을 고등어와 고양이는 아는가 봐요. 일 나간 아빠가 돌아오기 전에 슬픔을 다 먹어 치워야 하지만 목이 메요. 이럴 땐 엄마가 없는 게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자꾸 눈물이 나요. 슬픔을 숨길 통조림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들어갈 만한 아주 커다란 통조림이어야겠지요. 가끔씩 나는 고등어통조림을 고래통조림으로 읽어요." (동시 '고등어통조림' 전문).

김륭(53․본명 김영건) 시인이 이번에 동시집 <엄마의 법칙>(문학동네 펴냄, 노인경 그림)을 냈다.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 고양이>와 올해 나온 <별에 다녀왔습니다>(창비 펴냄)에 이은 네 번째 동시집이다.

2007년 강원일보(동시)·문화일보(시)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어 관심을 끌었던 그는 김달진지역문학상, 박재삼사천문학상에 이어 201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김륭 시인(본명 김영건).
 김륭 시인(본명 김영건).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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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상금 1000만 원)을 수상한 그는 이번에 동시를 한데 묶어 펴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난 5월 또 다른 동시집 <별에 다녀왔습니다>를 펴냈는데, 한 해에 두 권을 낸 셈이다.

"요즘 동시 작업을 많이 한다"고 한 김륭 시인은 "아이들이 부모와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서점에 가서 책을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요즘 아이들이 동시집을 읽을 기회도 거의 없고, 만화책을 많이 본다. 엄마 아빠와 같이 읽지 않으면 동시를 읽을 기회가 거의 없는 셈이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말도 아이들은 잘 이해한다."

김륭 시인의 동시는 '어른들이 읽는 동시'라는 느낌이 든다. 어릴 적 동심을 불러 일으켜준다.

"요즘 어른들은 휴대전화, 컴퓨터와 익숙해 있다. 동화와 동시는 거의 잊고 산다. 어른들한테 없어진 '인간' '사랑' '동심'을 환기시켜 일깨워주고 싶다. 그래야 각박해진 세상에 조금은 위안이 될 것 같다."

김륭 시인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어른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인이 곧 아이다.

"요즘 아이들이 접하는 것은 '기계'와 '학원'이다. 아이들이라고 욕망이 없고, 부모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게 아니다.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어른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원을 여러군데 다니면서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는 것이다."

그는 "자연을 보고 아름답다고 쓰는 게 아니라, 내가 아이들의 입장에 들어가서 동시의 착상을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고민'이 많고 '욕심'도 많다는 것이다.

"요즘 어른들은 아이들에 대해 너무 모른다. 초등학교 5~6학년만 되어도 '인생'이란 단어를 쓰고, 이성을 사귀는 아이들도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고 무시하거나, 무조건 어른들 말을 들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아이들도 최선을 다해 살려 하고, 괴로움도 느낀다. 그런 아이들의 생각을 동시로 대신 전하는 것이다."

동시집 <엄마의 법칙>은?

"수박을 먹다가/아빠가 묻는다//넌 커서 뭐 할래?//선생님.//의사 같은 걸 해야지/아빠처럼 될래?/빨리 들어가서 공부해!//칫! 묻지나 말지.//아빠는 내 머리를/자기 마음대로 교실에서/병원으로 옮겨 놓는다.//비닐 끈으로 묶은/수박처럼." (동시 '아빠와 수박' 전문).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집안이 많을 것 같다. 아이들은 꿈도 스스로 꾸지 못하고 어른들이 정해주는 대로만 해야 하는 처지다. 시인은 꿈보다 병이 더 커져 가는 아이들을 걱정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가 더 엄숙하고 진지하다. 요즘 아이들은 혼자 시간을 보낼 여유조차 없는 처지다. 오죽했으면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 엄숙해지기 위해 자신한테 더 힘을 주는 것일까.

"변기 위에 앉아 있을 때 나는/엄숙해진다.//교장 선생님의 아침 조회 시간보다 더//내가 나에게//끙, 힘을 줄 수 있는/시간." (동시 '화장실' 전문).

"밤은 밤인데, 달이 밤을 다 갈아엎어 꽃밭으로 만들어 놓는 밤 달에서 방아 찧던 토끼들이 내 잠을 풀처럼 뜯어 먹는 밤 하늘나라로 간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 한 방울 톡, 떨어뜨리면 반달곰 몇 마리 물고기 잡으러 올 것 같은 밤 아빠가 드르렁드러렁 코를 고는 밤은 밤인데, 지구 반대편 코끼리들이 퐁당퐁당 개구리헤엄을 치며 내 방으로 건너올 것 같은 밤//내일은 지각하면 안 되는데//엄마한테 혼나는데." (동시 '엄마 생각-달밤').

김륭 시인(본명 김영건)이 동시집 <어마의 법칙>을 '문학동네'를 통해 이번에 펴냈다.
 김륭 시인(본명 김영건)이 동시집 <어마의 법칙>을 '문학동네'를 통해 이번에 펴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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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간 엄마를 꿈에서 만난 것 같다. 그런 아이도 "지각하면 엄마한테 혼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아이가 지각하더라도, 아니 하루 정도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꿈속에서 엄마를 만나 실컷 행복할 수 있다면 어떨까.

김륭 시인은 아이들의 입장에서 어른들한테 하고 싶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소유물이라기보다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보면 안될까. 그러면 현실 속에서도 "지구 반대편 코끼리들이 퐁당퐁당 개구리헤엄을 치며 내 방으로 건너오는" 것도 일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선생님이 사과나무를 그리라고 하는데/사과만 그리는 아이가 있다//발밑에 떨어진 사과를 꼭 움켜쥐고/볼이 빨개진 아이.//하늘을 향해 두 팔 쭉, 뻗어 올린/아이가 가만히 속삭였다.//내가 사과나무야." (동시 '키가 작은 아이').

그리라고 한 사과나무는 그리지 않고 사과만 그려서 두 팔을 뻗어 '내가 사과나무'라고 한 아이다. 문득, 이런 그림을 그린 아이한테 선생님은 어떤 평점을 주었을지 궁금해진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으니 꾸지람을 주었을까, 아니면 창조력이 뛰어나다고 했을까.

이재복 문학평론가는 김륭 시인의 동시에 대해 "경계를 넘나드는 날개 달린 언어"라고 했다. 그는 "김륭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김륭의 시에는 날개가 달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김륭의 시는 날아다닌다, 언어가 날개를 달았다, 날개를 달고 현실과 환상, 사람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날아다닌다"고 했다.

<엄마의 법칙>에 실린 시에 대해, 그는 "자연의 모든 존재들과 분할선을 긋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쳐 놓은 경계를 넘나들면서 소통하는 언어가 주는 발랄함, 자유로움, 진솔함, 풍자의 맛이 느껴져서, 몸과 마음이 편하였다"고 했다.

김륭 시인이 올해 펴낸 다른 동시집 <별에 다녀오겠습니다>는 아이들의 또 다른 상상력을 맛볼 수 있다. 이 동시집에는 여러 편에 걸쳐서 '오병식'이라는 아이가 등장한다.

'오병식'은 꿈이 과학자도 대통령도 아닌 달팽이인 아이, 수학 공부는 아예 꼴찌이고 수업 시간에는 책상에 이마를 찧거나 쿨쿨 잠이 들었다가 "별에 다녀오겠습니다"는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아이다.

부모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가 아니고, 어떻게 보면 '문제아'다. 그러나 김륭 시인은 '오병식'은 지극히 평범한 소년이라고 한다. 시인은 동화처럼 이야기도 있고 상상도 뻗어 나가는 동시를 쓰고 싶어 한다.

안도현 시인은 김륭 시인에 대해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전복적 상상력은 앞으로 우리 동시가 나아가야 할 어떤 지점을 예고하는 것 같아 반가웠다"고 했다.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조선대를 나왔고, 지금은 김해 장유에 산다.


태그:#김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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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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